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건실한 신학과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

- 백석신학 저널 2012년 가을호 권두언 -

 

류호준

(대학원 신학부총장 겸 신대원장, 구약신학)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도전과 위기에 대한 담론들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어둡고 암울한 소식이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다. 교인 수의 급격한 감소, 교회의 노령화, 목회자의 윤리부재, 상업주의적 사고구조, 세속적 성공주의, 긍정의 힘의 신화, 정의를 상실한 교회운영, 관료주의적 교단정치와 교권주의, 불균형적 목회자 수급, 공교회성의 상실,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 감퇴, 건전한 신학의 실종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의 실종이라는 담론들이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치명적 병리 현상은 회복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개혁과 회복은 시작되어야 할까? 교회의 생명이 다시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을까?

 

어려울 때일수록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교회는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말고 본연의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한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 역시 교회의 본연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 행상인들로 전략할 것이다. 특별히 신학교 역시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본연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학교는 단순히 학문의 전당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교수들의 사명은 중요하다. 신학생으로 하여금 통전적 사고를 함양하도록 자극하고 인도해야 할 사명이 그들에게 있다. 신학도들이 신학을 편식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훈육하며, 편향된 시각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지 않도록 교정해주고, 하나님과 사람과 피조세계에 대한 통전적 인식 체계를 갖도록 각자의 분야에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가 상대해야 할 세상을 향해 복음의 절실함과 필요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신학교육은 항상 성경과 함께 신문을 정확하게 독해하는 능력을 신학도들에게 함양시켜야 한다. 특집으로 꾸민 이번 호에서 이성희 목사(연동교회)는 현대사회를 정보과학 시대인 동시에 영성 시대로 규정하면서 과학의 발달은 교회로 하여금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생명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접근하면서 교회에서 생명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미래 목회를 위해서 그는 여덟 가지 하라로 요약되는 경험적 권면을 한다. 한편 박종옥 목사(백석신대원 출신)는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성경교육의 중요성을 그의 목회 경험과 임상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교회의 개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올바로 교육시킬 때에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이루게 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최갑종 교수(백석대 총장)는 예수님의 12제자 교육을 중심으로 신학교육의 모델을 제시한다. 먼저 예수님의 교육방법을 말한 후에 예수님의 제자교육 내용을 아홉 가지로 대별하여 설명한다. 끝으로 예수님의 제자교육 내용을 신학대학원 교육에 접목시켜보면서, 신학교육은 선별된 소수를 정예화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신학교육에 대한 다각도의 다양한 제안을 보면서, 나는 복음 전도자들이 될 우리 학교의 신학도들이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를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실한 신학과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두 가지 요소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그의 사역은 생명과 활력으로 넘칠 것이지만, 둘 중 한쪽으로 저울추가 기울기 시작하면 사역은 병들게 된다. 먼저, 단단한 신학에만 천착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교회는 강의실이 될 것이고, 살과 같은 부드러움과 생기에 찬 활력을 상실하고 기껏해야 교리들만 일렬로 나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사역자를 무엇에 비교할까? 고대인의 인골을 발굴 복원하는 고고학자에 비유하면 어떨까? 머리에는 갈색 모자를, 입에는 마스크를 쓰고 발싸개까지 하고 꼼꼼하게 삽·괭이와 빗자루··붓을 다루며 고대의 인골을 발굴하는 어떤 고고학자를 상정해보자. 그는 무덤에서 유골을 발굴하자마자 매우 조심스럽게 시신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는 땅속에 수천 년 동안 묻혀있던 시체의 뼈들을 하나하나 붓으로 흙을 털어내며 가지런히 진열하여 맞춰놓는다. 그리고 여러 학문적 융합 연구와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인체복원 작업을 한다. 물론 그 결과물로 온전한 형태의 고대인을 복원하였겠지만, 그 속에는 생명의 꿈틀댐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상당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거의 완벽하리만큼 성경과 교리를 확실하게 꿰차고 있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경과 전승을 준수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생명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반면, 풍부한 상상력에 치우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걷잡을 수 없는 주관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기초가 없는 허황된 성경해석과 뜬구름 잡는 말과 씹을 것이 없는 설교, 그런 설교자의 모습이 될 것이다. 누가 허풍쟁이의 원맨쇼가 되지 않는다고 보장하겠는가?

 

이 두 가지의 균형에 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위대한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가 다른 방향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경건(영성)에 관한 그의 고전적 저술인하나님께 가까이에서 카이퍼는 이성주의와 신비주의의 양극단에서 벗어날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전통은 이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를 바로 잡는 균형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객관주의적 신학과 신앙, 다시 말해 뼈다귀를 추려내어 조직적으로는 완벽히 외현하는 고고학자적 신앙은 이성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성주의는 끝이 섬세하고 눈부시게 투명하며 모양이 아름다운 얼음 결정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그 얼음 밑에서 생수의 강줄기는 너무 쉽사리 말라버린다. 거기에서 교리적 추상 개념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열렬하고 경건한 마음에서 보이는 참된 신앙심은 사라지고 만다.” 한편 이와는 반대적 위치에 있는 주관주의적 신앙은 신비주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많으며, 이런 성향은 허망한 것들 위에 신앙의 기초를 놓게 된다. 그러한 태도를 카이퍼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나님을 추구하려는 영혼은 무의식중에 하나님께서 구분해놓으시고 가까이라는 단어로 한정해놓으신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어서 그분의 존재에까지 파고들어 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의 결론은 우리의 논의를 좀 더 분명하게 해준다. 명쾌한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생수를 마시지 않고 교리적 고백만을 중시하면 삭막한 정통주의에서 영혼은 고갈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교리적 규범을 명백히 알지 못한 채 영적인 감정만 내세우면 병폐적인 신비주의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단단하고 건실한 신학과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의 긴장감 도는 균형이야말로 건강한 신앙적 근육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건강한 영성의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 그 필요한 요소들 가운데 이 두 가지가 들어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백석신학저널 편집인 겸 신학대학원의 교육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나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신앙적 모범과 인격적 만남을 통해 신학생들을 헌신적으로 교육하고 인도하여 오셨던 권호덕 박사님(조직신학, 1995.3 2013.2)과 김의원 박사님(구약학, 2007.3 2013.2)의 퇴임을 아쉬워하면서 신학대학원을 대표하여 그동안 신학교육을 위해 인생의 황금 시절을 바치셨던 그 아름다운 헌신에 대해 마음 깊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평생에 걸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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