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하나님의 방문" 유감

2014.11.09 21:44

류호준 조회 수:2929

하나님의 방문유감

- 28장을 읽고 -

 

상속문제로 아버지를 속이고 쌍둥이 형님을 기만했던 치사하기 그지없는 인간, 양손에 무엇인가 움켜잡고 있지 않으면 허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인간, 기어코 성공의 사닥다리 맨 위쪽에 걸터앉아야 속이 후련해지는 인간, 남이 어떻게 되는 내 알바는 아니야 라고 내심 외치는 인간,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야곱이라 불렀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의 뜻은 움켜잡다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만나러 나타나셨습니다. 그것도 꿈속에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기치 않은 방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일생은 하나님의 예기치 않은 방문으로 급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방문이었기에 야곱 일생의 전환점이 되었을까요? 치사한 집안 도둑놈은 형의 분노의 칼을 피하여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머나먼 곳으로 도망하게 된 것입니다. 도망 중에 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낯선 곳 들판이었습니다. 뒤에서는 두려움이 쫓아왔고 앞에서도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과거의 수치심과 미래의 두려움이 낯선 곳 들판에서 하룻밤을 지내야하는 도망자 나그네 야곱의 영혼을 무섭게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득한땅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훗날 그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나왔지만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는 홍해 앞에서 망연자실하였던 것과 같았습니다. 바로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도 아득하여 광야에 갇혀있게 된 것입니다. 수치스런 과거와 미래의 두려움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할 처지에 놓여 있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낯선 나그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꿈과 환상가운데 하나님의 방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무엇하러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신이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낯선 밤에 만난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야곱이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해 반드시 처벌하러 오셔야하는 그런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정의로운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야곱이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리는 꿈을 꾸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죄책감에 시달려 초췌해지도록 밤새 그를 들볶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회개하고 반성한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형에게 용서를 구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치졸한 인간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기막힌 환상을 보여주시다니요? 우주만큼이나 길고 긴 사닥다리가 하늘 꼭대기까지 닿았는데 그 위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사닥다리 맨 꼭대기 위에 하나님께서 도무지 상상치도 못할 황홀한 약속까지 해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는지 너를 지키며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쨌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저버리는 전혀 다른 하나님이었습니다. 현란하기 그지없는 하늘 환상은 우리의 기존 생각 틀을 완전히 부셔버리고 있습니다. 이때 야곱은 탄성(歎聲)을 지릅니다. 그렇습니다. 경탄과 탄성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반응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해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녕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십니다! 내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곳이 어딥니까? 하나님이 계신다고 한 이곳이 어딥니까? 교회입니까? 성전입니까? 기도원입니까? 종교적 장소입니까? 영성훈련센터입니까? 24시 기도의 집입니까? 그 어느 곳도 아닙니다. 야곱이 정녕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한 그 곳은 그럴듯한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이곳은 도망자의 신세로 불안한 심정으로 긴 밤을 지새워야하는 곳이었습니다. 중환자실일수도, 가정파탄의 벼랑일 수도, 사업실패로 인한 도피자의 밤일 수도, 아득한 미래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골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십니다! 내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야곱의 탄성 고백은 오랫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처해있는 곳은 어디든지 그곳을 택하여 자기의 거주지로 삼아 사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베개를 삼았던 돌을 세워 제단을 쌓고 그곳을 성소(聖所, sanctuary)로 삼았습니다. 장차 이곳을 지나는 외로운 나그네들에게 남겨두어 그들로 이곳이 거룩한 곳,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임을 알게 하려했을 것입니다.

 

거친 들판에 세워진 초라한 돌기둥이 벧엘(하나님의 집)이 된 것은, 야곱처럼 그곳을 지나야만 했던 후대의 야곱사람들로 하여금, 야곱이 말했던 이곳이 어디든, 우리가 어디에 있든, 이곳이 우리가 정말로 멀리 도망해왔다고 생각되는 그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기치 않은 방문은 현란한 복음이며, 은혜의 정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현란한 복음, 거절할 수 없는 은혜에 격정적으로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집(벧엘)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문유감(有感)이었습니다.

 

[현란한 가을 하늘 단풍, 박정현 사진]

현란한가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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