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3 10:21
[25] 이사야 14:12-23
제목: 날개 없이 추락하는 교만
묵상 포인트: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시며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앞장에서 우리는 잔혹한 폭군이며 거만하기 그지없던 바벨론 왕의 몰락에 대해 들었습니다. 영화롭던 그가 죽음의 장소인 스올(음부)까지 떨어졌으며 구더기와 지렁이가 우굴 거리는 무덤 속에 던져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지경까지 추락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갈 정도로 높아지고 교만했던 그가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끌어내려 지하 세계로 던지실 것입니다.
이제 본문은 다시금 그가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다른 각도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 지평선 너머에 떠있는 ‘계명성’(샛별, 금성, Day Star)으로, ‘아침의 아들’(Son of Dawn)로 묘사됩니다. 이 두 명칭은 고대 근동의 가나안 신들의 이름으로, 바벨론과 가나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계급이 낮은 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주신(主神)의 권세와 능력을 탈취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바알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알과 여러 다른 신들이 모여 ‘북극의 산’, ‘집회의 산’(13절)에서 자리싸움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높은 구름들 위에 올라가려는”(14절) 교만한 왕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 “구름을 타고 다니는 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 바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통해 타락한 천사의 정체를 추적하거나(루시퍼, 참조, 눅 10:18; 벧후 2:4) 아니면 고대 근동 지역의 신화에 나오는 우주적 산들과 만신전(萬神殿, pantheon)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만 본문의 의도는 불을 보는 듯 분명합니다. 자신을 ‘지극히 높은 분’(하나님)과 동등하게 놓으려는 바벨론 왕의 지극한 교만(hubris)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만은 그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들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13-14절).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 달리 말해 자신을 창조주의 위치에 놓을 뿐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적 주권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 보다 더 큰 교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시도는 인류의 초기 에덴동산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첫 인류를 향한 뱀의 유혹은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살려는 의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율적 존재라는 생각, 이것이 최초의 인류가 냉큼 먹어버린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인류는 이 유혹으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 가운데 “우리를 시험(유혹)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악한 자)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라는 문구가 더욱 더 절실하게 들려오는 듯싶습니다.
| 기도 | 아래만 쳐다보는 교만한 자가 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