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6 01:38
"경쟁의 사각 링에 던져진 교회들"
지금의 한국교회를 돌아볼 때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공교회성”(catholicity)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공교회성은 교회의 속성 중의 하나인 “보편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달리말해 “기독교회는 보편적이라”는 말에서 출발합니다.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그분의 선한 뜻 안에서 결정하신 것 외에 기독교에는 아무런 경계선이 없다. 성별이나 연령,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국적이나 언어 등 아무런 경계선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교회성이란 하나님이 제정하신 기관으로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지닌 공적 기관이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공적(公的)이라함은 물론 사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일차적 뜻이 있겠지만 긍정적으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지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의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를 구성하고 형성한다는 뜻일 겁니다. 한 걸음 더 나가 “[여기서 말하는] 보편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충만(pleroma)에 의해 살아가고, 우리가 다른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내포할 뿐 아니라(참조, 엡 3:14-19) 또한 이것은 우리가 온갖 종류의 편협함과 싸우고 다양한 측면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분명 하나님이시고, 전 시대를 걸쳐 존재하는 지상의 모든 교회는 서로 동역(同役, co-work) 하는 교회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거룩한 의무를 부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의 사적 소유물이 아닙니다. 비록 특정한 사람이 개척하여 설립했다 하더라도 교회는 결코 그 사람의 전유물이나 소유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고도 당연한 사실입니다만 현재 한국교회의 불편한 진실은 교회가 사적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개척한 사람이 그 교회의 주인이거나 유명한 목회자가 그 교회의 대주주라는 겁니다. 아니면 주식회사의 이사들처럼 몇몇 의기투합한 사람들이 설립한 교회는 그들이 만든 정관에 따라 움직여지는 그들의 교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교회에는 그러한 강고한 기득권 세력들이 존재합니다. 기득권 세력은 개인 목회자일수도 있고 돈 많은 특정한 장로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몇몇 창립 멤버들일 수도 있습니다. 상당수의 그런 교회들은 자연스레 “개교회주의”에 함몰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교회주의의 밑바탕에는 천민자본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웃 교회들은 언제나 상업적 경쟁자일 뿐입니다. 서로끼리 힘과 세를(돈, 숫자, 규모 등) 과시합니다. 때론 지역교회들의 앞 다툰 공격적 전도 행위는 호객행위로까지 비춰지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에 깊이 물든 교회의 서글프고도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돈 돈 돈이 궁극적 신앙의 신(우상)이 됩니다.
사실 무한경쟁시대에 교회들마저 서로 간 출혈 경쟁에 돌입한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입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경쟁트랙에서 무한 질주를 하려합니다. 크게 성공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살아남기 위한 각가지 묘수들을 도안해냅니다. 물론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목회자 후보생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목회정글 속에 투입하게 무한 경쟁에 적자생존이라는 비인간적 악순환의 쳇바퀴에 갇혀 있게 되는 제도적 서글픈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해 상당히 많은 목회자들이 천민자본주의의 희생자가 되어 생계형 사역자로 전락한지 꽤 오래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사실입니다. 신적 소명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성찰 없이는 이 사실은 큰 교회들의 경우나 작은 교회들의 경우나 마찬가지입니다.
지상의 교회들이 자기 교회에만 시선을 집중한다면 그건 이기주의적 행태일 뿐 아니라 교회의 공교회성에도 위배되는 일입니다.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천박하고 미개한 생각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도시교회나 농어촌교회나, 육지교회나 섬 교회나, 대형교회나 소형교회나, 수도권교회나 지방교회나, 아파트 밀집지역 교회나 한적한 시골 전원교회나, 한국교회나 일본교회나, 유럽교회나 동남아시아 교회나, 미국교회나 러시아교회나, 우간다 교회나 아르헨티나 교회나, 백인교회나 흑인교회나,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오순절교회나 성공회교회나, 개혁교회나 가톨릭교회나, 서방교회나 동방교회나, 모두 하나님의 자녀 된 교회들이며, 우리는 그들 모두를 포함한 “공교회” 믿습니다라고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그들이 섬기는 교회의 교인들에게 이웃교회를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들은 결코 경쟁자가 아닙니다. 한정된 파이조각을 먼저 가로채야하는 경쟁자 사이가 아닙니다. 이웃교회를 넘어 지상의 모든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나는 공교회를 믿습니다!”(Credo in Ecclesiam Catholicam)라고 진심어린 신앙고백을 한다면 말입니다. 아래 두 일화(逸話)는 교회의 공교회성을 내게 새롭게 각인시켜준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에피소드 1
거의 30년이 되어가는 아주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서울 구로동의 어느 상가에 자리 잡은 개척교회에 설교를 부탁받아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일찍 집에서 나와 버스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걸어 사전에 알려준 교회주소를 가지고 어림잡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스마트폰도 구굴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주소하나 달랑 가지고 찾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전에 전화로 알려준 곳 근방에 내려 이리저리 물어물어 가던 중이었습니다. “이즘이면 나올 것 같은데…” 하며 걷고 있었고 시계를 보니 예배 시작 15분전이었습니다.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저만치 자그마한 교회당이 보였습니다. 삼삼오오 안내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저기 가서 물어봐야지.”하고 그리로 걸어갔습니다. 내게 주보를 건네며 “어서 오세요!” 라고 반갑게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장 차림에 신사가 교회로 오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수고하시네요. 다름 아니라 이 근방에 낙원교회라고 있다는데, 혹시 아시면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하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그 순간 그 안내 위원의 얼굴 안색이 바뀌지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약간은 짜증스럽다는 투로 “예, 잘 모르겠습니다!”하며 다른 교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하며 당황했습니다. 거절당했다는 느낌이라 할까 무시당했다는 느낌이라 할까, 영 뭔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시간에 쫓기는 설교자는 허겁지접 그 골목을 돌아서니 대로가 나왔습니다. “분명 이 근방이라고 했는데~”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예배시작 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어 주변 상가 건물들을 스캔하듯이 훑어보았습니다. 저만치 이층 상가 창문에 “낙원교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까 그 교회와 1 분 거리도 안 떨어진 곳에 말입니다. 설교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들어갔습니다. 독자 여러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교회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이 다니는 교회 주변에 있는 이웃 교회들에 대해 얼마나 아시고 관심이 있으십니까?
