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개혁 신학 선언문
                                 [류호준 목사 작성]


                                                   전문(前文)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신음하고 고통 하는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오심을 갈망한다. 배도와 불의, 폭력과 파괴, 차별과 소외, 고통과 비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은 생명의 하나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는 생명 자체이시며, 생명을 주시며, 생명을 충만하게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의 실체이며 미래의 현존이라고 믿는다.

[1] 야웨 우리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창조세계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영광과 은혜와 자비를 나타내시는 거룩하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이시다.

[2] 야웨 우리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계신 분이시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고, 우리의 마음으로는 그분의 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야웨 우리 하나님은 말씀과 행위에 있어서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고 신뢰할 만한 분이시다.

[3] 야웨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인격체로 계시지만 한 분 하나님이시다. 본질에 있어서 동등하시고, 함께 영원히 교제하신다. 창조자이시며 모든 것의 보존자이신 우리의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자기의 구원 사역을 종결하신다.


                                                              본문(本文)

                                                                      I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해

[1]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사역에 관해 말한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분은 신적(神的) 공동체를 이루시며, 한분 하나님으로 계신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생명의 하나님으로서, 피조세계와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타락한 피조세계와 인간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시며, 성령 하나님은 회복된 피조세계와 인류를 생명으로 충만케 하신다.

[3]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믿는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자이시며 생명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을 믿는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시다. 그는 그의 영원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하여 그의 자녀로 입양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기도 하다. 그는 우리를 다스리는 주권과 우리를 향한 따스한 애정과 우리를 위한 영광을 갖고 계신다.  

•우리는 생명의 담지자(擔持者)시며 생명을 구원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믿는다.
성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셨다. 그는 두 개의 본성인 온전한 인성과 온전한 신성을 한 인격 안에 가지신 분이다. 그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지상에서의 삶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그는 어둠의 세력들을 정복하셨고, 우리 죄의 형벌을 지불하셨으며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만천하에 드러내셨다. 그의 몸이 부활함으로써, 그의 삶과 죽음이 온 천하에 결백하였음을 입증하였고 이 세상을 심판할 유일한 재판장이며 구원자가 되심을 나타내셨다. 그가 승천하심으로써, 만왕의 왕, 만유의 주님으로 하늘 보좌에 앉으시고 지금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왕권을 가지고 영광 가운데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우리는 왕의 귀환을 기다린다.

•우리는 생명의 회복자이시며 생명을 충만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
성령 하나님은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능력을 주셨으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시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성령 하나님은 오염되고 굴절된 피조세계를 회복시키며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케 하신다.  

생명의 하나님과 그분의 생명사역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신학적 논의의 출발은 성경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성경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씀한다. 특별히 이 역사는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제 4막으로 된 하나님의 경륜의 이야기로 장대한 하나의 통일된 신적 드라마이다.

[이미 위에서 잠간 언급한바 대로, 생명 신학 선언문은 크게 두 가지 항목으로 구성 되어 있다. 첫째,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 둘째,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의 이야기]

                                                                        II
                                                                성경에 관하여

[1]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알려주셔야만 한다. 그분은 피조 세계를 통하여 자신의 권능과 위엄을 나타내 보이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구원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성경을 통해서이다.

[2]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모세의 글과 선지자들과 역사가들과 시인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었고, 복음서 기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그는 인류를 향한 최종적인 말씀을 하셨다.(→히 1:1-2).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이었다.(→요 3:16)

[3]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응답하고 반응하여야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종말은 이미 그들에게 왔다. 그들이 하나님의 가장 좋은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종말이 이미 결정되기 때문이다.

[4] 성경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향한 자신의 구속역사를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남기신 발자국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를 인도하여 참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요 5:39; 20:30-31)

[5] 성경은 언약의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씀하신다.(→행전 7)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된 성경은 하나의 ‘은혜 언약’을 말씀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시고 일방적인 은혜 때문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동일한 목소리로 이것에 대해 말씀한다.  

