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상 이야기: 인생 별것 있나요?”

 

독일 카셀에서 목회하는 홍성훈 목사가 일주일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내일 출국한다고 해서 형님들이 계신 성지(聖地) 방배동으로 호출하였다. 일산까지 모시러 간다고 해도 기어코 혼자 휠체어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우겨서 못이기는 척하고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황소고집이라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방배역 3번 출구에 왔다고 내려와 모셔가란다. 이젠 내가 휠체어 밀 군번이 아니라서 제자 목사들을 불러내었다. 김상훈과 이범의. 이범의 목사는 이제 박사가 되었다고 내 말을 안 듣고 오후에 천천히 오겠다고 한다. 이럴줄 알았으면 박사를 천천히 주었을 것을 말이다(ㅎㅎㅎ). 김상훈 목사에게 점심 사준다고 꼬드겼더니 제대로 통했다(ㅋㅋㅋ). 일식 점심 유혹에 말려든 상훈 목사는 정시에 나와 내 대신 홍 목사님 어거(御車)를 잘 밀어드렸다. 지체 높으신 도옹은 늦게 나타났다. 넷이서 스시 집에서 점심을 잘 먹고 백석예대 교목실장이신 크리스 조(Chris Cho)의 연구실로 들이닥쳤다. 주인은 없었지만 부총장 도옹을 앞세워 연구실 문을 발로 차고 열어달라고 하니 교목실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여 문을 열어준다. 주인 없는 방을 점령하였다. 조금 후에 급히 달려온 크리스(Chris)는 딸이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수해온 원두커피라고 일장 자랑질을 한 후에 공손하게 손님들에게 향기로운 커피로 어른들을 봉양했다. ㅎㅎㅎ

 

기분이 좋아진 도옹이 일장 연설하자 모두 경청하였다. 은퇴 후에 어디 가서 살거냐고 묻는 것을 보니 조바심이 나긴 나나보다. 얼마 후 백석예대에서 공부하는 상훈 목사의 아들 수겸이가 내일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Grand Rapids, MI)로 연수 떠난다고 인사하러 방에 들어왔다. 아주 잘생기고 성품이 착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아들을 둔 아빠 상훈 목사의 얼굴에는 뿌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랜드래피즈는 1980년 이후로 지금까지 내가 다스리는 영토이기에 아빠 상훈 목사는 내게 아들 수겸이를 위해 기도해 달란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수겸이를 위한 기도에 집중하다보니, 내일 독일로 떠나는 홍 영감을 위한 기도를 빼먹었다. 기도 후에 얼마나 심하게 나에게 면박을 주는지. 자기 기도는 안 해줬다고 왕 삐지기 일보 직전 간신히 수습을 했다. 지하철 타는 데까지 정중히 모셔다 드렸다. 가는 길에 도옹은 폼만 잡고 앞장서서 걷는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국을 용감하게 헤집고 다니는 성훈 동생을 보면 늘 마음이 짠하다. 동생 잘 가시게. 어머니를 묻고 떠나가는 길이 편치는 않겠지만 그래도 몸 건강히 잘 가시게. 참고로. 크리스는 작별인사를 이렇게 했다. “홍 목사님 잘 돌아가세요!”라고. 헐.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가나보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즐겁게 웃고 커피마시고 이런 저런 담소 나누고 하는 거지. 인생은 다 고기서 고기지. 나는 올해로 방배동에서 방을 빼는 관계로 홍 영감은 내년에 한국에 나올 일이 있어도 나를 여기서 보지 못하리라. 홍 영감, 나를 보려면 갈릴리로 오시오. 거기서 나를 보리라. 잘 알아듣기를.

성훈목사1.jpg

 

상훈목사아들.jpg

 

성훈목사2.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5485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3435
749 짧은 글: "성서해석과 성령과 기도" 류호준 2019.07.18 331
748 일상 에세이: "세례와 세척" file 류호준 2019.07.15 292
747 신앙 에세이: "주기도문과 교황의 해설" [1] file 류호준 2019.07.12 374
746 일상 에세이: “명예 유감" [1] 류호준 2019.06.18 454
745 일상 에세이: “오래 살다 보니!” file 류호준 2019.06.12 670
744 [클린조크] "반전이 있는 명언" 류호준 2019.06.04 524
743 일상 에세이: "철학자와 신학자, 골프장에서 만나다" [1] file 류호준 2019.06.02 580
742 일상 에세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1] file 류호준 2019.05.10 513
741 《일상행전》을 읽으십시다! [2] file 류호준 2019.03.28 1059
740 일상에세이: “이름 부르기” 유감 [8] file 류호준 2019.03.17 1035
739 시론: "열등감과 불쌍한 영혼" 류호준 2019.02.27 547
738 [클린조크: "피부과에서 생긴 일"] file 류호준 2019.01.28 535
737 일상 에세이: “남의 나라 말 배우기” 류호준 2019.01.27 572
736 일상 에세이: “추천서 유감” [1] file 류호준 2019.01.26 503
735 일상 에세이: “짜장면 한 그릇에 한번쯤 영혼을 팔아도 된다!” file 류호준 2019.01.04 601
734 일상 에세이: “새해 둘째 날에: 이삿짐 싸는 날” [1] file 류호준 2019.01.02 561
733 일상 에세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 저녁 모임” file 류호준 2018.12.26 611
» “일상 이야기: 인생 별것 있나요?” [3] file 류호준 2018.12.17 723
731 일상 에세이: "학교와 교회" [8] file 류호준 2018.12.15 659
730 일상 에세이: “오늘이 생애 최고의 날이라 생각하면 커피 향은 왜 그리 그윽한지…” [7] file 류호준 2018.12.06 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