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그렇지 않을 수도

 

미국의 여류 시인 제인 케니언(Jane Kenyon)이 있습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존 팀머만(John H. Timmerman) 교수의 저서를 통해서였습니다. 팀머만 교수는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 시에 있는 캘빈 대학교의 영문과 교수였고 당시 나는 같은 캠퍼스 안에 있는 캘빈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삼십여년전이 되어가는군요. 교정에서 가끔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고 그의 강의에 관심도 있었기에 그의 학문적 관심사는 나의 또 다른 취미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연구 전문가로서 유명한 학자인데 그가 쓴 크리스천 묵상집도 두 권이 됩니다. 하나는 The Way of Christian Living (Eerdmans, 1987)이고 또 다른 하나는 Waiting for the Savior: Reflections of Hope (InterVarsity Press, 1977)인데 후자는 한글로도 번역되었습니다([구주를 기다리며], 장종현 역, 기독교연합신문사).

 

팀머만 교수가 쓴 책 가운데 Jane Kenyon: A Literary Life (Eerdmans, 2002)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제인 케니언은 미시간 대학에 다닐 때 19살 연상의 교수이며 시인인 Donald Hall과 결혼하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미국 문단에서 계관시인으로 칭송받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제인 케니언은 결혼 후 수많은 시들을 썼습니다. 주로 정겨운 시골의 풍경과 일상적 삶의 이야기가 그녀 시의 특징이었습니다. 한편 그녀는 평생 조울병으로 고통 했으며 생애 말년에 찾아온 백혈병과 투병하였습니다. 그녀의 몇몇 시들은 병과 싸우는 과정을 형상화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Having it Out with Melancholy” “The Sick Wife” 등이 그러한 시들입니다. 아쉽고도 슬프게 그녀는 47세가 되던 1996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48세가 되던 2007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나의 제수 고 홍경주 시인(숙명여대 영문과 교수)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제인 케니언이 쓴 수많은 주옥 같은 시들 가운데 오늘은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시 한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우리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려낸 그렇지도 않을 수 있는데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통해 평범하기 그지없어서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 여기는 일상의 삶이라는 게 결코 당연한 것도 평범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시입니다.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기는 시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선물인지를 알려주는 알람 시입니다. 먼저 내 개인적 번역을 싣고 뒤에 원문을 싣습니다. 유익한 감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튼튼한 두 다리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고소한 우유에 시리얼을 타서

잘 익고 흠 없는 복숭아와 함께 먹었지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애완견을 끌고 자작나무 숲 언덕까지

산보를 했어요.

그리고는 오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어요.

점심에는 내 짝과 함께 소파에 기대었어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우린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은촛대에 불을 켠 멋진 식탁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루를 마치려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림들이 걸려 있는 방에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오늘 같은 행복한

또 다른 날을 꿈꾸었죠.

 

그러나 나는 알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Otherwise”

 

I got out of bed

on two strong legs.

It might have been

otherwise. I ate

cereal, sweet

milk, ripe, flawless

peach. It might

have been otherwise.

I took the dog uphill

to the birch wood.

All morning I did

the work I love.

 

At noon I lay down

with my mate. It might

have been otherwise.

We ate dinner together

at a table with silver

candlesticks. It might

have been otherwise.

I slept in a bed

in a room with paintings

on the walls, and

planned another day

just like this day.

But one day, I know,

it will be otherwise.


Jane Kenyon


[교회당 첨탑, 이석호, from Sydney]

이석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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