[6] 성경은 우리의 삶을 위한 최상의 기준으로, 두 책인 동시에 한 권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으로, 크리스천 개인과 신앙공동체의 신앙과 행위를 위한 정확무오하고 권위가 있는 신앙의 규범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모든 것에 있어서 진실하고 오류가 없다.(→딤후 3:14-17; 벧후 1:12-21)

[7] 생명의 책이며 생명을 주는 책인 성경은, 성도의 신앙과 행위를 가르치고 꾸짖고 의로움으로 훈련하고, 고난 가운데서 인내하게 하며 안위를 주어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한다.(→롬 15:4)

[8] 성경은 하나님과 세상과 인간에 관해 말씀하며, 특별히 ‘창조․타락․구원․완성’의 틀로 구성된, 거대하고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행전 7) 그 안에서 우리는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III
                                                                창조․타락․구속․완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은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성경의 장엄한 이야기 가운데 펼쳐진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 사역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창조), 어떻게 도전과 반대에 부딪혀 왜곡되고 굴절되어 좌절을 맞보게 되었는지(타락),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하고 회복하게 되었는지(구속), 어떻게 다시금 충만한 생명으로 가득하게 되어 가는지(완성)를 일관성 있게 말한다.

                                                                      [창 조]

[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스스로 충만하셔서 어떤 것도 창조하셔야할 아무런 필요나 이유가 없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땅 아래 것이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 등 모든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리고 지음 받은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한다. 우리는 그분에게 존재의 빚을 지고 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은 말씀으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것에 내적 구조와 질서를 주셨다.(→창 1; 시 33:1-11; 사 40:12-31) 이것은 현금의 각종 진화론적 세계관을 —생물학적 진화론이든, 역사에 대한 진화론이든, — 모두 배격한다는 의미이다. 마치 토기장이가 흙을 빗어 도기를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으로 하늘과 땅과 바다를 조성하셨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 땅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과 식물들과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은 안식과 일, 예배와 봉사를 통하여 삶이 생명으로 가득 차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안식과 샬롬과 질서와 조화로 가득한 창조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이 보실 때에도 좋았다. 태초에 모든 것은 매우 좋은 상태였다.(→창 1-2)

[3] 창조의 절정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창조였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남자가 하나님의 형상인 것처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남자와 여자로서 사람은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관리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창 1:26-30; 시 8)

[4] 사람은 본질적으로 삼중적인 관계 안에 놓여 있다.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경배자이며, 둘째로 사람은 동료 인간을 동반자로서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야하며, 셋째로 사람은 피조세계를 아름답게 관리하는 동산지기의 역할을 맡았다.

[5] 인간의 삼중적 관계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삼아 섬기려는 온갖 형태의 우상숭배가 본질적으로 잘못임을 가르친다. 부패한 인간은 다른 것을 대체될 수 없는 하나님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각종 우상들로 바꾸어 섬긴다.(→롬 1:23) 우상숭배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서 발생한 죄악이다. 자기 확신 주의, 물신 숭배 사상, 자율적 이성주의 등은 우리 시대가 섬기는 우상들의 한 단면들이다.

[6] 인간의 삼중적 관계는 동료인간을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이나, 남녀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인권은 신성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과 권리를 침범하거나 착취하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나 구조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인종차별, 성차별, 신분차별은 우리 시대가 극복해야할 현대적 죄들이다.  

[7] 인간의 삼중적 관계는 피조세계를 인간 욕심에 따라 개발하고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하천과 강과 공기의 오염, 토지의 남용, 동물과 새들을 학대하는 일은 인구의 급증과 함께 증가된다. 많은 경우, 경제적 이유와 이기주의에서 시작되는 이러한 현상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생존도 위협한다. 자연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개의 지점 한 가운데 어디에선가 우리는 균형 잡힌 청지기 의식을 갖고 이 지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이 땅을 다스리라고 주셨으므로 우리는 존경과 경이의 마음을 갖고 사용해야한다.  

