2011.07.19 07:20
[45] 이사야 29:1-16
제목: 마음이 떠난 사람들
묵상 포인트: 종교적 위장 아래 실제적 무신론자들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각종 종교적 집회들은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어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고 섬기게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배의식이나 종교적 행위들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예식과 집회에 열심을 낸다고 해서 일등교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 성경공부, 각종 집회, 십일조 생활, 주일성수와 같은 일들이 여러분들에게 종교적 훈장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 우월감을 갖게 하거나 혹은 연약한 신자들을 정죄하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모든 신앙적 활동과 행위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겸손하고 만들고, 하나님만을 삶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허황된 종교행위들에 대해 애곡합니다. 1절에 “슬프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곡소리인 “아이고!”로 더 잘 번역될 수 있습니다. 왜 예언자는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을 향해 애곡하는 것일까요? 아마 그들의 형식주의적인 종교생활을 슬퍼하며 비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을 ‘아리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아리엘’은 ‘제단의 난로’라는 뜻이 있는데, 예루살렘을 아리엘로 부르는 것은 불같은 전쟁의 환난에 말려 들어간 상태가 마치 불타고 있는 제단과 같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3-4절). 예루살렘은 매년 마다 각종 절기를 지키는데 유명했습니다. “아리엘에 해마다 절기들이 돌아왔다”는 말이 그 뜻입니다. 그러나 예언자 이사야는 종교적 열심을 다하지만 실제로는 종교적 외식주의에 빠져있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애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형식주의가 뭔지를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13절). 입으로는 ‘주여 삼창’을 외치지만, 혹은 교회의 직분과 체면 때문에 설교를 하고 각종 교회 일들에 열심을 내지만, 신학자이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실질적 무신론자들’(practical atheist)입니다. 위선으로 포장 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신자인지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신자들 같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15절)하는 자들입니다. 사실 신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특별히 종교적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진흙이 토기장이를 우습게 여긴다면, 피조물이 창조주를 업신여긴다면 얼마나 기가 차겠습니까? 박살날 일 밖에 뭐가 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삼가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 제스처에 기만당하지 않습니다.
| 기도 | 우리의 위선을 용서하시고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