에피소드 II
의욕과 패기로 가득 찬 젊은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아주 작은 교회에 목사로 부르심을 받아 사역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사역에 대한 푸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사역지로 나갑니다. 교회는 그가 사는 도시의 외곽에 위치하였습니다. 물론 몇 명되지 않는 초라한 개척 교회이지만 그에게는 큰 꿈이 있었습니다. 장차 큰 교회를 이루리라는 꿈 말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남가주의 하늘은 맑고 화창하였고 거리는 한산하였습니다. 그는 장차 꿈이 실현될 교회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시내를 통과하고 있던 중 신호등에 걸렸습니다. 아침 9시 반경이었습니다. 오로지 앞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신호등이 빨간 불에서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온 몸이 불처럼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얼굴도 화끈거렸습니다. “이게 뭐지?” 분명 남가주의 일요일 아침 햇살은 밝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것하고 내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지?” “자동차 운전석 앞 유리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몸이 달구어진 것은 아닐 텐데”라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소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잭, 네가 이 길을 운전하고 다니면서, 바로 이곳 신호등 앞에 설 때마다 한 번이라고 왼쪽을 돌려다 본 일이 있니?” “뭐라고요?” 그는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차가 정지 했을 때 고개를 돌려 한 번이라도 왼쪽을 쳐다본 일이 있냐고 물었다!” 이 순간 그는 더 이상 대꾸할 수 없었습니다. 물어본 목소리도 그 대답을 알고 그도 그 대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번번이 옆을 처다 보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곳에는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자존심이 그의 고개가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것입니다. 멋진 일요일 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옆에 끼고 그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장차 어느 날 당신 교회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어!” 그 불편한 마음이 매번 그 신호등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신호등 앞에서의 순간. 이삼 분도 되지 않는 잠시의 정지순간에 그는 성령의 강력한 음성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과 같이 그의 심령에 임한 순간이었습니다. 남가주의 멋진 일요일 아침 그는 성령의 뜨거운 빛에 온몸을 쏘인 것입니다. 이것을 뭐라 불러도 좋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온몸이 불덩어리 같아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이에 신호등의 색깔이 바뀌었습니다. 빨간 불에서 파란불로. 가속기를 밟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교회당에 도착하니 텅 빈 교회당 공간이 그날따라 성스럽게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텅 빈 성소(聖所, sanctuary)였습니다. 그날 예배에 뭐라고 설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예배 후 교인들이 앉았던 자리에 차례로 앉았습니다. 그 좌석에 앉았던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온 맘으로 기도했습니다. 열 댓 명의 자리에.
그 다음 주일도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교회로 가는 길에 이상하게도 그 침례교회 앞 신호등에 서게 되었습니다. 빨간 불빛의 신호등.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교회를 쳐다보았습니다. 삼삼오오 밝은 얼굴로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눈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께 예배하러 가는 저 분들 모두에게 하늘 은혜를 덧입혀 주세요. 저 교회 역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는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곧 파란불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로부터 그의 개척교회의 길 위에 파란 불이 켜지게 되었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미국 오순절교단인 Foursquare Church(순복음교회)의 저명한 목사인 잭 헤이포드(Jack Hayford, 1934년생)의 젊은 시절 목회 일화입니다. 내가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오하이오 주에서 목회할 때 참석했던 목회자 세미나에서 잭 헤이포드로부터 직접 들었던 강의 내용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여러분들을 위해 적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영광의 주님 찬양하세”로 알려진 복음성가 Majesty의 작사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1969년 그의 나이 35살이 되던 해에 교인수가 18명밖에 안 되고 평균연령은 65세가 되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근방에 점점 시들어가는 아주 작은 교회(the first Foursquare Church of Van Nuys, California)의 목사로 부르심을 받고 목회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6개월만 봉사하기로 했지만 결국 평생 그 교회를 목회하게 됩니다. 그 교회는 1980년대 초에는 미국의 대형교회 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할 정도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잭 헤이포드 목사님은 65세가 되던 1999년에 삼십년을 담임 목회했던 “길 위의 교회”(The Church on the Way of Van Nuys)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수십 년 전 이 강의를 들은 이후로 내게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 섬기는 교회로 갈 때마다 나는 몇몇 교회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헤이포드 목사님을 기억하며, 지나치게 되는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 교회에 드나드는 당신의 양들이 풍성한 꼴을 먹고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세요” 혹은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을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케 하는 사역자 되게 해주세요.” 혹은 “영혼의 위로와 힘을 얻고 돌아가는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 등등 짧게나마 기도를 드립니다. 은퇴한 지금도 교회당을 볼 때마다 특별히 상가에 자리 잡은 교회들을 볼 때마다 잠시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글을 읽는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사역자들에게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같은 지역에 있는 지역교회들은 서로가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라는 생각을 하십시오. 그들은 한 성령 안에서 한 분 하나님과 한 분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하나님 나라에서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동역자) 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저 교회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
이 교회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라고 그 전에는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교회, 이 교회는 누가 주인일까요?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