[8] 적극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삼중적 관계는 하나님만을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주님으로서 인정하고 그분만을 경배해야하며,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의 궁핍과 필요를 채우며, 피조세계 안에 참된 생명으로 가득 하도록 요청한다.(→ 시 139) 그리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우리의 재능을 충분하게 사용하여 하나님이 본래적으로 의도하신 하나님의 왕국이 온전하게 이루어가도록 해야 한다.  

[9] 어떤 형태의 생명이든지,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과 방어능력이 없는 힘없는 사람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복리를 추구한다.(→ 레 19; 25:35-38) 또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인권 역시 생명 보호와 충만 차원의 창조질서에 속하는 신학적 문제이다. 신념체계나 생활양식, 경제적 상태, 인종이나 성별 혹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등을 이유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위엄성은 침범될 수 없다. 모든 인권은 약자를 보호하고 이웃을 정당하게 대우하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세계에서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하는 우리의 신앙적 책임성에 경종을 울리는 자명종이다.    

[10] 세상의 미래는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손안에 놓여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분의 경륜과 섭리의 손안에 있다. 비록 우리가 역사 전체의 윤곽이나 구체적 내역을 알지는 못하지만, 모든 것들이 신실하신 공급자, 성실하신 보호자의 손길에 달려있다는 것이 우리의 위로가 된다.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진실하심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의 삶에 희망을 준다. 우리의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그분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화론적 역사관을 배격한다.  

                                                                     [타 락]

[1]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과 동료인간과 나머지 창조세계 모두와 긴밀하고 친숙한 관계를 맺고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첫 조상 아담과 해와의 불순종은 온 인류 위에 하나님의 저주를 초래했고, 자신의 창조주로부터 인간을 소원(疏遠)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자가 되었고, 죽은 자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은 동료인간과 나머지 피조세계로부터도 철저하게 소외를 당하였다. 죄의 결과는 창조 세계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게 되었다.(→창 3) 삶의 의미와 목적이 굴절되었으며 문화와 지식도 비뚤어진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만 새로운 생명이 가능하며, 이 생명은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온 창조세계에도 미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기인한다.  

[2] 인류의 첫 조상은 그들의 창조자의 목소리보다는 침입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명의 말씀보다는 거짓된 말에 빠졌다. 우리의 첫 조상은 유한성이란 인간조건의 경계를 넘어 신의 영토에 발을 디디려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 한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도전과 공격으로부터 시작된다.(→창 3)

[3]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의 오심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숨으려 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그분에 대한 두려움과 어색함으로 변하게 되었다. 죄는 생명의 하나님으로부터의 도피다.(→창 3:8-10)

[4]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빛을 싫어하고 어두움을 좋아하며, 진실 대신에 헛된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거짓말하는 자의 속임수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대신에 그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대신에 자신의 영광과 쾌락을 따라가게 되었다.(→롬 1:18-23)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지만 점점 어두움 속에서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율적인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상실하고 고향을 잃게 되었다. 에덴동산을 떠나 에덴동편에 살면서 방황과 방랑의 삶을 살게 되었다.(→창 3:22-24)

[5] 하나님을 공격하거나 그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간 죄의 결과는 피조세계 전체에 치명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허망하여져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편의에 따라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우상으로 대치하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해서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이 되어버렸다. 각종 혼합주의, 세속주의, 종교다원주의, 다양한 이교도적 영성주의, 자율적 이성주의, 맘몬주의 등과 같은 것이 현대적 표상들이다.(→롬 1:18-23)  

