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1 22:08
“바룩이와 바둑이”
이왕이면 엑스트라보다는 조연으로, 조연보다는 주연으로 무대에 섰으면 한다. 파트타임 사역자보단 풀타임 사역자가, 부목사직보단 담임목사직이 좋다. 그런데 누군가 밑에서 평생 부목사로 산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늘에서 일하고 산다면 어떨까? 한 번도 자기 명함을 만들지 못하고 비서로만 있다면 어떨까? 여기에 평생 부목사로, 비서로, 조연으로 무대 뒤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소개한다. 이름 하여 “바룩”이란 사람이다. 바룩은 바둑이처럼 주인을 졸졸 따라 다녔던 사람이었다.
23년간에 걸친 예레미야의 말씀 사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바룩은 그 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 개인적 고난과 심적 고통을 다음과 같은 탄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에게 불행이구나! 야웨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신음으로 지쳤으며 안식이 없구나!” 아마 바룩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받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 메시지로 인한 격렬한 도전과 감당할 수 없는 심적 압박과 고통을 경험한 듯 보인다. 그가 지금 받아 적고 있던 메시지는 단순히 받아 적어 보관할 객관적 기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숨 막히는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선언의 목소리가 있었고,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호소도 있었고, 말씀 사역을 위해 고초를 겪는 예레미야의 고통스런 고백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바룩은 그저 앉아서 예레미야의 말을 받아 기록하는 무감각한 기계는 아니었다. 그도 예레미야처럼 고통 하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족 유다에게 내려질 무서운 심판과 재앙을 생각하면 그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곡하듯이 자신을 향하여 “아이고, 나에게 재앙이로구나!”하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예언자 예레미야와 함께 사역했던 바룩의 신실성은 높이 칭찬 받아야 한다. 그는 사실상 주연급 인물인 예레미야의 그늘에 가려진 조연급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말씀의 사역자인 예레미야를 도와 죽기까지 충성한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어찌 보면 그의 일은 대단하거나 이름을 낼만한 명예로운 일은 아니다. 그는 한평생 예레미야의 개인 비서관 역할, 특별히 서기관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참으로 무료하기 이를 데 없고, 이름도 빛도 없이 사는 평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예레미야를 돕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는 예레미야서라 불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바룩’이 ‘복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고 복 받은 자이었다.
- 앞으로 언젠가 나올 예레미야 주석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