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7 18:22
“이름 부르기” 유감
친구 이름을 불러 말아?
이름이라하면 성(姓)을 포함한 이름입니다. 내 이름은 “류호준”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친한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를 땐 성을 빼고 “호준아!”라고 합니다. 친한 친구끼리는 “야자타임”을 갖습니다. 내가 야자 타임을 가지는 친구들은 광현, 기홍, 성택, 재근, 경운, 영동, 범의, 현규, 은득, 상훈, 성훈, 도홍,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끼린 맞먹습니다. 그렇다고 무례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요.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친구라 하더라도, 친하면 이름(first name)을 부르지만, 친하지 않으면 성(last name)으로 호칭하여 부릅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 류”라는 친구가 있는데, 친한 경우는 “다니엘!”(Daniel), 줄임말로 “댄”(Dan), 애칭으로 “대니”(Danny)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서먹서먹한 관계나, 처음 만나는 사람은 “미스터 다니엘 류” 혹은 “미스터 류”라고 호칭합니다.
이름 부르기와 계급사회
한국에선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에 무지하게 신경을 씁니다. 부르라고 지은 것이 이름일 텐데 이름이 있어도 마음 놓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픔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직위나 학위를 꼭 붙여 부릅니다. 회장, 대표이사, 장관, 국무총리, 설립자, 총장, 당회장 등등. ㅎㅎㅎ 그러니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직위에 목을 매고 있는지 잘 알 것입니다. 위아래 따지지 않고 이름을 부르면 버르장머리 없거나 못 돼 먹었거나 막 돼 먹었거나 호로 자식이라고 비난 받습니다.
우리 사회에선 또래 사람을 만나면 조심스레 상대방의 나이를 탐문합니다. 마지막엔 “민증(주민등록증)까기”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 다음부턴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으면 아랫사람에게 이름을 부르거나 하대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형님 동생하고 지냅니다. 어쨌든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어떤 친구가 조크로 이런 글을 썼습니다. “Everyone has that one friend who you call by their last name!” 원래 영어 조크의 의미는 아니지만 내가 한국실정에 꿰맞춰 억지 의역하자면 “친구라 하더라도, 친하면 이름(first name)을 부르지만, 친하지 않으면 성(last name)을 호칭하여 부른다. 즉 누구에게든지 서먹서먹한 친구 한 명 즈음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렵니다. 저 조크의 원래 의미(original meaning)는 추후에 올려드리겠습니다!
누가 친구인가?
성경기록에 따르면, 하나님이 특정인을 찍어 “내 친구” “내 벗”이라 부른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입니다(대하 20:7; 사 41:8; 약 2:23). 모세를 하나님의 친구처럼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출 33:11).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다른 많은 호칭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 딸, 하나님의 하인,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군사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벗(친구)이란 호칭은 매우 드뭅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경우가 유일할 것입니다.
뭔 일 때문에 친구라, 벗이라, 동무라 불렀을까요? 모세의 문맥을 살펴보면 친구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자기의 속내를 내비추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친구는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이뤄진 친밀한 관계일 겁니다. 대면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입니다.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소통 채널이 잡음 없이 가동되는 사이가 친구입니다. 명백하고 투명하게 말하고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민 12:8; 신 34:10). 달리 말해 내숭을 떨거나 음흉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와 말을 하면 밝은 낯에 맑은 공기를 마시는 기분일 겁니다. 이런 친밀한 관계를 친구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친구라 불린 사람들은 하나님과 맞먹거나 그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말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부르기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엄정주의에 빠져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부르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에라도 마음에 사랑과 존경을 흠뻑 담아 불러야하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마음 그릇에 사랑과 존경을 담뿍 담아 불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보통명사 이름인 “하나님”도 그렇지만, 그분의 고유명사 이름인 “여호와(야웨)”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십계명중 제 3계명인 “너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호명하지 말라!”는 계명의 긍정적 가르침일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문서 “제 38번째 주님의 날”의 질문과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제 99 문 : 제 3 계명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응답: 저주, 거짓맹세, 또는 불필요한 맹세를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거나 오용하지 말고,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어서 그러한 무서운 죄악에 동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약을 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오직 존중함과 경외함으로 사용하여서 우리가 적합하게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에게 기도하며 모든 말과 행동에서 그에게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결국,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소환하는 일입니다. 터놓고 속내를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친구끼리는 그러해야합니다. 성(姓, last name)이 아니라 이름(first name)으로 부를 수 있는 친구 말입니다. 하나님도 나를 부를 실 때 성(姓, “미스터 류!”)으로 부르시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 풀 네임(Full name, “류호준!”)으로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풀 네임은 최후심판대에서 출석부를 부를 때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부르실 때 이름(“호준아!”)으로 부를 실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다. 아멘.
"영춘화 중 하나인 복수초" 사진 전영호 박사(평촌 무지개교회 장로)
2019.03.17 19:01
2019.03.17 21:30
교수님을 빼고. 대신 아!를 붙여라. 도사야....ㅎㅎㅎ
2019.03.17 19:32
호준목사님~ 친밀하면서 무례하지 않은 사랑의 관계의 지경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길 바라게 되는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2019.03.17 21:33
고마워. 희봉이....ㅎㅎㅎ
2019.03.17 20:09
이름을 불렀기에 관계가 생긴 게 아니라 관계가 있었기에 부른 것이 이름.
2019.03.17 21:31
고뤠? 하나님은 먼저 이름을 부르시고 관계를 맺는다고 하시던데? 아닌가? ㅎㅎㅎ
2019.03.17 21:08
읽다보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나네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올려주신 얼음새꽃(복수초)의 꽃말을 찾아보니 '영원한 행복'이네요. 그분께 내 이름이 불려지면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글과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사진이라 생각됩니다~
2019.03.20 20:37
교수님~
반갑습니다~ 펫북보다가 "좋아요"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지개성서교실도 알게 되고 넘 고맙습니다.
자주 들어 와서 글 읽어도 되죠?? ^^
호준교수님! 참 친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