[6]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는 일그러지고 깨어졌으며, 사방에서 부패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며 인간관계는 불신과 증오와 대립과 갈등으로 뒤틀리게 되었다. 삶의 모든 영역 - 결혼과 가정, 직장과 예배, 학교와 정부, 여가와 교육, 문화와 예술 등 - 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의 흔적들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 사회적 계급주의, 경제적 착취, 인권 침해, 학벌지상주의, 망국적 지방색, 외모지상주의, 물신숭배, 생태계의 파괴, 생명경시 풍조, 사회적 부정부패 등이 그러한 흔적들이다.        
[7]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근본적 구도와 방향성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적 죄로 인해 굴절되고 왜곡되고 역기능하고 있다.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오염은 마치 온 몸에 퍼지는 악성 암세포처럼 모든 피조세계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게 되었다. 그리고 죄의 병리적 현상들은 피조세계에 깊은 흔적과 상처를 남겨 놓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다. 그분이 피조세계를 계속해서 붙드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구 속]

[1]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한 구원자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그는 인간과 창조세계를 하나님에게로 회복시키시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세상에서 행하라고 지정하신 사명으로 돌아가라고 부르신다.

[2] 인류의 첫 조상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인류 후손에게는 출산의 기쁨과 함께 해산의 고통이 따르게 되었으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 노동의 즐거움에 좌절과 괴로움을 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 악의 힘을 물리치실 수 있다는 약속을 주셨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인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창 3:15) 우리는 역사 안에서 종말론적 승리를 믿는다.

[3] 생명의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모두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생은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 ‘낳고 살고 죽는’ 인류의 비극적 순환은 계속되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키워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이 세상에서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야말로 영생에 잇대어 사는 것임을 배워야한다(→창 5)

[4]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인류는 계속해서 반역하는 습성을 길러왔다. 악은 온 지면에 가득하였고 하나님은 대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셨다. 그러나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은 노아와 그에 속한 가족과 생물들을 남겨두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한 이 세상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로 하나님은 무지개를 하늘에 걸어두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전쟁을 그치고 활(무지개)을 창공에 걸어놓은 방식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보이셨다.(→창 9:1-17)

[5] 하나님은 타락한 세속사회, 바벨 문화권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을 불러내어 새로운 민족을 일으키실 준비를 하셨다. 모든 민족이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도록 약속하셨다. 그는 열방의 복과 저주를 가름하는 시금석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독특한 존재 의미와 사명을 부여하셨다.(→창 12:1-3)

[6] 하나님은 죽음의 영토인 애굽에서 한 민족을 일으키셨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만국의 제사장의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출 19:5-6)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은 왕께 충성을 다 할 것을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언약을 체결하시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셨다. 척박한 광야에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애굽에서 강한 손과 편 팔로 그들을 구출해내신 구원자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따라 살도록 가르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만이 생명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임을 광야에서 배워야했다.(→신 8:1-6)

[7]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 강같이 하수같이 유유하게 흐르도록 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왕들과 왕조를 일으켜 세우셨다.(→암 5:24)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권력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대신 백성 위에 군림하고 착취하는 일에 사용하였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에 다른 신들을 섬겼으며 열방의 힘과 보호에 의존하게 되었다. 우상숭배와 불의한 삶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두 가지 치명적 죄악들이었다.

[8]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으로 이스라엘을 열국 가운데 흩으시고 유형의 세월을 보내게 하셨다. 그러나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된 미래를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지도자를 모시고 온전하게 순종하는 새 백성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그들의 지도자로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장차 나타날 메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유감없이 선포하는 선지자로, 사단의 머리를 부술 왕으로, 세상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드릴 고난 받는 제사장적 종으로 올 것을 약속하셨다.(→사 53)    

[그리스도]
[1]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그는 인간과 창조세계를 하나님에게로 회복시키시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세상에서 하라고 지정하신 사명으로 돌아가라고 부르신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시며 동시에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고 태어나셨다. 지상에서 그는 시험과 고난을 당하였지만 죄는 짓지 아니하셨고, 인간의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심으로써 사람을 대신할 중보자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가운데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짊어지셨고 우리의 죄를 제거하셨다.

