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앙 에세이: 심중소회(心中所懷)

2016.04.23 00:28

류호준 조회 수:1431

심중소회(心中所懷)

 

개혁파 신학자로서 나는 지난 20여년을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이라는 개혁파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쳐왔고 지역교회에서 설교자로 봉직해 왔다. 창밖으로 내다보는 숲길엔 봄비가 추적내리며 약간 찬 기운의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오늘따라 몇 년 남지 않는 신학교수 생활을 뒤돌아보며 여러 가지 남다른 소회가 마음속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는 것을 느낀다. 그중 가장 아쉬운 점은 내가 속해 있는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과 그들의 신학교들의 일그러진 얼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 얼굴들이 모습들을 순서 없이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 본다. 일종의 심중소회(心中所懷)다. 심중소회란 마음속의 생각과 느낌이다.

 

신앙의 개인화, 자기중심적 신앙, 종교적 열정의 강조, 영혼 없는 전통주의의 고수, 교회 내에서의 유교적 관료주의, 구원의 사회성에 대한 무지와 외면, 감정 중심의 은혜, 목회자중심의 교회사역, 개 교회 성장 중심, 사회적 이슈에 대한 외면, 교단내의 소모적 주도권 싸움, 비효율적인 교단 운영, 도덕성의 저하, 신앙과 생활의 이원론적 사고, 일상 속의 신앙에 대한 무관심, 유형교회와 하나님나라의 혼동, 신론보다는 인간론 위주의 신학, 신학의 이데올로기화, 치졸한 교권 싸움, 물신숭배의 저변 확대, 자기-의에 가득한 원리주의자들,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도덕성, 무지한 성경주의자들, 성경에 대한 무지, 성경적 원리보단 전통적 습관과 관행의 우선시, 기복적 신앙형태, 건강과 번영의 신학, 시대착오적 성경해석, 실천적 신앙인의 희소성, 생존을 위한 교회사역, 갈등과 분열을 조성하는 교리주의자들, 교조주의적 신학, 자기만족적 믿음, 자기도취적 신앙, 신학적 지식과 윤리의 결별과 괴리, 교회와 사회를 위한 신학의 부재, 삶으로 살아내는 신학의 부재, 탁상공론식의 신학활동, 강단과 회중석의 간극, 온갖 형태의 우상숭배, 졸부들에 의한 신학교 설립과 운영, 개인우상화 신학, 신의 일식현상, 예배의 공연화, 가벼워진 예배, 고장이 난 도덕적 센서, 값싼 은혜, 구원의 개인화, 믿음의 공로사상, 시대적 정신에 야합, 편의주의, 사라진 제자도, 국가와 사회를 위한 기독교적 비전의 부재 등등.

 

이상의 목록들을 종합해보자면,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초석인 “정의와 공의”에 대한 외침과 가르침이 복음주의 교회들과 신학교들 안에 거의 전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사실이 내 가슴에 커다란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는 데 애를 쓰는 일말의 노력도 보지 못했다. 이것이 가장 슬프고도 애통하는 비극이다. 신자들 마음에, 신학생들 가슴속에, 신학교와 교회들 안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대한 깊은 이해들이 자리 잡게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얼굴들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

 

“사람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가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세 가지니, 첫째는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고, 둘째는 친절과 배려와 신실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고, 셋째는 겸손하게 너희 하나님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미가 6:8)

 

[Grand Marais, Minnesota]

Grand Marais, Minnesot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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