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대원의 신광진입니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영화 감상문을 홈페이지에 등록하는 것을 몰라서 이제 등록합니다. 저가 DVD 를 본 후 다른 학우들에게도 권하였지요. 감상문은 수업 시간에 제출하였으며 붙임 파일은 그것을 약간 교정하여 올립니다.

 

 

지붕위의 바이 올린(Fiddler On the Roof)』 감상문

 

학번 : 20091178 이름 : 신광진

 

 

1975,6년도 쯤 학생단체 관람할 때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쉘렘 아라이쉠 원작으로 노만 주이슨이 감독하여 1971년 미국에서 개봉되었다. 그때는 좋은 영화이니까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봤을 뿐이다. 영화에 대한 기억은 ‘테비에’ 가족들이 짐을 꾸려 길을 떠나는 것들만 기억하고 그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교보문고에서 DVD를 구입하여 주의 깊게 다시 보면서 영화 속의 상황가운데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또 영화 속의 유대인들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은 칠흑 같은 어둠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동녘이 밝아올 때 새소리, 닭의 훼치는 소리와 함께 가파른 지붕위에 서서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켜면서 시작된다. “저 지붕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왜 저렇게 위험한 곳에서 연주 하냐고요? 그건 바로 ‘아나테프카’가 우리들의 고향이기 때문이죠”라고 한다. 가파른 지붕위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연주하는 연주자의 노래를 미친소리라고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지탱해주는 것은 균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균형을 잡는 비결은 그들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가운데서 계속 유지된다고 말한다. 그 전통은 그들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행하는 것들로서 자는 것, 먹는 것, 일하는 것, 복장 등이며 이러한 전통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전심을 표하는 것이라고 하며 전통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 영화를 통하여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전통과 변화’에 대한 것을 말할 수 있겠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지만 특히, 셋째 딸이 결혼을 허락하여 달라고 할 때 ‘테비에’가 반대했던 뚜렷한 이유를 자기가 지금까지 신념으로 지켜 왔던 것을 이방인 때문에 종족에게 등을 돌릴 수 없으므로 “안 된다” 라고 한다. 과연 우리들의 신앙 여정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신앙 생활하여 왔던 전통과 새로운 변화가 상충될 때 과연 우리는 그 문제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가파른 지붕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은 ‘균형’이라고 하였듯이 데비에의 삶 가운데 또한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전통과 변화’를 적절하게 조화할 수 있는 균형은 무엇일까? 신앙생활 가운데서 기도와 말씀, 은사와 성숙된 삶, 가정과 일 터 그리고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러시아의 추방령에 의해 그들이 마을을 떠나기 전 주민들이 랍비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 때에 우리들이 평생을 기다렸던 구세주가 지금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에 랍비의 대답은 구세주는 지금 여기 아니라도 다른 곳에서도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고통 가운데서 자기 유대인들에게 닥쳐오는 시련이 너무 힘들어서 하늘을 바라보며 왜 우리 민족을 택하여서 괴롭히느냐고 한탄하며, 끝없이 고난을 겪으며 하나님의 채찍과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서러움으로 가득 찰 때 랍비의 대답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일 것이다. 그러면서 ‘아나테프카’가 에덴동산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들에게 ‘아나테프카’가 에덴동산이 아니라고 했지만 우리들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마치 에덴동산인줄 착각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들이 아나테프카를 떠나야 하듯이 우리들 또한 현재의 삶에서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제 한 사람 한 사람 마을을 떠나간다. 중매장이 할머니가 테비에의 아내에게 작별 인사할 때 데비에의 아내는 중매장이에게 갈 곳이 없다고 하였는데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게 된다. 중매장이의 대답은 지금까지는 갈 곳이 없었지만 이제 생각났다고 한다. 유월절이오면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라고, 성지로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중매장이는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떠나지만 우리들은 이방인처럼 살다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게 된다. 우리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끝까지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던 셋째 딸이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온다. 그녀는 러시아 청년과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길 때 아버지인 데비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빈다”라고 축복한다. 물론 이 축복의 말 가운데에는 결혼을 허락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에게는 더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세 명의 딸들이 결혼하기 전에 한결 같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길 원하는 모습이다. 물론 그들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족장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축복해 주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인데 나의 자녀들의 결혼식 때 내가 직접 주례를 하지 못해도 반드시 축도는 해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해 왔다.

 

이제 데비에의 가족도 마을을 떠난다. 가는 길이 온통 질퍽이는 진흙탕이다. 그들의 가는 여정이 결단코 평탄하지는 않을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새로운 고향을 찾아서 가야 한다. 랍비가 말했던 것처럼 그 곳에서 구세주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데비에의 가족들이 가는 그 길이 우리의 인생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들의 가는 길에 고속도로만 있는가? 데비에의 가족들이 살았던 아나테프카가 이 땅의 삶이라면 이제 그들이 떠나듯이 우리들도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럼 그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면서 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에게 지금 가는 길이 진흙탕 길이지만 그 길이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고 희망이 있음을 암시한다. 가파른 지붕위에서만 연주하였던 바이올린 연주자가 이제는 그 위험한 지붕위에서 내려와 데비에의 일행을 뒤따르면서 여전히 갸우뚱 거리는 모습으로 연주하면서 뒤따른다. 그의 모습은 비록 뒤뚱 거리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는 평지를 걸어가면서 연주를 하고 있다. 그가 연주하는 이유는 아나테프카가 고향이었기 때문에 연주한다고 하였듯이 새로운 고향을 찾으면서 가는 것이다. 이제 그들이 도착할 곳은 경사진 지붕처럼 위험한 곳이 아니고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원한 고향 땅이 되길 소망한다.

 

희망을 가지는 또 하나는 영화이야기 속에서 약속된 미래는 없었지만 영화를 시작하면서 어둔 밤이 나무들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으로 서서히 밝아졌듯이 모든 것이 희망찰 것이다. 그 어둠이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 물러나듯이 그들에게도 고통과 시련이 물러가고 약속된 새 땅에 머물러 안식하길 바란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은 실패한 제자들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과 같이 이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고향을 찾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이 그렇게나 누리길 원했던 안식을 누릴 것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치면서 생각나는 것은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한 말이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매일매일의 고난의 연속일지라도 오늘의 일상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종말론적인 삶은 어떤 것일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유지하며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장 잘 준비하는 것은 이 종말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우리의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다. ‘아나테프카’에서 데비에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이방인이었듯이 우리 또한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들도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날 것이다. 데비에의 가족들은 삼촌 아브람의 집으로 간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약속된 하나님의 집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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