[3] 두 번째 아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향한 첫 번째 아담의 불순종을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순종으로 바꾸어 온 인류에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사망이 더 이상 우리 위에 왕 노릇하지 못하며, 우리는 섬김과 봉사를 위한 자유로 부르심을 받았다.

[4] 그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악한 마귀를 쫒아내시고, 천국복음을 선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도래할 것을 보여주셨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임마누엘)이시다. 그는 세상 끝 날까지 그의 백성과 교회와 함께 계실 것이다.

[5]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그분 외에는 다른 구원자는 없다. 생명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길은 없다.    

[6]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죽음이 결코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지 못할 것이라는 증거였으며, 생명으로 온 세상을 가득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었다. 뿐만 아니라 승천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님,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다. 온 천하 만물이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그를 주님이라 고백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다스림은 그의 승천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이 세상에는 그분의 다스림에 종속하지 않는 한 치의 땅도 없다.    

[7]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자기의 백성을 위해 대신 기도하신다. 이 사실은 똑바로 기도할 수 없는 연약한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과 힘이 된다.    

[성령]
[1] 기도하며 하나님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공동체에 하나님은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시고 이 땅에 교회가 태어나게 하셨다. 성령님의 오심으로 바벨의 분열과 혼란이 극복되기 시작하였으며 하나 됨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였다. 인종과 성별과 신분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2] 성령님은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지적하여 마음의 고통을 수반하는 회개에 이르게 하시고, 그 후에는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주시고 그것에 대해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하신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들을 깨닫게 하시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힘입게 되면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 함을 누리게 된다.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주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3] 성령님은 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풍성하게 선물로 주신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성령님의 은사를 가지고 서로를 세워주고 사랑하고 봉사한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통제하고 지배할 때만 가능하다. 이것은 신자 개인에게나 교회 공동체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신앙적 원리다.  

[4] 성령님은 개인뿐만 아니라 죄로 일그러진 만물을 생명으로 회복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충만한 생명은 그분의 사역의 결과이다. 전쟁에서 평화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분열에서 일치로, 흑암에서 광명으로, 죄에서 용서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성령님이 계신다.        
  
[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성령은 우리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신자들의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살아있는 지체로 집어넣는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모든 민족에게 증거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 하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선포하며 신자들을 훈련시켜 제자를 삼고, 억눌린 사람들을 해방시키며 창조세계를 돌본다. 성령의 선물들과 열매를 통해 교회는 이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는다.  

                                                                      [완 성]

[1] 우리는 역사에 종착점이 있음을 믿는다.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마침표를 찍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음을 믿는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기원한다.(→롬 12:36; 계 1:8)

[2] 고통하고 신음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야웨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불의와 압제, 증오와 살인, 착취와 절규, 우상숭배와 배도로 가득한 이 세상에 정의의 왕국이 속히 도래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지금도 어두움 가운데 비추고 있는 꺼지지 않는 작은 복음의 불빛이 만유의 주님 그리스도가 영광스럽게 귀환하실 때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을 기도한다. 우리의 세상은 모두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새 창조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선물이라고 믿는다.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고통하며 신음하던 온 피조물들이 새롭게 되며 기쁨과 즐거움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던 모든 세력들은 정복될 것이고 주님의 왕국이 이 땅에 도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만이 영원히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다.

[4] 왕의 영광스런 귀환을 기다리고 고대하는 신실한 자들에게 그 날은 빛과 광명의 날이요, 진실과 정의의 날이요, 구원과 회복의 날이 될 것이다.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분은 우리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분의 복음을 경홀히 여겼던 자들에게 그 날은 어두움과 흑암의 날, 분노와 공포의 날, 심판과 형벌의 날이 될 것이다. 그는 한 개인과 국가와 인류의 역사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재판하실 것이며, 그 후에는 정의로운 판결에 따라 영생과 영벌에 들어가게 하신다.

