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0 14:30
“남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에베소서 5:21-33
[성경본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설교전문]
다루기 쉬운 본문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해석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헷갈리는 본문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남편은 아내의 머리니라!”
“아내들은 모든 일에(凡事)에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이게 웬 시대착오적 가르침입니까? 매우 진한 가부장(家父長)적 선언이 아닙니까? 이런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이게 무슨 좋은 소식이야 이게 무슨 복음이야 이것이야말로 나쁜 소식이 아닌가, 어떻게 이 말씀을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 구절을 봉독하였을 때 나는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속으로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시큰둥이 아니라면 적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 “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하
․ “모든 일에 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하하하
그러니 이런 문제를 아예 제켜버리는 것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즉 남편이 아내의 머리(주인)고 아내는 그 머리(주인)되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피차 편하고 좋을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가는 일은 괜스레 평지풍파를 일으켜 가정의 평온을 깨뜨릴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벌써 속으로 이 문제에 대해 각자의 대답을 결정하고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야 할는지를 대비하고 있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의 본문은 매우 시대착오적 발상이고 특별히 오늘날처럼 민주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사회에서는 전혀 음색이 맞지 않는 구시대적 슬로건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을 통해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말씀이니 가볍게 여기거나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제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중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1세기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살고 있던 당시에 이 말이 무엇을 뜻하였는지에 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말의 뜻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당시는 유대인 남성들이 여성들을 아주 얕잡아 보던 시대였습니다. 유대인 남성들이 아침에 드렸던 기도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자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사하는 기도였습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아침에 드리는 기도문 중 하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아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물건이었습니다. 여자에게는 법적 권리도 없었습니다. 남편의 소유물 정도였습니다.
그리스(헬라)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유대 사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 남편들은 집안일들은 아내들의 몫이고 가족들을 챙기고 살림을 꾸려가고 자녀들을 기르는 것 역시 전적으로 아내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은 빈둥거리면서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거나 거들먹거리며 상전 행세만 하고 살았습니다.
자,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면 바울이 말씀하는 내용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속을 시원하게 하는 해방의 말씀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시작하는 첫 문장을 읽어보면 이 말씀이 속박의 말씀이 아니라 해방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에게 복종하라”(21절).
이 말씀은 관제탑(管制塔)과 같은 말씀입니다. 중앙 통제소와 같습니다. 이 구절은 전체를 바라보게 하는 전망대와 같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가족 구성의 핵심인 부부지간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바울의 생각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중심점이라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서로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이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에게는 이런 말이 매우 생소하거나 이상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즉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를 존경하고 경외함으로 서로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을 무시해 버린다면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말도 되지 않는 말처럼 들릴 것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고 한다면, 아내에게 복종하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결혼 생활이 평온하고 조화롭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은 오케스트라에 있는 두 개의 악기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플루트와 첼로라고 합시다.
악보에 따라 플루트가 연주합니다. 자기 부분을 독주(獨奏)한 다음에 플루트는 첼로에게 그 다음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첼로에게 “어서 오세요. 지금부터는 당신의 차례입니다”라고 하면서 자리를 내주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복종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왜 플루트는 첼로에게 자리를 내어줍니까?
· 악보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 그 곡을 만든 작곡가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물러나고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아름답게 진행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존중하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에게 복종하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빌립보서 2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등급과 지위에 있어서 언제나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였고 지금도 동등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동등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위와 등급에서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 복종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지위와 등급에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지만, 그 아버지께 순종하십니다.
직접 들어 보십시오.(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개역개정)
“그분은 하나님과 똑같이 높은 분이셨지만,
결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종과 같이 겸손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이 땅에 계신 동안 스스로 낮은 자가 되시며,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쉬운 성경)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께 복종하신다는 것은 그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아버지께 복종한다고 해서 그의 지위나 등급이 내려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성(神性)의 권위와 위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성부 하나님께 복종하시는 그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는 자기가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 철저하게 복종하셨습니다. 그런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복종함으로 그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 즉 그들이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잘 들으셨다면 이제는 그가 말씀하고 있지 않는 것도 잘 들어야 합니다.
· 바울은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 바울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하시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바울이 말한 바가 이것이라면 여러분은 그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그의 말을 잘못 듣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그렇게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다.
· 아내들이여, 주님께 복종하듯이, 그렇게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그렇게 아내들은 자기의 남편들에게 복종해야한다.
바울은 당시의 유대 사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 그는 유대인 남편들이 그들의 아내들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바울은 당시의 헬라인(이방인) 사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 그는 헬라인 남편들이 그들의 아내들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시의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는 결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교회 안에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모델 삼아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 교회 안에서는, 아내들과 남편들은 함께 그리스도를 본(本)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분의 체면이나, 위신이나 위치나 등급이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당시의 주위를 돌아보니,
․ 남편들은 아내들에 대해 상전노릇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아내들은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았던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 그런 이방인들의 결혼 생활 습관이 교회 안에 수입되어서는 안 된다.
․ 그런 이교도들의 규범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바울은 이방적인 결혼 생활 습성과 이교적인 결혼 규범들이 통용되도록 하는 그 통로를 완전히 차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암(癌)적 습성들이 퍼지지 못하도록 그 근원적 신경 조직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가만 내버려두면 온 교회가 병들어 죽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큰 목소리로 외칩니다.
