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쌍놈과 죄인” 유감

2014.05.15 11:40

류호준 조회 수:5510 추천:2

쌍놈과 죄인유감

 

I

 

197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회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부흥사 가운데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이천석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6.25 전쟁을 겪은 상이군인 출신의 욕쟁이 거구 목사로 경기도 청평에 있는 한얼산 기도원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부흥회 설교 중 종종 자신의 예를 들면서 급격한 회심과 소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곤 했습니다. 일종의 간증 집회였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유명한 문구 가운데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왕창중창주자장창이란 구호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회개는 이 의성어처럼 왕창중창주자장창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만해도 부흥회엔 통회자복과 회개를 강조하곤 했습니다.

 

그분이 인도하는 부흥회의 남다른 특색 가운데 하나는 강단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그분의 상스런 욕설이었습니다. “이놈저놈은 기본이었고, 양성평등원칙에 따라 이년저년도 불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몹시 불쾌하였습니다. 어떻게 목사란 사람이 강단에서 저런 상스런 욕설을 내뱉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하는 교인들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마치 피학대성 쾌감을 만끽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주님의 종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 하나라도 떨어뜨리지 않고 다 달게 받아 먹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약간의 정교한 신학의 잣대를 들이대자면 그분의 설교는 완전 꽝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두 서너 시간의 부흥회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해서 나중에 그분의 아들이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 상대자는 성결교 목사님의 딸이었고, 그 여자가 바로 내 아내의 대학 친구라는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이런 시시 꼴꼴한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는 아닙니다.


이천석 목사님의 한쪽 다리는 의족(義足)이었는데 그 엄청난 체구를 이끌고 강단에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땀을 흘리면서 설교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과 회개를 촉구하는 복음전파가 참으로 신묘막측하게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 신기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II

 

한번은 설교 도중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인과 쌍놈 중에 어느 것이 듣기에 더 거북하더냐?” “너희들에게 쌍놈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냐? 아니면 이 죄인들아! 라고 하는 것이 더 마음을 상하게 하냐?”는 일갈이었습니다. 청중들은 어정쩡한 상태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대답은 커녕 갑자기 찬송 한 장을 같이 부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라는 찬송(257장)이었습니다. 이 찬송은 과거 1960-1970년대 산상집회나 일반부흥회 때 많이 부르던 고전적 찬송입니다.


(1)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2)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오

      거룩한 하나님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3) 나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4) 거룩한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넘치는 은혜의 찬송을 기쁘게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후렴)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박수를 치며 모두가 열정적으로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12절 그렇게 힘차게 불렀습니다. 3절에 들어서자 이런 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그런데 그만!” 하시더니 찬송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청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자 이천석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가사에 죄인이 있지? ‘죄인쌍놈으로 바꿔서 불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회중은 부흥사의 말씀에 순종하여 힘차게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 같은 쌍놈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그런데 이 구절이 넘어가는 순간 다시 이천석 목사님이 찬송을 중지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회중석에 앉아 있는 여성들을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이것들아! 너희가 남자여? 쌍놈들이라고 하게! 너희들은 바꿔서 불러봐! 쌍년이라고!”


그리고는 다시 3절을 부르게 했습니다.

    남자들은 나 같은 쌍놈이 용서함 받아서~”,

    여자들은 나 같은 쌍년이 용서함 받아서~”로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온통 장내는 울음 반, 웃음 반이 되었습니다. 어떤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함을 받았다는 강한 확신과 그로 인한 위안때문에 회개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어떤이들은 쌍놈과 쌍년이라는 말 때문에 한바탕 자지러진 웃음을 터뜨린 것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습니다. 이것을 누군가 "예전적 소동"이라고 했던 가요? 

 

III

 

이렇게 끝난 추억의 부흥회가 며칠 전 갑자지 떠올랐습니다. “죄인과 쌍놈이란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 단어가 마음에 더 깊은 상함과 역겨움을 가져오는가?


아마 일반적인 반응은 쌍놈쌍년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을 알기 시작한다면 죄인이란 단어가 더 깊은 상처와 역겨움과 추함과 부끄러움을 가져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교회와 우리 신앙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됩니다. 불행하게도 현대 교회는 죄인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저명한 윤리신학자 헨리스톱 박사에 따르면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attack)이거나 하나님으로부터의 도주(flight)"입니다. 하나님께 대들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싫어서 그로부터 멀리 떠나가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설명되는 것이 죄이고, 죄는 인간의 본질적 질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현대인의 심성구조에는 기껏해야 인간의 정서적 상처만을 중요시 여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한 마음의 치유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교회 안에 유행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쌍놈쌍년이라 부르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분노하면서도 죄인이라 불러도 마음에 아무런 고통도 탄식도 없습니다. 죄인이라해도 "괜찮은 죄인" 정도이지 누구도 자신을 "몹쓸 죄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가 처한 슬픈 자화상입니다.

 

성경은 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릅니다. 하나님께 도전하고 반역하고 대들고 그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체면을 구기는 쌍놈쌍년과 같은 욕설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죄인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습니다. 죄의 중대성, 죄인의 파멸, 심판의 엄중함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이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거절할 수 없는 사유(赦宥)의 은총, 그 깊이와 너비와 높이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싸구려 은혜”, “값싼 은혜로 만족하고 사는 헤픈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다시금 찬송 2573절을 두 버전으로 불러 보세요. “나 같은 죄인이~”나 같은 쌍놈쌍년이~”으로. 어느 버전이 심장에 비수를 맞은 듯한 통증과 고통을 수반합니까?


[요한 칼빈의 모토입니다]


칼빈모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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