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3 11:46
"남십자성(南十字星)유감"
내가 지구에 도착한 이후로 평생 북반구에만 살다보니 지구의 다른 반쪽 남반구가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살았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다니면서 세계지도를 공부하기도 했고, 내 연구실에도 지구본이 있기는 하지만, 이론으로 아는 것과 경험하고 느끼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와 가슴사이의 거리는 수십 광년인가 봅니다.
지난 2주 동안 남반구에 다녀왔습니다. 세계 삼대 미항(美港)중의 하나인 호주의 시드니를 방문하였습니다. 한국은 여름 무더위로 온통 전국이 찜질방이었겠지만 남반구는 겨울이었습니다. 물론 온화한 기후 탓에 그리 춥지는 않은 겨울이었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청명하고 푸르던지 마치 코발트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불루마운틴(Blue Mountains)의 하늘이 그러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겐 “하늘불패”라는 말이 있다지요?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이랍니다. 그 하늘이 푸르고 푸른 하늘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특히 육안으로 밤하늘의 별을 볼 때면 더욱 “하늘불패”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이곳에 있으면서 북반구사람들인 나에게 생소하고 재미있게 들리는 몇 가지 말들이 있었습니다. 집을 사려면 북향집을 사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또한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인 “따스한 남쪽 나라”가 이곳 남반구에선 “따스한 북쪽 나라를 찾아 왔습니다.”라고 해야 말이 됩니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시편 강의 시간에(시 8장) 종종 별과 달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북반구에 살면서 별에 관해 이야기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북극성”(Polar Star)일 것입니다. 항로를 잃어버린 항해사나 깊은 산중에서 방황하는 탐험가에겐 북극성은 생명의 빛과 같을 것입니다. 방향을 알려주거나 위도를 찾게 해주는 고정별(Pointer)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반구에서는 북극성을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남반구의 사람들에게 북극성이라는 별의 상징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기야 이곳 시드니 사람들에게 북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금방 기능적 번역을 하면서 “우리에겐 남 십자성이 있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 십자성”(Southern Cross)이라!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우리나라가 월남에 파병했던 군수물자지원 부대의 이름이 “십자성”부대였고, 이제는 고인이 되신 현인씨가 부른 "고향만리"라는 흘러간 노래가운데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니 얼굴”이란 첫 줄 가사도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남 십자성”을 실제로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하고 소름끼치는 경험이 되었는지요! 옛날 옛적 남반구의 남태평양에서 항해를 하다 풍랑을 만나 표류한다면 선장은 나침판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그 나침판의 방향은 다른 곳이 아니라 남 십자성을 향했을 것입니다. 남 십자성이 보이는 쪽에 남극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용어인 “남 십자성”(Southern Cross)은 4개의 대표적인 별들이 모여 십자가 모양을 이루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알파별(Alpha Crucis), 베타별, 감마별, 델타별이 남십자성의 멤버들입니다.
아시다시피 빛의 속도를 말할 때 우리는 보통 “빛은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달린다.”고 합니다. 며칠 전 시드니의 찬란한 밤하늘에서 보았던 남 십자성의 별빛이 그렇게 찬란하고 애련하게 느낀 것은 적어도 그 빛들이 각각의 별들의 고향에서 먼 거리를 떠나왔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각각 321광년, 353광년, 264광년, 364광년의 거리를 날아서 지구 시드니의 내 눈에 도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니 남반구 시드니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경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북반구에서 보는 북극성(Polaris)이 434광년을 달려 오늘 밤 우리의 눈에 도착하듯이, 그렇게도 먼 거리를 달려와 나는 맞이해주는 남 십자성이 그렇게도 정겹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별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별을 보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별 볼일이 없으신가요?” "그래서 요즘 뵈는 것이 없으시군요?" 라고요. 오늘 따라 떠나온 남반구의 남 십자성이 유난히도 그립습니다. 남 십자성 유감(有感)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기억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아주십니까! (시 8:3-4)
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Ps. 8:3-4)
[아래는 시드니의 Palm Beach입니다. 시드니신학대학의 늦깍이 학우 이석호님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