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2 00:03
짧은 글 모음
twitter@danielryou - 31
[1] 출 1-2장에는 하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고역의 땅 애굽, 죽음의 나일강, 미디안 광야, 이방인, 게르솜으로 특징지어진 장들입니다. 출 1-2장이 "하나님의 부재"에 대하 말한다면 출 3장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서 "하나님의 현존"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2] 노만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 로버트 슐러의 가능성 사고,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부르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 조용기의 건강과 번영의 복음, 김선도의 로버트 슐러 따라하기는 한국교회의 신앙 지형도를 형성하는 일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한국교회에겐 잃어버린 세월들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지도 모릅니다.
[3] 장로교의 장자교단이라 자화자찬하는 합동총회지만 온갖 수치스런 일들은 도맡아 쏟아내는 하수 처리장 같으니 안타까울 다름입니다. 그 안에는 특별히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과 구제불능의 타락한 목사들이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다니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예와 평판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성적으로 더러운 일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얼굴을 똑바로 치켜세우는 목사, 돈으로 권력과 명예를 매수하여 손아귀에 쥐어보려도 안달하는 목사, 정치권에 기웃거리며 청와대 초청에 어깨 펴는 목사, 자기가 일구었다고 대형교회를 자식에게 겁 없이 대물림하는 목사, 단란주점 노래방에 연루되어 영적 몰골이 추잡하게 된 목사, 수치스런 일들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목사, 거짓말을 물마시듯 하는 목사, 교단정치판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완전개근 목사, 교인들의 헌금을 쌈짓돈으로 알고 흥청망청 제 마음대로 쓰는 목사,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왜 그럴까요? 물론 누구든 잘못을 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고 고집적으로 그런 일을 계속한다면 화인 맞은 불행한 양심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요?
[4] 라이벌 파당이었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유월절 즈음에 의기투합하여 예수를 잡아 죽이려하였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전자는 종교적 기반이, 후자는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론 먹고 사는 문제가 이념이나 정책이나 신념이나 철학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5] 지중해연안과 소아시아 지방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녔던 사람 바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게 하였을까? 그 어느 것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복음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메시아를 만난 다메섹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목숨도 체면도 지식도 학벌도 모든 것도 다 내려놓게 하였습니다.
[6]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토양의 질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신학의 꽃들이 피어납니다. 남미에서 해방신학과 오순절 신학이, 개발독재 아래서 민중신학이, 폭압적인 제도아래서 여성신학과 흑인신학이, 타국생활에서 이민신학과 순례 신학이 나오듯 말입니다. 모두 눈물과 한으로 만들어진 신학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