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3 16:52
“카이로스(kairos)에 뿌리 내리고 크로노스(chronos)를 살다”
시편의 시인은 제3의 눈,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이해합니다. 행복은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학벌 등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야웨 하나님의 가르침에 지속적으로 순종하며 사는 일은 궁극적으로 영원에 잇대어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야웨를 즐거워하며 그의 교훈을 주야로 읊조리는 삶은 흐르는 물가에 방금 옮겨 심겼지만 깊이 뿌리를 내려 항상 신선한 물기를 흡수하는 영속적이며 생산성 있는 나무와 같다는 확신입니다. 이 나무는 자리가 옮겨졌음에도 불구하고 풍성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성도들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안정성, 지속성, 신선함, 생산성이 바로 이 이미지가 전달하는 내용입니다. 야웨의 길을 끊임없이 즐거워하는 사람의 행위와 전도(前途)는 이 나무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과실나무에 열매가 맺는 것은 철이 지나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정해주신 ‘철’(때)이 되면 열매를 맺게 된다는 확신은 시인에게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가 아닌 카이로스(kairos)가 있음을 믿고 바라보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이 지닌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경홀히 여기는 삶과 인생은 실질적으로는 잠정적이고, 껍데기뿐인 전혀 쓸모없는 겨와 같습니다. 아무도 풍성하고 싱싱한 나무를 젖혀 놓고 죽은 지푸라기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을 겁니다.
- 류호준, 「우리의 기도가 천상의 노래가 되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