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9 11:05
만나: 하나님이 내려주신 하늘의 음식
출애굽기 16:4-36
기적적으로 갈라진 홍해를 가로질러 건너간 후에, 이스라엘인들은 홍해 언덕에 서서 하나님께 격정적인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명 “모세의 노래”(출 15:1-18)로 알려진 찬양으로, 모세가 이스라엘인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한 찬양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군중들은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을 홍해의 물속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였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론의 누이 미리암이 손에 탬버린을 들자 모든 여인들도 탬버린을 들고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모세의 노래”에 화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찬양과 감사의 축제도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며칠 가지 못해 그들은 척박한 광야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행군은 목마름과 배고픔을 동반하였고 지도자 모세에 대해 불평과 불만의 말들이 사방에서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 부족으로 인한 불만이 간신히 “마라”(“쓴 맛”이란 의미)라는 곳에서 물을 발견하면서 잠시 가라앉는 듯했지만, 물이 얼마나 쓴지 도무지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자그만 기적을 베푸시면서 모세에게 나무 조각을 물에 던지라고 하자 곧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척박한 광야에서 생존하는 것이었습니다. 밭도 논도 없고, 곡물상도 가게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먹을 양식을 찾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기적이 없이는 이스라엘인들의 40년간의 광야 여정은 파멸로 끝장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허덕이게 되자,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대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우리를 광야로 끌고나와 굶어 죽이려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자유고 독립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먹을 것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에서 떡을 비처럼 내리게 할 것이니, 너희는 집 바깥으로 나가 하루치 양식을 매일 거두어들이라.”(16:4) 그리고 하나님은 매 금요일 아침에는 두 배로 양식을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안식일에 양식을 거두려 수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이스라엘인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에 이슬이 내렸습니다. 이슬이 마른 후에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남아있었습니다.”(16;14) 이상히 여긴 이스라엘인들이 서로에게 물었습니다. “만-후?”(“이것이 무엇인가?”, 이 히브리어 “만-후”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만나”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했던 양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때로부터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의 식물을 먹을 때까지 만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같이 하늘에서 내렸습니다.(수 5:12) 광야에서 하늘의 양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천사의 음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만나는 기적적인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 첫째로, 만나는 매일 하늘에서 내렸고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4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렸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각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맞는 양의 만나가 공급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의 양보다 더 많이 거두어들인 사람들은 거둔 만나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적게 거둔 사람도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과욕 때문에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거둔 만나는 밤사이 냄새가 나고 상하게 되었고 좀 벌레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16:20)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보통 때보다 두 배나 거둔 금요일의 만나는 안식일에도 신선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만나는 깟씨처럼 보였는데 모양은 흰 색깔에 맛은 꿀에 묻힌 웨이퍼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를 요리해서 먹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솥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습니다.
만나를 먹게 되었을 얼마동안, 이스라엘인들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광야에서 매일 같이 먹을 것을 공급받았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만나의 맛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만나가 지겨워졌습니다. 문득 옛날 애급에서 살면서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났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서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 11:4-6)
이렇게 이스라엘인들은 지속적으로 낑낑대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매일같이 똑같은 맛의 만나를 먹다보니 지겨워지게 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만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더 이상 노예가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비록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먹을 양식이 풍족하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면서 삶의 불행과 비극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그들의 불평과 불만은 마침내 하나님을 몹시 화나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모세 역시 감사할 줄 모르는 이런 인간들을 이끌고 광야 길을 가야하는 일에 절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가장 침통하고 어두운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 부탁드리오니 더 이상 제가 비참해지기 않게 해주세요.”(민 11;15)
분노하시는 하나님은 만나가 지겹다며 고기를 달라며 짜증내는 한심한 이스라엘인들의 요구를 제대로 갚아주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래, 고기를 먹고 싶다고? 고기를 실컷 먹여주마.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서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내게 들렸으므로 내가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여 주리라!”(민 11:20). 구역질이 나기까지 그들에게 고기를 처먹이신 것입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인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만나를 먹었습니다. 물론 무슨 마음으로 먹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들의 불평과 불만을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께 감사하며 만나를 먹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속으로 계속해서 짜증을 부르며 마지못해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합니다.
[아래 사진은 홀랜드의 한 마을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