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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 예식 서약유감

 


얼마 전 봄철 노회에 참석하여 목사 임직 예식을 참관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자가 목사 안수를 받기에 참석하여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보통 봄이 되면 장로교단들은 노회를 개최하고 이때에 목사 안수를 거행합니다. 예배 형식으로 진행되는 임직예식 순서 중에 서약이 있습니다. 다음은 전형적인 서약문의 일부입니다.

 

1.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한 법칙으로 믿습니까?

2. 본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도개요, 대소요리 문답은 신구약 성경에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하기로 서약하십니까?

3. 본 장로회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모법을 정당한 것으로 알고 승낙하십니까?

 

문제는 이런 서약문이 목사 임직 뿐 아니라 장로나 권사 안수집사의 임직예식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라는 것입니까? 임직예식에 참석할 때마다, 그리고 이 서약문을 묻고 대답하는 광경을 쳐다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예를 들어 위의 서약문 가운데 두 번째 조항에 들어 있는 본 장로회의 신조를 임직하는 분들이 정말로 알기나 하는지요? 게다가 웨스트민스터 신도개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의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지요? 신도개요를 한 번이라도 읽고 공부해 본 일이 있는지요? 심지어 대소요리문답이란 용어의 뜻을 알고 있는지요? 그 요리문답이 어느 문답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아는지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요? 우스게 소리로 요리문답이라면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알려주는 문서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청소년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본 장로회 신조니 웨스트민스터 신도개요니, 대소요리 문답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솔직히 말해 그들 대부분은 서약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不知不識間)위증”(僞證, perjury)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법정 판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증언이고, 증언을 하는 사람을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서약을 하고 증언대에 오릅니다. 그런데 거짓으로 증언하면(위증) 그건 무서운 범죄가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교회의 직분(그것이 목사와 장로 권사와 집사 직으로의 임직)을 받으면서 서약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가볍게 !”라고 대답하거나 !”라고 대답하라고 시키는 것 역시 매우 위중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약속이나 서약을 매우 가볍게 취급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읽지도 않고 알지도 않는 문서를, 심지어 그 문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문서에 대해 성경에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信從, 믿고 따름)하기로 서약하겠다는 대답을 요구한다면 뭔가 매우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나는 한국교회가 두 가지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첫째로 교회의 직분을 허락할 때는, 그가 목사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장로나 권사나 집사의 경우라도, 자기들이 믿는 신앙의 조항들(articles of faith, 줄여서 신조[信條])을 분명히 배우고 알고 습득하고 자신들의 신앙생활의 지침으로 삼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왜 요즈음 한국교회가 감정 중심의 예배 일변도로 치우치면서 도무지 신앙의 지성적 측면을 무시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감각적 비트나 현란한 음악, 무드 있는 예배와 개인적 정서에 호소하는 설교나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정작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알고 예배하는지 무엇을 믿고 신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이 말은 우리가 믿는 신앙의 내용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신앙은 허울 좋은 자기도취나 자기만족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부평초(浮萍草)와 같아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믿음이기에 자그마한 이단사설(異端邪說)에도 쉽게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한국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권합니다. 자신들이 신앙의 조항을 얼마나 마음으로 숙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섬기는 교인들에게 신앙의 조항들을 힘써 가르쳐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자라가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달리 말해 신앙교육에 힘을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교리교육의 중요성입니다. 여기서 교리(敎理)란 단순히 머리로 암송하거나 외워대는 몇몇 신앙의 공식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敎理)는 영어로 닥트린”(doctrine)이라 하는데, 이 단어는 가르침에 해당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달리 말해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것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교리는 집의 설계도와 같습니다. 교리교육은 우리의 신앙 집이 지어져가는 과정에서 어느 것이 서까래 이고, 어느 것이 기둥들이고, 어느 것이 벽이고, 어느 것이 지붕이고, 어느 것이 골조이고, 어느 것이 외부장식인지를 알려주는 신앙교육입니다. 교리교육은 신앙의 골다공증 환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신앙의 뼈 속에 골수를 집어넣은 기초공사요 골조공사입니다. 이처럼 교리교육은 신앙성장을 위한 교육입니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은 교리에 대한 수많은 내용들을 배우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이 빗어지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교리에 대한 "인포메이션" (information)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격을 "포메이션"(formation)하는 것이 교리교육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가는 과정을 위한 교육이 신앙교육의 핵심입니다. 어쨌든 각 교회는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여 교인들이 정상적으로 성숙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교인들은 전적으로 목회자들의 이니셔티브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점에서 지역 목회자들은 대오 각성해야할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목사를 비롯하여 모든 크리스천들이 진실 말하기”(truth telling) 습관이 몸에 배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서약을 하거나 하도록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습관이 한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슬픈 현실은, 목사나 일반 교인들이 진실 추구” “진실 말하기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 풍토를 반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는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살아내는 공동체입니다. 아쉽게도 거짓을 밥 먹듯 하는 습관은 이런 임직예식에서 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말하고 대답하는 관행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진실을 생명같이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의 직분을 맡았을 경우, 특별히 목사일 경우 그들이 강단에서 선포하는 진실 말하기가 정말로 진실할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진실”(“진리”, truth)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리이며 진실이라면 교회는 그를 따라 진실 말하고 진실을 살아야하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집단적으로 세상을 향해 진실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용례에 따르면 서약은 피와 맹세로 확증하는 예식이었습니다. 언약 체결이 바로 그런 예식입니다. 약속과 맹세와 서약은 죽음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중대한 예식입니다. 그렇다면 소위 언약의 종교, 약속의 종교라고 불리는 기독교와 그 교회의 구성원들은 거짓말하기를 버리고 진실 말하기에 올인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임직예식 서약식을 보고 느낀 유감(遺憾)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의 검은 머리에 자신감을 표하며 나의 흰 머리를 놀려대는 친구 주도홍 교수와 함께 광나루 장신대 칼빈동상 앞에서 한 컷 찍다: 한국개혁신학회 참석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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