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25]

“넉넉한 용돈과 해야 할 일들”

 

[본문: 로마서 9:30-10:4]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요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Christ is the end of the law so that there may be righteousness for everyone who believes”(Romans 10:4)

 

 

 

‘용돈’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이에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단어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용돈으로 쓰라고 호주머니에 돈을 슬쩍 밀어 넣어준다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말할 것도 없지요. 기분이 아주 좋을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수고해서 번 돈에 대해서는 뿌듯함과 긍지를 느낍니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호의를 베풀면서 사용하라고 준 용돈일 경우는 기쁨과 기분 좋음 그리고 고마움이 그 반응일 겁니다. 거저 공짜로 받았기 때문에 기쁘고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말에 “용돈은 공돈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용하라(用)고 받은 돈은 내가 노력하거나 애를 쓰지 않은, 그래서 내 땀과 수고가 들어가지 않는(空) 돈이란 뜻입니다.

 

십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용돈’을 줍니다. 물론 요즈음은 아내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남편들도 적지 않고, 착한 자녀들은 늙으신 부모님께 정규적으로 용돈을 드리기도 합니다만 십대들은 엄마 아빠가 주는 용돈이 그들의 유일한 수입원(!)이기 때문에 용돈 받는 날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할 것입니다. 적어도 용돈을 받는 날만은 아이들은 부모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빠, 고맙습니다.” “사랑해, 엄마” 하면서 온갖 아첨을 다 떨기도 합니다. 하지 않던 포옹이나 뽀뽀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아빠는 자녀들에게 엄마를 도와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집안 청소하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 침대를 정돈하는 일, 잔디를 깎는 일, 설거지를 하는 일, 세탁기를 돌리는 일 등이 있을 겁니다. 자녀들은 얼마동안, 아마 용돈의 효력이 지속되는 동안, 부모가 시킨 일들을 즐겁게 할 겁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진공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랩을 흥얼대며 설거지도 하고, 빨래를 개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용돈의 약효가 떨어졌다고 생각되는 어느 날부터 상황은 달라집니다. 부모가 하라고 했던 모든 일들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왜 이걸 해야 되는 거야?” “우리 엄마는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까?” “지금 친구 만나 PC방에 가야되는데…” 등 엊그제의 즐거움과 고마운 마음은 사라지고 짜증과 불만, 불평과 신경질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엊그제까지는 고마운 마음에 콧노래 부르며 즐겁게 했던 집안일들이 이제는 삼키기 힘든 커다란 알약이 되었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된 것입니다. 그들 마음에는 어느새 기쁨과 감사가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부모와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은 더 이상 즐겁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 오고가야할지 매우 어색한 고역의 시간입니다. 그저 억지로 자녀의 의무를 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도 빨간 불이 켜집니다. 작은 말들이 관계를 뒤틀리게 하거나 꼬이게 만듭니다. 가정에 평화와 안온함이 간데온데없습니다. 기껏해야 자기 의무를 하는 자녀만 있을 뿐입니다. 의미 있는 대화도, 사랑을 느끼는 가족애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계가 작동하듯이 그렇게 굴러갈 뿐입니다.

 

아마 바울 사도가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를 우리 시대의 말로 표현했더라면 이러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적으로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아브라함이 나왔고 이삭과 야곱이 나왔습니다. 애굽의 학대와 착취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나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들의 나라에서 다윗과 솔로몬 같은 위대한 왕들도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독특한 큰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집 전부가 자기들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넉넉한 용돈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집안을 잘 가꾸고 단장하도록 ‘율법’들을 주셨습니다. 달리 말해 이스라엘 사회가 평화롭게 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명령들과 율법들과 규례들을 주신 것입니다. 마치 자녀들에게 설거지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진공청소기를 돌려 집안을 깨끗하게 하라는 부모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처음에 얼마간 그들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마음은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잘못된 우월감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이나 나라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들을 지키는 일을 감사와 고마움의 표현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이 얼마나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인지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표지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런 태도는 결국 다른 사람들(이방인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했고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졌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하나님의 자녀처럼 이렇게 애쓰고 노력하는데 당신들은 뭐야?”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지키지 않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뭐 예수라는 인간을 믿으라고?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라고?”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그건 말도 안 돼!” 심지어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들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까지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율법을 잘 지키려고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의(義)를 얻을 수 있을까요? 달리 말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노력하는 유대인들을 보시면서 “너는 충분히 내 자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어!” “이제부터 너는 내 백성이야, 내 자녀야!”라고 하시겠냐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는 것은 자신들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어떻게 완벽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자녀)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은 율법의 저주아래 있게 되었다”는 말의 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말씀이 옛적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할 겁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는 길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줄을 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 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여기서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이라는 감사의 손으로 겸손하게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의지하고 행위를 의지하지 않는다”(32절)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이고 은혜로운 행위입니다. 이것에 대항하는 일은 마치 머리로 반석(돌)을 깨뜨리려는 어리석은 자의 행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아마 이런 뜻일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람이 구원을 받는 길은 네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내 호의와 은덕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말씀을 순수하게 믿는 자들에게 “그래 너는 이제부터 내 자녀야, 너희는 내 백성이야. 네 과거가 어떠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냐. 너는 내가 한 이 말을 믿기만 하면 되. 그러면 너는 내 자녀가 되는 것이야. 이것을 ‘의롭다’라고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든든한 반석이 될 것입니다. 그 위에 자기 인생 집을 세운 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태풍이 불고 풍랑이 일어도 그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말씀 자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이것을 헬라어로 ‘스캔들’이라 합니다)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깨어지고 부셔져 박살 날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어리석은 자의 말로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벗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고마워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용돈을 넉넉하게 주신 부모가 고마워 그가 시킨 집안일들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자녀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넉넉한 용돈(은혜)이 먼저고 그 후에 그에 대한 보답의 행위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먼저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는 뜻이 이 말입니다. 여기서 ‘마침’이란 ‘목적’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목적을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적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의 본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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