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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문화와 바이블의 문화
창 11:1-26
찬송: 331장
묵상 포인트: 혼란과 혼돈의 세상이 일치와 이해의 세상으로 바뀌기를 기도하자.
바벨탑은 신전(神殿)형태를 띤 고대 고층 건축물로서 전문용어로 “지구라트”(ziggurat)라 불립니다. 밑이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맨 꼭대기는 제사를 드리는 신성한 장소로 사용됩니다. 거칠게 말해, 바벨탑 이야기는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미래와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자율적 인간을 그리고 있는 “집단적 탕자 이야기”(참조, 누가 15:11-24)입니다. 홍수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존해서 사는 법을 배웠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겠다는 원초적 죄를 다시 짓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하나님께 의존하여 사는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려고 했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바벨문화 역시 이와 같습니다. 벽돌을 만들고 역청을 발명하고 성과 대를 쌓을 정도라면 대단한 문명의 발전입니다. 요즈음 말로 기계공학의 혁명적 발전입니다. 그러나 마천루를 지으려는 인간의 욕망의 정점에는 언제나 자신들의 “이름” 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4절에 “우리”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아니라 항상 “우리”가 주어입니다. 우리가 이것도 하고 우리가 저것도 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온 지면에서 흩어지는 것을 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선 홍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지면에서 흩어지거나 사라지는 이유는 문명의 창달이나 기술의 진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악한 길로 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처럼 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죄 중에 최고의 죄인 “교만”이고, 이 교만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살겠다는 것이 자율적 인간상입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탕자의 비유는 그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성과 대를 쌓아 하늘에 닿으려 하면,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시편 2장의 한 구절처럼,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웃으시고 그들을 비웃을 것입니다”(4절). 바벨의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스스로가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지만 흩어지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사전달이 소통하자고 했지만 혼란스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바벨사건의 역전을 일어날 것입니까? 성령님께서 사람들에게 오실 때입니다. 오순절 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자 서로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한 서로간의 온전한 이해의 회복이야말로 바벨을 넘어 오순절로 가는 길입니다.
기도: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삶을 일궈내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