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설교: "햇빛과 비"

2009.05.09 23:05

류호준 조회 수:8565

 “햇빛과 비”
호세아 6:3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동이 트는 것처럼 확실하다.
그는 소나기처럼 우리에게 나오실 것이다 (6:3)



주전 약 8세기경에 북이스라엘에는 호세아라는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예언자로서 수많은 설교를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통해 설교하였습니다. 성육신된 설교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였지만 결혼생활을 그에게 크나큰 슬픔과 치욕과 괴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부인이 바람이 난 것입니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호세아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난이었습니다. 가정생활이 편할 리가 없었고 그의 사역은 매우 취약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묵묵히 북이스라엘을 향한 사역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단한 삶이 북이스라엘의 방탕하고 형편없는 죄악 된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의 근원에는 ‘무지’(無知)라는 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병,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이스라엘이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질책의 말은 호세아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멜이 그녀의 남편 호세아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과 같은 어투입니다.


호세아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무참히 깨어진 마음, 철저하게 배신당한 마음, 거절된 사랑 그래서 고통을 수반하는 사랑, 매우 취약적인 사랑,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한없이 기다려야하는 인내 등으로 얼룩진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해!”, “어쩌면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몰라줄까?”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는가?” “도무지 사랑받을 만하지 않은 인간을 언제까지 사랑해야하는가?” “이 정도까지 참고 지냈으면 갈라서도 내겐 아무런 도덕적 책임이나 양심의 가책은 없을 거야!” 호세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호세아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죄로 인한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라고 하면서 제일 먼저 가르쳐 준 구절이 “우리가 알자,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16세기의 위대한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그 신앙교육서는 주기도문 가운데 첫 번째 간구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의 뜻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르게 알게 하여 주옵시며,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거룩히 여기고 
        경배하고 찬송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주님의 전능과 지혜와 선하심과 
        의와 자비와 진리가 환히 빛나옵나이다.
또한 우리의 모든 삶을 지도하시도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셔서,
주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고 
        오히려 영예롭게 되고 찬양을 받게 하옵소서. (122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예언자 호세아는 주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회개로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회개하는 백성에게 대해 이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 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그 신앙교육서가 잘 가르쳐 주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가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그분의 흔적과 발자국을 찾고 세심하게 그분의 의도와 뜻과 법을 조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존경을 받고 그분의 명예가 높여지고 하나님이 찬양받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의 기도는 하늘을 향해,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방탕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버지를 향해 손을 펼칠 때, 그 제스처가 다만 하루의 먹을 양식을 위해서라면, 아니면 그분의 베풀어 주실 선물만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그의 회개와 회심의 진정성을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들은 의식주(衣食住)에 관해 염려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가 더럽힌 아버지의 명예를 생각하며 감히 머리를 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받아들이는 아버지가 누구신지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이델베르그 신앙교육서는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언자 호세아는 자연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칩니다.


회개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무엇입니까? 지난 주일 저녁에 ‘가시나무’의 작가이고 가수이며 백석대학교의 기독교 실용음악과 교수인 하덕규는 그의 노래 ‘풍경’을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그 풍경이 제일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것, 그곳이 우리가 원래 있어야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새로운 삶, “삶이라는 이런 것이야!”라고 환호할 수 있는 삶이 시작됩니다. 어린 식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 쑥쑥 자라는 것이 보입니까? 이른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만물을 생동하게 합니다. 게다가 비라도 온 그 다음 날의 햇살은 청명한 하늘뿐 아니라 진짜 생명력과 생기를 마음껏 품어내는 듯 하지 않습니까? 어린 식물들에게는 햇빛과 비는 하늘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어린 자녀들은 하늘에 의존하여 사는 비밀을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그의 나타나심은 동이 트는 새벽 여명(黎明)처럼 확실합니다. 
소나기와 같이 우리에게 나올 것입니다.”


