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9 16:02
“내가 하는, 나에 의한, 그리고 나를 위한”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 딤후 3:1, 2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문화는 나르시스적인 문화입니다. 이 문화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이미지에 홀립니다. 이 문화에서 사람들이 묻는 중요한 질문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내가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의 나르시스적인 문화는 교회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묻는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 예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실 수 있을 것인가?
·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행복하게 해주실 수 있을 것인가?
·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도와주실 것인가?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십니까? 은혜의 복음이 우리의 나르시스적인 문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도취적인 문화에 어울리게 변형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가 영감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예배를 통해 우리가 일주일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초점은 언제나 나에게, 나의 필요에, 나의 행복에 놓여 있습니다.
· 예배의 중심은 나입니다.
· 하나님이 아닌 나를 위해 예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 우리의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죽음 가운데서 살려내신 하나님이 이제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류호준,「통일의 복음」중에서
[Mt. Rushmore,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