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앙 에세이: "그분의 날개 아래"

2010.01.09 04:05

류호준 조회 수:8104

 

 “그분의 날개 아래”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편 57:1)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있겠지요. 물론 떠나는 기차역과 시간 대 그리고 전송하러 나온 가족들과 친지들의 숫자는 각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물론 절해고도에서나 외로운 이역만리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한다는 슬픔을 우리는 이생에서 여러 번 배우기는 합니다. 공항에서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면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배웅 나온 사람들과 포옹하면 눈물짓는 30대 젊은 부부와 갓난아기를 보면 아마 먼 곳으로 이민을 떠나는구나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는 일이 전철 타는 것처럼 별난 일이 아니었지만 30년 전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공항은 언제나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 하늘나라에서 이별의 슬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곱씹고 계실 내 외할머니는 당시 먼 곳으로 이민을 떠나는 어린 손자를 보면서, “이제 내가 살아생전에 너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라며 말끝을 흐리시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결국 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또 다른 타국 네덜란드의 외진 동네에서 접해 듣고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 병치레를 자주하던 나를 할머니는 포대기로 등에 업고 당산동에서 문래동까지 먼 길을 잰 걸음으로 다니시었습니다. 지금은 아마 없어졌겠지만 문래동의 자그마한 진 의원을 안방 드나들 듯 했습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은 할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나이가 드신 후 거동이 불편하셨을 때도 언제나 단정하게 빗질한 머리에 곱게 차려입으신 채로 안방에서 성경을 읽고 계셨던 할머니였습니다. 중고등학생시절 간만에 할머니 댁에 들리면, 택시 운전수로 일하던 당신의 작은 아들의 돈 가방에서 얼마를 슬쩍 빼내어, 아버지 없는 나를 불쌍하다 하시며 차비로 건네주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아픔입니다.


요즈음 이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별 중의 이별인 죽음 말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왜 이리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지요. 전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글귀들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창세기 5장은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달라는 안내장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부고의 명단에는 아담,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므두셀라, 라멕 등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사무엘, 왕들과 세력가들, 정치가들과 양민들, 좋은 사람들, 나쁜 사람들, 나폴레옹, 히틀러, 김일성, 김대중, 마이클 잭슨, 리차드 닉슨, 노벨평화상 수상자, 세기의 살인마 등 모두 죽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죽음이나 초라한 사람의 죽음이나 다 똑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죽음은 조간신문에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시골 농부의 죽음이나 조용한 어떤 부인의 죽음에는 누구도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정말 죽음에는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어떤 죽음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까? 글쎄요. 모든 죽음은 다 좋지 않습니다. 만일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화환과 조문객이 오느냐에 달려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내고 보면 다 허망한 일일 뿐입니다.

 

죽음에 차이가 있다면 그 죽음이 하나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어떠했을까 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 한 여인의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일기의 일부분입니다. 샤론 봄갈스(Sharon Wagonaar Bomgaars)는 생의 마지막에 암과 싸웠습니다. 자궁암이었는데 암 진단이 있은 지 몇 년 후인 200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유명인사도 아닌 그저 평범한 그러나 사랑스런 아내요 어머니요, 사려가 깊고 정직하고 헌신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평생 빠지지 않고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조금 전까지 일어난 슬픔과 기쁨 하나까지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 섬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컴퓨터 키보드 앞에 앉아 이렇게 하루의 일과를 적어 놓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남편이 배 즙을 얼음에 섞어 반잔 정도 가져다주었다. 간신히 즙을 빨았다. 아주 작은 배 가루 조각들이 빨대를 통해 입안으로 들어왔는데 혀가 즉시 알아채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이 미세한 배 가루 조각들을 품위를 잃지 않고 혀로 이리저리 돌려 마치 없는 것처럼 만들어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나는 부드럽게 한 모금씩 혀 안에 넣어 자지잔 배 조각들을 가루처럼 만들어 삼켰다. 천천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 즙, 달콤한 배 즙, 먼지 이는 캘리포니아의 배 농장의 어떤 나무에서 자라 즙이 된 이 배. 이제 태양으로 따스해진 모든 달콤함을 내게 가져온 이 배, 정말 놀라운 선물이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아침이었다.


하나님은 너무도 좋으신 분이야. 이 죄로 병든 세상에 이런 달콤한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시다니! 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사랑한다. 그분의 복숭아들, 배들, 포도들, 딸기들과 사과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촉촉하게 젖고 달콤하고 입 안 가득 즙으로 채우는 그분의 이 창조물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정말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기를 쓴 후 21일 째 되던 아침에, 그녀는 달콤하고 즙으로 가득한 이 모든 창조물들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으로 헌신된 크리스천들의 이야기들은 이 세상에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 아래 피난처를 삼은 성인(saints)들일 것입니다. 이런 크리스천들이 있어 이 세상과 교회들이 그렇게 비관적이거나 암울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말없이 하나님께 사랑과 충성을 고백하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눈보라치는 영혼의 겨울에 대피할 피난처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시인 다윗처럼 그들도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I will take refuge in the shadow of your wings

        until the disaster has passed."



[찬송 419장]


1.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된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위로치 못하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3.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 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리라.


후렴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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