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우리 할아버지 이름이 헷갈려서, 이거 원 참”


류호준 목사



올해 7월 10일이면 16세기의 위대한 종교개혁가(Reformer)이신 어떤 분의 500주년 되는 생신이다(1509.7.10-1564.5.27). 어쩌다가 그분은 나의 신학적 조상이 되셨다. 그분이 나를 입양하셨는지 아니면 내가 그분을 골랐는지는 몰라도, 어찌됐건 나는 그분을 나의 신앙과 신학의 조상님으로 받들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그분을 추모하는 생신기념일이 가까이오니 그분의 업적과 사상을 새롭게 음미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좋든 나쁘든 나는 그분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므로 그분에 대해 잘 알아야하는 것이 착한 후손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즈음 문제가 생겼다. 그분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그냥 그분의 이름을 불렀는데, 요즈음에 그분의 이름을 발음하고 쓰는 일에 있어서 학설도 많고 말도 많다.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닌듯한데 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말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기의 표기법이 맞느니 지금까지의 표기가 틀렸느니 하면서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심지어 동일한 학술지에 기고한 서로 다른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발견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은 저렇게 표기한다. 그러니 보통사람들이 안 헷갈릴 수 있겠는가? 나도 헷갈리는 데 말이다. 이런 두통을 가져다준 나의 조상, 그분이 누구신가?


출생으로 따지자면 그는 프랑스인이고, 그가 책을 쓸 때는 종종 라틴어로 썼고, 대부분의 활동과 삶은 스위스의 한 도시 제네바에서 했고, 그의 영향력은 유럽의 북쪽인 네덜란드와 영국(특별히 스코틀랜드) 그리고 후에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다시 백여 년 전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 땅에도 미쳤다. 그분을 떠나서는 한국의 장로교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 그분의 이름을 살펴보자. 프랑스어로는 Jean Cauvin, 라틴어로는 Ioannes Calvinus, 독일어로는 Johannes Calvin, 네덜란드어로는 Johannes Calvijn, 영어로는 John Calvin으로 표기한다. 한글로 표기하거나 발음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장 꼬벵”(Jean Cauvin, 프랑스어) = 원명
(2) "장 깔뱅"(Jean Calvin, 프랑스어) = 요즈음
(3) “요안네스 깔비누스”(Ioannes Calvinus, 라틴어)
(4) “존 칼(캘)빈”(John Calvin, 영어)
(5) “요한네스 칼빈”(Johannes Calvin, 독일어)
(6) “요한네스 깔베인”(Johannes Calvijn, 네덜란드어)


어느 것이 맞을까? 모두 맞겠지! 우리가 서로 다른 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치 우리 나라에서 하나님의 고유 존함을 어떻게 부르는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로, 다른 어떤 사람들은 '야웨'로 부르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른 분을 우리가 부르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동일한 분이 아닌가! 다른 예를 들자면 유럽의 나라 가운데 프랑스가 있다. 물론 영어식은 프랜스라고 하겠지. 그러나 한자식 표기는 불란서(佛蘭西)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예는 참 많다. 샌프란시스코를 상항(商港)으로, 로스앤젤리스는 나성(羅城)으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다시 돌아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람들중 그분의 본디 이름(原名)을 아는 사람은 1번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즈음 프랑스인들의 표기와 발음을 따르면 2번이 될 것이고, 라틴어를 좀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좀더 현학적으로 들리는 3번을 선호한다. 좋든 나쁘든 지난 1세기 이상을 사용해온 영어식 표기를 지금 와서 고쳐야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은 4번을 선택한다.

그런데 근년에 이르러 상당수의 한국 신학자들은 프랑스인인 그분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표기하고 발음해야한다고 하면서 ‘장 깔뱅’ 혹은 ‘깔뱅주의’라고 한다. 그렇게 부르게된 연유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그분의 라틴어식 이름이 '요안네스 깔비누스'인데 여기서 '~누스'는 라틴어의 어미변형이기 때문에 남는 원줄기는 '깔빈'이 남게 되고  이것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하면 '깔뱅'이 된다. 그리고 요안네스는 독일식 발음으로는 요한네스로 줄여서 요한이라고 하며 이것을 다시 프랑스어로 발음하자면 '장'(Jean)이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장 깔뱅'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인들조차도 라틴어식 이름을 그들 발음으로 한 것이다. 어쨌건 '장 깔뱅'보다는 원래의 이름인 '장 꼬벵'이라 불러야 원칙이면 원칙이다. 그런데 ‘꼬벵’하니까 ‘꼬맹이’가 생각나서 영 그렇다. 한 가지 주의점! 그분의 성은 결코 장씨가 아니다!(ha!)

최근에 한국 조직신학회를 비롯하여 여러 학회와 학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다가 절충식 발음법이 제안되었다고 한다. "요한 칼빈"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것 역시 일종의 '섞어 찌게'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름은 라틴어식(요한)이고 성은 영미독일식(칼빈)이다. '요한 칼빈'이 됬든지 '존 칼빈'이 됬든지(존 칼빈은 '좋은 칼빈'으로도 발음할 수 있다!) 어쨌건 우리 할아버지 존함을 함부로 망령되이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아버지님, 죄송스럽습니다. 어떻게 당신의 존함을 부르든, 적어도 당신이 남겨주신 신학적 유산만은 오염되지 않고 잘 후대에 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2009년 5월 1일, 석가 생신 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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