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6 22:47
일상 에세이: “추천서 유감”
네 글자로 된 한자어에 “이단공단”(以短攻短)이 있다. 자기의 결점을 생각지 않고 남의 잘못을 비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자신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근데 이게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는 것을 어제 밤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자기성찰이 가져다준 위대한 발견이었다!
교수생활하면서 수많은 추천서를 썼다. 여기서 추천서라 함은 제자들이 외국 유학을 갈 때 써달라고 부탁해서 써주는 입학 추천서도 있고 교회의 담임목사나 부목사로 가는데 필요한 추천서도 있다. 어쨌건 내 경우는 아주 좋아서 대부분의 제자들은 추천서를 써 준 일에 대해 매우 고마워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아주 가끔은 있었다. 한 사람 정도? ㅎㅎㅎ 어쨌든 얼마나 필요했으면 그랬겠지만, 황급히 달려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선생님을 존경하느니 하며 내 마음을 산다. 존경한다는 말에 깜빡 넘어가(ㅎㅎㅎ) 정성껏 추천사를 써준다. 마땅히 그래야하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는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근데 그 다음이 좀 그렇다.
필요하거나 아쉬울 때 달려와 추천서를 요청하는 사람의 경우, 그 후 깜깜 무소식이다. 입학이 되었는지 아니면 청빙을 받게 되었는지 가타부타 후속 소식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주지 않는 경우다. 나는 몹시 궁금한데 전혀 연락이 없다. 그럴 땐 궁금증을 넘어 아주 괘씸한 생각이 든다. 그저 사무적이거나 상투적으로 추천서를 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 나쁜 녀석들이다! ㅎㅎㅎ
그런데 갑자기 아주 오래전 내 경우가 떠올랐다. 내가 바로 그 놈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 거의 40년 전 미국으로 유학 가려할 때 나도 네 분 스승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았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가는 추천서는 당시 합동신학교의 김명혁 교수님과 고인이 되신 신복윤 교수님으로부터, 미국 캘빈신학교로 가는 추천서는 손봉호, 정성구 교수님으로부터 받았다. 두 군데서 모두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캘빈신학교로 결정하였고,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결정 중의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다시 네덜란드 자유대학교로 갈 때는 이제는 고인이 되신 미국 캘빈 신학교의 Bastian Van Elderen(신약학)과 John Stek(구약학) 교수님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았다. 학교 입학에 관한한 내 인생에 통틀어 6명의 선생님들에게 추천서를 받은 셈이다.
근데 돌이켜 보니 어느 누구에게도 곧바로 입학여부에 관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진정성 어린 고마움의 편지 한 장도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깜짝 놀랐다. 이제 보니 나도 아주 나쁜 놈이었다. 선생님들에게 괘씸한 놈이었다. 물론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내가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 옛날을 생각하고 신복윤, 김명혁, 손봉호, 정성구 선생님들께 “불초 제자입니다. 아주 먼 옛날, 선생님들의 추천서 덕분에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긴 했다. 물론 그분들은 자신들이 나를 위한 추천서를 썼다는 자체도 기억하시지 못하였으니,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속적인 왕래가 없었다는 증거다. 그 불찰과 잘못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어쨌든 누군가의 덕을 보거나 은혜를 입었으면 늦기 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사람됨의 최소한 예인데 말이다.
늦게 철이 드는 모양이다. 옛날 한창 젊을 때, 자베르적 정의감에 충만하고, 미래에 대한 그림이 분명하고, 옥석을 가리는 분별력이 누구보다 더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남보다 더 똑똑하겠노라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달렸을 때였다. 잠시 쉬어가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을 성찰해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되돌아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들과 순간들이 꽤 많이 보인다. 철 들자 망령난다고 우리 어머니가 종종 하신 말씀이 불현 듯 떠오른다. 남 이야기 할 것 없다. 젊은이들이여, 정의를 내세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에 인생을 바쳐야할 정도로 인생이 길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인생은 누군가의 "덕분"(은혜)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고마움의 재고가 떨어지지 않도록 가끔식은 “감사 창고 재고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파일을 정리하다 수십 개의 추천서들을 읽다보니 떠오른 “추천사 유감”이다.
“아주 추운 와이오밍 주의 겨울” Credit Mark Boname
샬롬^^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삶)글을 통해 제 삶을 뒤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가르침과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수님!!!!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