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부고: 최의원 박사(1924-2010) 소천

 

오늘 나는 또 한분의 스승을 하나님 품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 최의원 박사님(1924-2010년). 그동안 한국의 교계와 학계에서 사역을 마치고 은퇴한 후 가족들과 함께 시애틀에서 여생을 보내던 선생님께서 지난 7 월 21 일 새벽 3시30분에 자택에서 86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오늘에서야 듣게 되었다. 오늘 따라 이곳 서부 미시간은 비가 무심하게도 내린다. 적막하기까지 한 토요일 늦은 오후에 선생님을 생각해 본다.

 

고인은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1954년), 총회신학교 본과(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952년)를 졸업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구약학으로 Th.M. 학위를 받고(1956년) 당시 구약학계의 최고 명문인 Dropsie 대학교에서 Ph.D.학위를 취득했다(1960년). 이어 총신대학교(1960-1976년)와 현 백석대학교에서 교수와 신학대학원장(1983-1998년)으로 봉직하면서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학과장(1964-1970년)으로도 봉직하셨다.

 

고인은 생전에 [대한성서공회]와 [생명의 말씀사]에서 주관한 한국 성경 번역작업에 관여, 오늘의 한글개역 개정 성경의 출판에 기여했고, 은퇴한 후 독자적으로 구약성경전체를 번역해『새즈믄 하나님의 말씀: 구약정경』(2005년)이란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고인은 대한예수교 장로회총회(합동)의 총회장을 역임한 고 김윤찬 목사의 장녀 김성숙 사모와 결혼하여 슬하에 2 남 3 녀와 11 명의 손자손녀 유가족이 있으며 특히 두 아들은 모두 목사로 현재 사역 중에 있다. 안타깝게도 김성숙 사모님 역시 고인이 소천하기 열이틀전에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다. 58년간 이 세상에서 함께 길을 걷던 두 분이 다시 함께 먼 길을 떠나신 셈이 되었다. 이 역시 가슴이 찡해 오는 소식이다.

 

1995년에 내가 백석대학교에 구약학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구약학과에는 최 박사님 혼자 계셨다. 당시 그분은 기독신학대학원(현 백석대학교의 전신)의 신학대학원장으로 당시 무명의 신학교의 대외적 위상을 홀로 지키고 계셨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사실 내가 방배동의 신학대학원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최 박사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하늘과 같은 스승과 함께 일하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과 자부심이 되었다. 당시 학교의 형편은 여러모로 열악했다. 대외적인 평판은 물론이고 외형적인 환경과 조건 역시 그리 내키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최 박사님은 십수년 년째 그곳을 지키고 계셨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학생들을 성심껏 지도하시고 그들에게 따끔한 훈계도 잊지 않는 모습은 그 후 나에게 귀감이 되었다.

 

은퇴하실 즈음에 나는 최 박사님을 위해『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주토 최의원 박사 신학교육 40년 기념 논문집』(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7)을 편집 출간하는 영예를 누렸다. 수년에 걸친 준비와 산고 끝에 45명의 기고자들과 94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엮어 그분에게 헌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출판기념식도 성대하고도 의미 있게 치렀다. 그 후에 최 박사님은 두고두고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셨지만, 나로서는 그 일이 당시 아무도 학문의 길의 귀함을 알아주지 않았던 그 지역에서 꿋꿋하게 신학교육에 정진하시고 계신 선생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은퇴 후 미국으로 이주하신 후에도 가끔 전화라도 드리면 힘들어도 잘 참아내라고 하시며 따스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은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모님의 간병을 위해 고생하시지 않게 되었군요. 함께 손을 잡으시고 다정하게 먼 길을 떠나셨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거립니다. 당신께서도 육체적으로 힘들어 하시면서도 사모님의 병간호 때문에 눈물로 보내신 수많은 세월들을 저도 먼발치서 보았습니다. 몇년전 어느 날 한국에 방문하셔서 저의 방배동 8층의 연구실에 오셨지요. 그 때 갑작스레 미국에서 걸려온 따님의 전화를 받으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사모님에게 일어났다는 전갈이었지요. 한참 전화를 마치신 후 천정을 쳐다보시면서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모르겠어"하시면서 눈물지으시던 한 선한 노인의 모습이 지금도 어른거립니다. 이제는 모든 고통과 눈물을 뒤로하고 두 분이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었으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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