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앙 에세이: "축복의 시간들"

2010.03.05 12:31

류호준 조회 수:6082

“축복의 시간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신 23:5)

 

 

엊그제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여러해 전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난 제자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해서 종종 그의 앞길을 위해 기도해왔던 착한 제자였습니다. 기독교인의 '영성'(영적 성품, spirituality)에 관심이 많아 그 분야를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중 가정에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사실 지나간 1년, 특별히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저의 둘째 딸이 심하게 아파서 작년 10월초에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골수이식을 하게 되었고, 올해 초 병이 다시 재발하여 지난 2월17일에 2차 골수이식을 하였습니다.  

 

딸아이의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어서 특정 바이러스를 정상인들처럼 처리하지 못함에 따라 이 바이러스가 몸 안에 있으면서 상당히 어려운 병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희귀병에 속하여서 정해진 치료법은 없고, 다만 휴스턴에 있는 텍사스 어린이병원에서 유전자조작을 통한 실험적 치료로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어서, 이번 골수이식 후 면역력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대로 텍사스에서 추가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1년째 학교를 휴학하고 있고, 시간의 대부분을 딸아이와 함께 병원 무균실(無菌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남들에게만 있을 것 같았던 이런 일들을 직접 겪으면서, 아비로서의 ‘눈물’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초탈’이라는 두 세계를 오가며 영적으로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영적인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하루하루를 새롭게 맞이하고, 그 시간들을 생명과 의미로 채워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칠 때가 많고, 학업에 대한 열기도 상당히 많이 식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장래에 대한 염려가 밀려 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노예가 되지 않고 저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신중히 분별해 나가고자 합니다.

  

교수님, 저의 딸아이와 가족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넘어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과 평강을 가족 모두 깊이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고단한 순례자의 외로운 길에서 잠시 쉼터에 걸터앉게 되었습니다. 숨을 고르고 하늘을 우러러보니 애잔한 동시에 찬란한 석양이 피곤한 나그네의 밭 밑에 깊숙이 사무치도록 깔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아프거나 병들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햇빛과 소낙비가 꽃들을 아름답게 자라게 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아프지 않았거나 한 번도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비가 오지 않는 사막과 같았을 것입니다.

건조하고 메말라 아무 것도 잉태할 수 없는 사막 같은 삶,

하늘을 어둡게 하는 구름이 한 점도 없는 사막 같은 삶,

그곳에 민들레, 백합화, 개나리, 진달래, 이름 모를 야생화가

찬란하게 피어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신실한 햇살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한결같은 하나님의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축복들은

종종 색다른 포장으로 도착해 우리를 헷갈리게 할 때가 있었지요.

그러나… 아픔과 병, 실패와 좌절로 위장된 그분의 시간이야말로

새로워짐과 영적 축복을 경험하는 시간들입니다.

 

 

주님, 우리가 걷는 고통의 길이 치유의 정원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게 하소서. 그 정원, 그 동산, 물론 다양한 꽃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이해와 긍휼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정원이길 바랍니다. 주님, 기도하옵건대 저희가 꼭 있어야할 곳, 저희에게 잘 맞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장소에 저희를 심어 주십시오. 움이 트고 싹을 내어 무럭무럭 자라 화사한 꽃들이 되어 무지개 동산을 가득 채우게 하소서.

 

[2010년 3월 5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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