[5]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친히 볼 것이다.(→계 21-22) 그 분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며, 이 땅에서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평화의 나라를 시작하실 것이다. 사람들이 포도원과 무화과나무 아래서 태평성대의 노래를 부르며,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어린양 예수님께 영광과 존귀와 명예를 영원토록 돌려 드릴 것이다.(→계 5; 사 11:6-7; 60:11,19-20; 65:17-25)

[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화롭게 된 몸으로 어느 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돌아오실 것을 분명히 믿는다.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정의로운 형벌을 받을 것이며 그를 믿는 자는 썩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 몸으로 변형되어 새 하늘과 새 땅 — 좋은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며, 더 이상 슬픔과 눈물과 악한 것들이 있지 않는 곳 — 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토록 다스리며 살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기도한다. “주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어서 오소서, 주 예수님이시여.”(→마태 6: 9-10; 계 22:17,20)

                                                                          IV
                                                                 우리의 기도와 사명

[1] 사탄의 세력아래 있는 이 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 왕국의 도래를 막는다. 수많은 하늘의 영들과 권세들은 정의와 평화로 다스려지는 하나님 왕국의 실현을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막아선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로 세우시고 성령을 통해 교회에 새로운 힘과 비전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가속화시키신다. 성경적인 교회는 종말론적 하나님 왕국의 도래를 갈망한다.

[2]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는 이 세상 안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여 살지 않는다.(→요한 17:16) 그들은 어두움을 비추는 빛으로, 부패하는 세상에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마태 5:13-16) 그들은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 순례자들의 모임이며, 사탄의 세력들과 대항하여 전투하는 하나님의 군대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3] 교회 공동체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왕권을 세상에 널리 선포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고 보내졌다.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외쳐야 한다. 왕의 귀환을 선포해야한다. 교회는 죽음의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만방에 알려야한다.(→요한 14:6)    

[4] 천성을 향한 길 위에 있는 지상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성례의 집행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광야 여정을 위한 힘을 공급받는다. 교회의 올바른 말씀선포와 성례집행을 통해 성도들은 천상의 즐거움을 미리 앞 당겨 맛보고 즐거워하고 영적 거친 들에서 올바로 걸을 수 있는 신앙의 양육을 받는다.

[5] 올바른 말씀 선포는 성도들의 영적 보양(保養)을 위해 필수적이다. 광야여정에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은 그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고 사는 법을 가르쳐줄 뿐 아니라, 길이 없는 사막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가리켜준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비틀거리며 걷지 않기 위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고 보여주는 길로만 걷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한 길로 오랫동안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6]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는 곳에서 죄의 고백이 일어나고,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주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십자가의 선포가 없는 곳에는 영생의 면류관도 없고, 죄와 죽음의 비참함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는 부활의 기쁨도 주어지지 않는다.

[7] 성례전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고 은혜를 부어주신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기억하고,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악들을 씻어주신다는 것을 상기한다.(→골 2:9-14) 이것은 어린아이에게 베푸는 유아세례에도 동일하다.(→행전 2:37-41)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동참하는 영적 신비를 체험한다.(→고전 10:16-17) 동시에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고 고백한다. 광야 여정에 있는 지상교회는 성만찬을 통해 하늘의 양식을 얻어먹고 기운차게 순례의 길에 임한다.(→고전 11:17-34) 그러므로 성만찬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죄인들을 위해 이루신 위대한 일(구속)을 기억하게 할뿐 아니라, 장차 메시아 시대에 천상의 어린양의 연회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기쁨으로 기뻐할 것을 기대하게 한다.(→계 19:6-9) 기억과 기대는 성만찬의 두 가지 영적 기둥이다.

