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개인적으로 나의 신학(총신) 선생님이셨으며 미국에서도 칼빈 신학교 대선배시며, 또한 같은 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에서 목회를 하셨고 평소에 여러가지로 목회적 충고와 인간적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김의환 목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미국에서 목회할 때도 내가 섬기던 교회에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허전하고 서운하다. 언젠가는 귀향할 날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설레면서도 두렵기도 하다.]

 

 

 

아래는 부고 소식입니다.  

 

“교회사는 항상 교회의 순결(Purity)과 연합(Unity)의 사이에서 움직이는 진자(振子)의 움직임을 목격하여 왔다. 순결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연합이 깨지고 연합을 너무 강조할 때 순결에 오염이 온다. 진리의 순결과 그 진리를 지키는 보수(保守)의 정신없이 연합은 진리의 순결을 파괴하며 훼손하게 된다.”(김의환)

▲ 고인이신 김의환 목사   © 리폼드뉴스
진리의 순결과 연합의 신학적 균형을 이루면서 한 시대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쓰임 받았던 恩石 김의환 박사가 향년 77세의 일기로 10일(월) 오후 2시 3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입성했다.

지병으로 서울순천향의대 부속 순천향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되지 못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특2실)로 모셔졌으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입관식예배는 13일(목) 저녁 8시에 진행되며, 발인예배는 14일(금) 오전 9시에 드린다. 장지는 천안 가족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으로 강원순 사모와 3남2녀의 자녀가 있다.

고 김의환 목사는 1933년 11월 19일에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에 고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1959년 9월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커버넌트(Covenant)신대원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인 1960년에 미국 칼빈(Calvin)신대원에 진학하여 졸업했다(B.D.) 1963년에는 미국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신대원 신학석사(Th.M.)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66년에는 미국 템플(Temple)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함과 동시에 미국 개혁장로회 필라델피아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미국에서 철학박사학위 취득과 목사안수를 받은지 1년이 지난 후인 1967년 3월에 총신대학교 조교수로 총신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부교수(1969년), 정교수(1973년)로 사역하다 1976년 총신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2년부터 미국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학장(82-95)을 역임하였으며, 1985년에는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초빙교수가 됐다.

1995년 다시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부름을 받아 1999년까지 총장을 역임한 후 2002년에 칼빈대학교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2002-2007).

특히 고인은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목회자로서 그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새한교회(68-72)와 에덴교회(72-75)를, 미국 나성한인교회를 개척시무했다(1976-1995). 1999년에는 성복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사역하기도 했다(1999-2002).

또한 고인은 1968년 RES(암스테르담 회의) 한국측(합동)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으며, 1971년에는 아시아연합신학대학원 설립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로는 도전받는 보수신학 외 다수가 있다.

고 김의환 박사는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에 입하기 전에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고 고달프게 자랐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마칠 무렵에 어머니는 고향인 서부 경남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어머니를 따라 진주고등학교에 전학을 하게 됐다. 진주고등학교 재학중에 6.25를 만났다. 진주에 까지 인민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고인은 피난도중 인민군에 붙잡혀 격전지로 끌려가게 됐다.

그는 전쟁터 한 복판에서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살려만 주시면 예수를 믿겠다”는 기도였다. 혹독한 6.25전쟁 중에 예수를 믿게 되었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예수를 영접함으로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왔고 결국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법학도가 되려고 했지만 신학도가 되고 싶은 마음은 결국 일생을 남의 죄를 좇는 검사의 삶으로 살기보다 오히려 사죄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그는 1953년 3월에 부산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고신에 입학할 때 충현교회 원로목사인 김창인 전도사와 동도교회 원로목사이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훈 전도사, 또한 총신 학장을 역임했던 차영배 전도사와 함께 입학했다. 고려신학교에서 당시 교장이었던 박윤선 박사를 만났고 교수로 이상근, 한부선, 한상돈, 박손혁 목사를 만났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신학수업 이후 1966년 3월에 목사안수를 받은 후 54년 동안 신학교에서 목회자 후보생들을 양성하는 일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목회사역, 기타 여러 사역들을 성실히 감당하시다가 2010년 5월 10일 오후 2시3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입성하였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예식장 ☎ 02-2227-7500.
기사입력: 2010/05/10 [18:32]  최종편집: ⓒ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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