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찾아갈 만 한 곳 한 군데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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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읽었던 소설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명작 《죄와 벌》 초반부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50대 중반의 술꾼 마르멜라도프가 술에 취해 술집에서 아무 사람들을 향해 아무 말이나 지껄여댑니다. 정말 외롭고 고독한 사람입니다. 술주정뱅이에게 뭔 친구가 있겠습니까? 아내로부터도 무시당하고 사는 술꾼입니다. 때마침 술집에 들어와 외롭게 앉아 있던 소설의 주인공 20대 청년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이렇게 주절댑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한테도 갈 데가 없다면! 아냐, 어디라도 찾아갈 만 한 곳이 한 군데쯤은 있어야하지 않겠나?”

 

“찾아갈 만 한 곳 한 군데쯤은~” 소외된 인간 마르멜라도프에겐 확실히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난에 찌들어 빡빡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 라스콜리니코프 역시 “갈 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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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사람들, 한갓 지지 않는 삶에 지친 영혼들, 쉼이 없어 초췌해진 아버지들, 안식을 그리워하지만 어디에도 편안하게 있을 곳이 없는 여인들, 부평초처럼 떠도는 젊은이들, 정착할 곳이 없는 십대들, 불안에 시달려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은 아내들, 이리저리 찾지만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는 이방인들, 분주한 군중 속에서 고독의 병을 시름 앓고 있는 영혼들, 두리번거리지만 누구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 이방에서 사는 나그네들, 어딘가를 그리워하지만 그곳에 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아 슬퍼하는 순례자들, 누군가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유기감에 고통 하는 사람들, 공허함에 압도되어 망연자실한 장년들, 절망에 기대어 그 날을 기다리는 노인들, 소속감을 상실해 방황하는 직장인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웃들, 모두 소외된 인간 군상들입니다.

 

“불안한 영혼”(restless soul)들입니다. 안식할 수 없고, 쉴 수 없고, 평안이 없고,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두려움에 쌓인 영혼들이겠지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시 42: 5,11)

 

불안한 이유는 분명한 듯합니다. 그들 모두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 영혼의 고향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집에 이르기까지는 쉼이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귀향(歸鄕)하기 전까지는 불안해 할 것입니다. 문제는 돌아갈 집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갈 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갈 데”, “갈 곳” 말입니다.

 

진정으로 “갈 곳”에 있기를 내 스스로에게 기원합니다. “찾아갈 만 한 곳 한 군데쯤~”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까지 내 영혼은 결코 안식할 수 없습니다!”는 어거스틴(St. Augustine)의 고백이 새롭게 들리는 밤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Photo by Bonnie K. Eckart Dussia

Bonnie K. Eckart Dussi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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