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2 20:06
"철학자와 신학자, 골프장에서 만나다"
어언 8년 전입니다. 앨범을 찾아보니 정확하게 2011년 8월 11일입니다. 철학자 강영안 교수와 신학자 류호준 교수는 미시간 주 로웰 시 근교의 화살촉(Arrowhead Golf Course) 골프장에서 만났습니다. 골프 카트를 타고 18홀을 돌면서 4시간 정도 전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골프를 치는 데 일인당 20달러(2만원) 정도이니 머리 식히기에 딱 좋은 노릇이었습니다. 신학자와 철학자, 철학자와 신학자가 골프장에서 골프 회동을 한 것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는 만나면 주로 긴 학문적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 뭔가를 배우는 일에 대한 즐거움을 갖는 일에 있어서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강 교수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을 하였고, 나는 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을 하였기 때문에, 철학과 신학, 신학과 철학의 대화는 항상 진지하고 즐거웠습니다. 강 교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나도 같은 대학교의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동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골프를 대하는 두 사람의 시각과 입장이 달랐다는데 있습니다. 철학공부가 그렇듯이 골프에서도 엄정성, 철저성, 논리성, 객관성, 치밀함을 가지고 그린 위에 서는 철학자 강영안 교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학문(science)으로서의 골프 철학이라 할까? “저기까지 몇 야드냐 되나요?” “몇 번 그립을 들어야 하나요?” “아이언이 좋을까요? 우드가 좋을까요?” “여기서 그린까지 몇 야드가 남았나요?” “바람이 저쪽에서 부는 것 같은데 스탠스는 이게 좋지 않을까요?” 질문은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골프장을 교실로 변화시키는 강 교수는 그린에 올라가서도 여러 번 자세를 고쳐 잡고 또 잡습니다. 철저함, 집요함, 정확성의 추구 말입니다. 그는 책과 코치가 가르쳐준 것을 머릿속에 펼쳐놓으며 교본대로 정석대로 골프를 합니다. 정말 공부하고 연구하듯이 필드에 섭니다. 와우. 이게 철학자 강영안입니다.
한편 신학자 류호준은 좀 더 낭만적이고 감성적으로 골프에 임합니다. 물론 공이 훅이 나거나 슬라이스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린 위에 올라선 골퍼의 기본임을 알기에 류호준은 티샷에 임할 때마다 가슴 속으로 주님의 말씀을 암송합니다. “율법을 네 앞에 두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하느니라.” 율법은 따지고 공부하고 지켜야할 조항들의 모임이 아니라 삶의 체계라고 생각하기에 몸에 밴 감으로 공에 타격을 가합니다. 물론 공이 우로나 좌로 치우쳐 모래 벙커나 수풀 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수풀을 헤치면서 공을 찾습니다. 정확하게 거리 조정을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은 잠깐, 그래도 예상치 않은 수확이 있습니다. 수풀 속에 숨어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고, 개구리가 연못에서 뛰어오르는 것도 보고, 유리알처럼 맑은 그린 위에 착륙한 청둥오리들을 보기도 하고, 저 멀리 하얀 뭉개 구름들이 토실토실한 양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호, 이게 신학자 류호준입니다.
천문학자는 철저성과 치밀성과 논리성을 총 동원하여 천체의 움직임과 별들을 연구합니다. 학문은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를 받은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 딸과 함께 그랜드 캐니언에서 야영을 합니다. 그날따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었습니다. 그가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천문학적 지식을 강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크리스천인 그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는 시로 고백하고 노래하지 않을까요?
철학은 놀람과 경이와 경탄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신학 역시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이와 경탄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철학과 신학은 모두 "시적"(poetic)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은 모두 시적 운율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 모두 시인일 겁니다. 시인은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poet가 헬라어로 "만들어 내는 사람' Maker, Creator라는 것은 아시겠죠?)
결론: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는 “일상”입니다.
철학자와 신학자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둘 다니라!
티샷을 날리기 전 그린 위에서 인증샷
샬롬^^
하나님의 사람들은
일상이라는 오선지 위에서
하나님의 선하고 위대하심이라는
운율을 만들고
운율을 읊조리고
운울을 그려내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