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산당은 언덕이나 산위에 세워진 신당입니다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산당은 성문 어구에도 자리잡을 수 있고(왕하 23:8) 혹은 골짜기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렘 7:31). 따라서 산당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 기능입니다.
왕 요시아가 유다 전역에 퍼져 있는 지역의 산당들을 폐쇄하고, 모든 종교적 활동을 예루살렘 선전에 집중화시키기전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유다왕들과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지역 산당들은 그대로 나둔 것 같습니다. 또한 적어도 야웨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고 그에 관한 가르침이 있는 한에서 산당들은 그대로 용납되었던 것 같습니다(예, 삼상 9:16-24; 왕상 3:4-5; 대하 1:3-7).
그러나 대부분의 산당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아니면 혼합주의적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선지자들에 의해 심하게 비난되었습니다.
물론 지역 신당의 제사장들의 무지나, 개인적 이익이나, 기득권의 남용으로 인해 산당은 쉽게 페쇄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고대 이스러엘의 왕정이라는 것이 지금 처럼 일사불란하거나 통제력이 치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역 산당들의 철저한 통제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여러 산당을 제하엿다는 것은 상당한 야웨신앙적 열심의 결과롤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특별히 지역주의적 성향의 산당과 그 주인들의 반발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참고로 [구약신학사전]과 같은 책에서 '산당'(high place), '제단'(alter)등과 같은 항목을 찾아보면 많은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