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짧은 담요” 유감

 

 

학자풍의 스타일로 잘 알려진 우루과이의 오스카 타바레스(63) 감독이 16강전 상대인 한국 축구에 대해 흥미로운 ‘은유법’을 동원했답니다. 그는 26일 오전(한국시간)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16강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팀 경기를 보며 준비가 잘 된 팀이고, 아주 공격적인 팀이라는 생각을 했다. 공수전환도 오랫동안 준비를 해 온 모습이 보인다”라고 말한 뒤 “하지만 수비전환을 못할 때는 문제가 있었다”라고 지적했답니다. 이어 “축구는 짧은 담요다. 머리를 가리면 발가락이 드러나고, 발가락을 가리면 머리가 드러나게 마련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축구는 짧은 담요다.”라고 말한 것이 한국 축구를 보고 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축구일반에 대해 말씀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현지의 한국 기자들은 한국 축구를 두고 한 말이라고 기사 제목을 뽑았습니다. 어쨌든 우루과이 감독께서 멋진 은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머리를 덮자니 발가락이 보이고 발을 덮자니 머리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게 짧은 담요의 한계이겠지요. 그러나 오늘 밤에 한국 축구가 짧은 담요인지, 아니면 공은 둥글다는 사실이 맞는지 한번 기다려 보아야하겠습니다. ‘자불라니’를 잡으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임을 이번 월드컵 경기를 통해 입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가 ‘짧은 담요’ 이야기를 해봅니다.

 

나처럼 크지 않은 사람들이야 사이즈가 웬만한 담요라면 결코 불편할 수가 없지만, 제 키가 크다고 허세를 부리며 키가 작은 자기 엄마 머리를 자기 가슴에 꼭 쥐어 품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엄마가 어디 있는 거야, 왜 안 보이는 거야!” 하며 능청을 떠는 막내아들에게 짧은 담요는 여간 불편 한 것이 아닙니다. 종종 짧은 담요는 왕짜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머리를 덮자니 발가락이 보이고 발을 덮자니 머리가 나옵니다. 짧은 담요는 추운 겨울에 증오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굳이 추운 겨울이 아니더라도 날씨가 좀 선선한 날, 피곤이 몰아쳐 급히 집에 들어와 소파에 누웠습니다. 몸이 으실으실 추워 옆에 있던 담요를 덮었습니다. 실눈 잠이 들었는데 발이 추운 듯하여 발가락으로 깔짝거리며 담요를 발 아래로 내렸습니다. 그러자 머리와 목 부분까지 찬 공기가 밀고 들어옵니다. 다시 무의식적으로 얼굴 위로 담요를 끌어 올립니다. 아래 부분이 허전하고 썰렁합니다. 발이 나온 것입니다. 젠장, 신경질이 납니다. 짜증스럽습니다. 짧은 담요, 태생적 한계입니다.

 

이 ‘짧은 담요’ 에피소드를 떠올리다가 혹시 크리스천들의 신앙생활에도 “담요 은유”(blanket metaphor)가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천들 가운데 열심히 있는 신자들 일수록 ‘짧은 담요 신드롬’을 겪습니다. 주님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봉사하고, 교회에서 부지런히 일합니다. 그리고는 언제나 자신이 모자라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참 좋은 크리스천들이지요. 그러나 그들에게 신앙생활은 언제나 완성해야할 임무요 일입니다. 이쪽을 잘하려다보니 저쪽이 부족한 듯합니다. 저쪽을 잘 채우려다보면 이쪽이 허전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 주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짧은 담요입니다. 머리를 덮다보면 발가락이 나옵니다. 발을 덮으려다보면 머리가 나옵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본디 짧은 담요입니다. 본질적으로 넉넉한 담요가 주어지기 전까지는 우리의 머리와 발가락을 모두 함께 덮을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머리를 덮으려다가 발가락이 나오고 발을 덮으려다가 머리가 나오는 일을 반복해서 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말입니다. 이것이 “짧은 담요 신드롬”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긴 담요는 있나요? 머리와 발을 넉넉하게 덮어줄 수 있는 긴 담요 말입니다. 있습니다. 있고말고요! 앞서 이야기 했듯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짧은 담요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신실하심(은혜)은 언제나 긴 담요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잡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잡으셨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은혜)을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긴 담요입니다. 요즘처럼 더울 때 짧은 담요로만 만족하시겠지만, 추워보세요 긴 담요가 얼마나 그리운지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은혜는 무한하여 길고 깁니다. 영원에서 시작하여 영원까지 이르는 긴 담요입니다.

 

우루과이 감독님, 한국 축구만 짧은 담요가 아니라 당신의 축구를 포함하여 모든 축구는 다 짧은 담요입니다.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기 까지 민유(萬有)를 다 아우르고 만유를 다 덮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긴 담요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그분은 동일하게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루과이 전을 앞둔 날 저녁에, 2010년 6월 26일 저녁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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