“동이 트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희망과 기대입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선물로 주어지는 새날의 환희를 느껴보시는지요? 아침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동이 트지 않는 내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새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여명 말입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과 함께 하루의 문을 열게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의 핵심입니다.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과 별들 이 모든 만물이 주님의 영광과 신실하신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찬송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새벽의 여명(黎明)처럼 오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에게는 빛과 비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대지에는 햇빛과 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과 저에게도 빛과 비가 필요합니다. 아직 우리가 깊은 잠이 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상공위에 맴도시다가 불그스레한 빛으로 동녘 하늘을 가르시고 대지에 비칠 때, 지면은 새로움으로 기지개를 펴며 하루를 열게 됩니다. 지난밤의 죽음의 시간을 떨쳐내고 새로운 생명을 품어내는 것이 부활절의 경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시작된 새로운 생명이라면 그 생명은 쑥쑥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이 5월 첫 주입니다. 계절이 우리 피부 속으로 급속히 들어와 우리의 호흡과 감정과 기분과 폐부 속에 깊이 새겨들고 있음을 느끼시는 지요? 연초록의 산들과 언덕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점점 진초록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햇빛과 비! 이 두 가지는 여린 식물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자랄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햇빛만 있어도, 그렇다고 비만 있어도 식물을 제대로 자랄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마치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시점과 유사합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지금 부활절과 성령강림절 사이에 있습니다. 만일 무엇인가 새로운 삶이 아름다운 약속에 이르게 되려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타나심은 동이 트는 새벽 여명(黎明)처럼 확실합니다. 
소나기와 같이 우리에게 나올 것입니다.”

 

이 은유들은 성령의 부으심을 명확하게 가리킵니다. 이 문장 안에 부활절과 오순절의 만남으로 생명이 가득해 보입니다.



부활절과 오순절: 햇빛과 비


물론 호세아 자신은 ‘부활절과 오순절’이란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부활주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순절의 성령과 일치합니다. 우리 안에 새로운 삶을 깨닫게 하는 그분은 그 새로운 삶의 완성과 충만함을 가져오게 하시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그 곡물을 수확하는 사람이고, 곡물을 수확하는 사람이 곡물을 단으로 묵을 때까지 그 작물을 익게 하는 사람입니다. 햇빛을 주어 씨앗이 발아(發芽)하고 싹을 내고 자라게 할뿐 아니라 비를 내려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 동일한 한 분이십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이유는 수확입니다. 열매를 따는 것입니다. 풍성한 만족과 기쁨의 수확이 모든 것이 근본 목표입니다. 그런 목적 때문에 돌보고 싸매고 전지로 가지를 치고 도랑을 내고 비료를 주고 탐스런 과실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헌신적 돌봄이 있습니다.


“그의 나타나심은 동이 트는 것처럼 확실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완전한 구원을 가리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서 새로운 날의 새벽(여명)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에 걷는 우리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안에서 그와 함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은 아침마다 새로우니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크십니다.” (애가 3: 23).


하나님의 선하심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일정하십니다. 더욱이 태양의 햇살은 모든 생명체 속으로 파고들어 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의 모든 문을 닫고 전혀 태양을 볼 수 없는 어두움에서 불평하면서 그의 모든 커튼을 가리고 항상 희미한 빛에 있는 그림자 사이를 걷기를 계속합니다. 이른 아침의 새벽빛은 우리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데 피곤해 하시지 않습니다. 태양이 그 햇빛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선물을 주시는 일에 너그럽게 풍성하십니다. 이것은 깜짝 놀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불만과 불평이 많습니다. 때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분히 주시지 않는다고 투덜댑니다. 그러나 그분은 넉넉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악한 자에게도, 악한 세상에도 햇빛을 주십니다. 다시금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에 아론의 계열의 대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축복기도를 올려야만 했습니다. 그 축도 가운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을 향해 그 얼굴로 빛을 비추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을 향해 그 얼굴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해바라기]

해바라기의 이름이 정확하게는 무엇이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해를 바라보고 자라가는 꽃이며 식물입니다. 아름다움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것을 제공하는 식물입니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라는 그림을 기억하십니까? 얼마나 강렬한지요? 그러나 그 그림이 강렬한 것은 강렬한 태양과 함께 오버랩하는 해바라기의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의 정기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어느 화장으로도 그 얼굴을 아름답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햇살, 희망의 선물을 매일같이 눈여겨본다는 것입니다.