[8] 교회는 어두운 세력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기이한 빛의 나라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덕을 선전하는 사명을 위임받았다.(→벧전 2:10) 우리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마태 5:43-48; 엡 2:1-10)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향해 오래 인내하고 그들의 귀가(歸家)를 기다려야한다. 기다리면서 우리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돌아옴을 기다리신다는 복음을 전파하여야한다. 복음전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다.

[9]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을 공유하는 지상 교회는 인종, 신분, 성별, 언어, 시간, 장소를 초월하여 하나이어야 한다.(→엡 4; 갈 3:26-29) 교회의 일치와 하나됨을 방해하거나 해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하고 정결해야하며 순수함을 유지해야한다. 일그러지고 갈라진 교회의 모습 앞에서 우리는 통회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한다. 교회간의 하나 됨을 통해 세상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안다.

[10]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생명 사랑을 본받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한다. 태어나지 않는 영아를 유산하는 일이나, 인간의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파괴하는 일, 자신의 몸과 영혼을 경홀히 여기는 온갖 행동이나 사상, 타인의 삶을 성별과 신분과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고 통제하고 착취하는 온갖 종류의 인격살해,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을 사람의 욕심에 따라 훼손하고 파괴하고 착취하는 모든 잘못을 죄로 고백하고 회개하여 돌이켜야한다.

[11] 가정에서는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과 은혜언약의 중요성이 교육되어야 하며, 신실과 정직과 정절과 근면의 덕들을 고양시켜야한다. 부모들은 몸소 본이 되어 신앙의 길에서 체험한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주며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사들과 재능들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교회와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권면해야한다.

[12] 교육은 인간의 고귀함을 하나님의 형상에서 찾도록 안내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교육의 현장에서도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과 선생들은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드러나도록 학문과 신앙의 통합에 힘써야 한다. 이 길만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그분의 영광과 지혜와 능력과 권능을 드러내는 일이다.

[13]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책임성 있는 청지기 의식을 갖고 일터에 임해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보여 주신 리듬, 즉 일과 안식의 리듬에 맞추어 운율이 있는 삶을 영위해야한다. 노동력의 착취, 일중독, 탐욕에 의한 사업 확장, 육체적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직업과 아울러 쾌락을 추구하는 향락과 땀을 흘리지 않고 재물을 얻겠다는 사행심 등은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불경건한 삶의 방식들이다. 일터에서 우리는 상호존경과 동료인간의 유익을 위해 일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한다.

[14]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후원한다. 동시에 과학적 연구의 열매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될 것인지를 주의 깊게 살피며 과학만능주의란 우상이 생겨나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이 모든 과학적 노력의 밑바탕에는 생명을 존중하고 풍성하게 하려는 노력들이 깔려있어야 한다. 우리는 과학지상주의를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과학을 통한 유토피아의 도래를 꿈꾸는 잘못된 가르침에서 벗어나야 한다.  

[15] 하나님은 쉽게 부패 하는 이 세상에 정의와 공의가 유지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다양한 국가형태와 정부를 세워주셨다.(→시 72:1-14; 눅 4:18; 롬 13:1-7) 따라서 우리는 국가와 정부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그 권세와 권위를 존중해야한다.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며 그들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고양시키고 국민의 복리와 복지를 증진시키도록 권면해야한다.

[16] 우리는 사회의 약자들과 변방의 사람들이 - 노인, 아동, 여자, 외국인, 장애인, 가난한 자들 - 차별과 불평등과 불공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기관을 감독하고 독려하며 정직한 시민단체들을 지원하여야한다. 또한 범세계적으로 아직도 억압과 두려움 아래 살고 있는 나라들과 국민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온갖 노력들을 강구해야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위에도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17] 우리는 민족주의의 발흥이나 강대국의 핵무기를 통한 군비확산과 패권주의를 경계한다.(→시 2:1) 우리는 장차 나라들과 민족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샬롬의 시대가 이를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사 2:4)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보좌에 앉으시고 모든 민족과 나라와 방언들이 그 발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노래하며 경배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을 믿는다.(→계 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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