· 만일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어야만 한다면,
· 만일 유대인 사회와 헬라인 사회가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면
· 모든 사람이 남자가, 남편이 여자와 아내의 머리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 그러면 먼저 그는 그리스도를 닮으면서 그렇게 머리가 되라!
-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그렇게 머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만일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면,
․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일을 피할 수 없는 그런 사회라면,
․ 사회의 통념이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한다는 것이라면,
그러면 아내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남편의 모델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이 남편의 모델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가 자기를 비웠던 것처럼 남편도 그렇게 자기를 비우도록 하십시오!
자, 남편들이여, 가서 그렇게 하십시오!
· 하나님께서 남편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기를 기원합니다!
· 하나님께서 남편 여러분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어 남편 여러분들에게 비이기적(사심 없는)인 사랑으로
복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울은 25절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아내들을 위해 사랑을 다 쏟아 부으시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쏟아 부으신 사랑처럼 말입니다. 그의 사랑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사랑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주려는 사랑입니다. 주고 또 주어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를 온전하게 만듭니다. 그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교회에게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모든 것, 그가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교회로부터 가장 최상의 것을 끄집어내어 드러냅니다. 현란한 흰색 실크로 입히시고, 거룩함이 은은하게 빛나게 합니다. 이렇게 남편들은 자기들의 아내들을 사랑해야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신랑으로서 그리스도는 교회를 윽박지르거나 무시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리스도는 신부인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그녀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가 그렇게도 갈망했던 그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충만한 영광으로 영화롭게 된 그녀입니다.
이렇게 남편도 아내가 온전해 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해 헌신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자기가 아내의 머리라고 해서 아내를 윽박지르거나 억누르거나 숨 막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로 하여금 그녀 자신이 되려고 하는 일을 좌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를 위한 남편의 사랑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 자신을 주어 그녀가 온전하게 그녀 자신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자, 남편들이여, 가서 그렇게 하십시오!
·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기를 기원합니다!
·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어 여러분들에게 사심 없는 사랑으로 복주시기를 기원합니다!
·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신 것처럼, 아내의 그런 머리가 되십시오!
·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그렇게 아내들을 사랑하십시오!
혁명적인 말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좋은 소식으로 가득 한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바울의 말씀이 우리 시대에 어처구니없게 들리거나, 아니면 바울은 여성 혐오자다, 그는 여성을 비하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한다면 그런 사람은 바울을 오해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바울이 부르짖고 있는 진정한 해방의 메시지를 잘못 듣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당시의 문화에 대항하면서 새로운 대안(代案)의 문화를 주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21-33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듯이, 남성우위사상이나 성경적(!)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을 말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인터넷에 뜬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다양한 해석들은?
(1) 남자가 존재함으로 여자는 비참하다.
(2) 남자의 존재는 여자에서 비롯된다.
(3) 남자란 존재는 여자에 의해 비참해진다.
(4)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5) 남자의 존재는 여자를 밤마다 비명을 지르게 한다.
에베소서 5:21-33은 ‘자유 대헌장’(大憲章)입니다.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유 #1]
22절에 있는 “아내들아, 자기의 남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은 그 앞에 있는 21절보다 뒤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즉 남편들과 아내들은 서로에게 복종해야한다는 21절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면, 자기 아내에게 복종하는 것 역시 남편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복종은 일방적이 아니라 양방(兩方)간이며 상호적입니다.
[이유 #2]
바울은 아내는 복종하고 남편들은 상전처럼 대접을 받으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아내들은 복종하고 남편들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복종은 그녀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지 그녀에게 상전 노릇을 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 #3]
남편은 그리스도처럼 사랑해야합니다. 아내에게 요구되는 것(복종)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요구되는 것(사랑)은 더 어렵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아내를 사랑해야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자양분을 주어 풍성하게 자라게 하듯이 그렇게 남편들은 아내를 북돋아주어 자라게 해야 합니다.
[이유 #4]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하고 남편들은 아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동사의 뜻 차이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복종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복종은 누군가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복종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동일한 것의 두 가지 형태입니다. 즉 사심 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두 가지 형태가 하나는 복종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이유 #5]
남편과 아내를 올바른 관계 속으로 안내하는 최상의 원리는 그리스도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를 경외함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들과 아내들은 항상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생각 했던 방식대로 자기 자신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나 등급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지위가 주는 특권들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그리스도는 신성의 특권과 권위들을 내려놓고 사람이 되심으로써 노예의 신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되심으로 그는 인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겸손해지고 비천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사심 없는 삶, 비이기적인 삶,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심 없는 죽음, 비이기적인 죽음, 순종적인 죽음을 죽었습니다. 가장 비참하고 끔직한 죽음으로 죽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형당해 죽으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敬畏)함으로 서로에게 복종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우리의 가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009년 5월 10일, 가정 주일을 위한 설교 전문]
설교가 너무 아릅답습니다. 말씀을 말씀답게 한다는 뜻인 무엇인지 조금 깨닫게 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