[정동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정동진을 향해 갑니다. 마치 종교적 순례나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강원도의 강릉에 있는 정동진(正東津)은 말 그대로 임금님께서 계신 한양의 경복궁에서 정 동쪽에 위치한 항구라는 뜻입니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일출(日出)을 보기위해입니다. 새벽의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는 예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새벽 여명을 단순히 무아의 지경에서 시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소재가 아닙니다. 가수의 영혼을 흥분시키기 위해 동녘의 빛을 만드신 것도 아닙니다. 그가 태양을 뜨게 하는 것은 빛을 주는 것이고, 생명을 자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도 풍성한 생명을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회개로의 촉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태양처럼 일정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찾아오시는 이유는 우리로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은 정규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려고 주일을 정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 날을 주일로 삼아 새로운 생명에로 초청하기 위해 오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신실하심, 성실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고 바울이 큰 소리로 외친 적이 있습니다.(롬 2:4)


하나님은 사람이 회개하도록 이끄는 많은 다른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괴로워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빛을 비춥니다. 그의 어두움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그가 가야할 트랙 위로 다시 올려놓습니다. 회개가 그런 것입니다. 요한 칼빈은 회개를 말하면서 두 가지 단계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는 고통 하는 것입니다. 죄의 성품을 죽이느라 고통 하는 일입니다(mortification). 마치 수술하려면 반드시 고통이 수반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죄의 악성 종양들을 제거하는데 어찌 고통과 아픔이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기쁨입니다. 일종의 후련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먹다가 급체했다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다가 급기야 왈칵 다 토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십년 먹은 체증이 싹 가신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든 죄들을 토해냈으니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시편의 한 시인은 이것을 가리켜 토설(吐說)이라고 합니다. 이 때 찾아오는 것이 상쾌함, 유쾌함, 신선함, 생기가 돔, 그리고 예기치 못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vivification). 이것이 회개가 주는 선물입니다. 행복함입니다. “죄를 용서 받고 잘못을 용서받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시편의 한 성도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시 32:1). 이 말을 받아서 사도 바울께서도 “자기의 죄를 용서받고 자기 허물이 가려진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롬 4:7).


하나님이 찾는 것은 회개의 열매입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감사는 새로운 삶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의 삶은 두 낱말, 즉 ‘하나님의 율법’(말씀, 토라)과 ‘기도’라는 깃발 아래 사는 삶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신앙교육서 3부 참조)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내일의 해돋이처럼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삶에 열매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햇살을 머금고 사는 어린 식물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기쁨과 즐거움은 헛된 것입니다.


소나기처럼 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나기처럼 올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나기는 늦은 비 혹은 봄에 내리는 비를 가리킬 뿐 아니라 수학기에 공중 낮게 걸려있는 구름으로부터 땅에 내리는 비입니다. 하나님은 뿌리를 지탱하는 토양을 축이는 비를 보내시면서 우리를 풍요롭게 하실 것입니다. 내리는 비가 얼마나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며 비옥하게 하는지요! 때론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왜 비가 구질구질하게 오는 것이야, 오늘 데이트 약속 있는데 말이야 하고 불평하겠지만, 목마른 들녘과 대지는 비가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고, 우리는 그 들판의 생산물을 의지해야 살 것입니다. 우리 삶의 태양이 빛나는 섬광처럼 짙은 비구름 뒤에 숨고 하늘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못마땅해서 입을 삐죽거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청하지 않은 이 소나기는 예기치 않는 축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격렬한 폭풍우조차도 선한 것을 위해 함께 작용하고 있으며 큰 수확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햇빛뿐 아니라 비도 우리를 회개로 이끕니다. 환원하자면 그것은 우리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무슨 뜻입니까? 풍성한 열매중의 하나는 우리가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내심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하며 체념하는 수동적 인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런 수동적 인내심 정도는 어느 정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인내는 새로운 삶의 열매가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인내는 소용돌이치는 물살 속에서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열매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자기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그것을 운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늘 기뻐합니다. 항상 희망과 용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신앙에서 모든 역경은 번성으로 끝난다는 역설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짙은 비구름은 은빛 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만들어가는 크리스천들의 회개는 그가 사물을 달리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일들과 사물들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에게 “당신의 삶은 어떠합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그는 “좋습니다!”라고 답변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복리와 복지를 위해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항상 행복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주장의 의미를 압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항상 기뻐하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를 따뜻하게 해주고, 그의 주변에 빛을 내고, 하나님의 강력함이 그의 고통가운데서 용기를 돋우어 줍니다.


하나님은 태양과 비를 주셔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다면 그 나무의 운명을 어디겠습니까? 궁극적으로 화염 속에 던져버리게 될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런 한 삶은 가시와 엉겅퀴로 차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에서 열매 없음을 발견합니다. 위대한 수확자가 그 열매를 따기 위해서 오고 계십니다. 그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입니까?



찬송 (183장)


1.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2.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3.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위에 성령을 부우소서
4.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후렴)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2009년 5월 3일 주일 설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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