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re] 구약성도의 구원?

2005.11.23 17:29

심재승 조회 수:8012

질문: 구약 성도들의 구원에 관하여

[아래의 대답은 심재승 교수가 제공한 것입니다. 심재승 박사는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으로 Ph.D를 취득하고 기독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있다가 현재는 미국 아이오와 주에 있는 기독교대학인 톨트(Dordt) 대학의 신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류호준 목사]

대답:

이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선 로마서 3-4장을 보아야 하겠지요. 3:19-21, 27-28절 (갈 3장 참조)에서 바울은 율법과 복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 들어와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구원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는데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말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도전적인 그리고 혁명적인 가르침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에게는 직접 그들의 조상인 때문이지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에게도 믿음의 조상이니까요. 3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이 말은 창 15:6의 인용인데,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식이 그의 후사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할례를 받기 전에 (즉 율법에 앞서서) 아브라함이 먼저 믿었다는 것을, 즉 믿음이 율법에 앞선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조직신학에서 구속역사 안에서의 언약에 대해서 말할 때에 다루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구속역사는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따라서 언약도 아브라함으로부터, 한 가족, 한 민족, 그리고 예수에 이르러 민족을 초월한 나라로 전개되어 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일으킨 효과를 말하면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3:2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이 주제에 있어서 롬 3-4장과 함께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모든 구약의 성도들을 우리와 함께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묶고 있기 때문입니
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즉 언약이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오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완성이 되고 그 효과는 그를 믿는 신약교회의 우리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를 바울을 '자손'과 '유업'이라는 유대적인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구약의 성도)과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말해야 할 것은 그러면 아브라함, 구약의 성도들과, 우리가 어떻게 모두 "하나님을 믿고," "의로 여기게 되었으며" 하는 것이겠지요. 지금 우리는 성경이 완성된 후에 살고 있으므로 신약의 성도로서 믿어야 할 내용의 전부를 알고 있습니다(주로 바울 서신을 통해서). 그러나 아브라함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다는 모르고 있었지요. 마치 이삭을 바치기 위해서 갈 때  어딘지 모르고 간 것과 같이. 그는 예수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어디서 와서 어떻게 죽고 어떻게 구원을 믿는 사람에게 적용할지도,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이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실 지 모르고 있었지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구원역사의 전개에 따라 그리고 계시의 점진적인 전개에 따라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많은 내용을, 구속역사에 대한 내용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구약의 성도, 그리고 우리가 알고 믿어야 구원을 받을 내용의 양과 질은 서로 달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의 내용과 "김현수가 하나님을 믿으매"의 믿음의 기본적인 대상 (하나님)은 동일하지만, 구속역사의 전개에 따라 나타나는 역사적인 상황은 달랐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후사가 나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김현수에게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포함한 신구약의 모든 구속역사의 기록입니다 (바울은 김현수를 위해서 롬 3-4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계시니까요).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신약의 가르침은 당연히 옳습니다. 이 말에는 구약이 기록하고 있는 구속역사의 배경을 물론 포함하지요. 그러나 흔히 말하는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보다는 그들이 살던 당시까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 더 타당합니다. 물론 이 말은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와 로마서가 가르치는 대로 약속을 믿음이 율법에 우선하니까요. 약속을 믿음에 율법이 더해진 것이지요.

또 하나 기억할 것은 type과 anti-type으로 이해되는 구약-신약의 해석방법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성막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를) 순종하고 지켰습니다. 물론 이것은 율법의 내용이지요. 이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성취됩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는 십자가의 희생의 상징이며, 계시의 점진적인 전개에 따라 구속역사 안에 희생제사가 예수의 십자가로 연결되어 완성되는 것이지요. 제사를 드리는 구약의 백성들은 예수가 어떻게 와서 어떻게 죽을 지 물론 몰랐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그리고 마땅히 했어
야 할 일은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지요.

결론적으로,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 여겨졌습니다. 여기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재 신구약 성경에서 아는 모든 것을 포함하지 않고, 그들의 역사에 주어졌던 말씀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직접 나타나심, 목소리, 선지자들의 외침, 제사, 삶에서 지켜야 할 율법, 의식적인 율법 등이 포함되지요. 이 말은 그들이 단순히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혁신학은) 신구약을 통틀어서 구원을 위한 하나의 계획, 즉 은혜의 언약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율법을 지킴의 바탕에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약속이, ― 특별히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대대로 전파된 ―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포함되니까요. 신약의 성도들과 함께 구약의 성도들에게도 말입니다.

답을 안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약의 성도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가 신약성도들에게 처럼 적용이 되느냐는 것이겠지요? 이 질문은 신약의 기준으로 구약을 말하려는 시각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고, 그리스도도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구약을 보면서 모든 것을 신약의 시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구약이 주는 메시지를 왜곡할 우려가 있습니다. 창 15:6은, 신약의 십자가 사건을 물론 염두에 두고, 구약의 배경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래야 아브라함을 구약의 아브라함으로 이해하는 것이지, 그를 신약의 교회의 성도로 만들어서는 안되지 않겠어요?

심 재승 교수(Ph.D., 기독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