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에스겔서 강론(4): "거짓 예언자들"

2010.03.28 23:42

류호준 조회 수:8954

[4]

“거짓 예언자들”

에스겔 13장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4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5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에서 견디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6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7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8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0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11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몰아치리니 12 그 담이 무너진즉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냐 하지 아니하겠느냐? 1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뜨리리라. 14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허물어서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5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모두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16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보았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 경고하며 예언하여 18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19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20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부적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 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아 주며 21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2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 23 너희가 다시는 허탄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점복도 못할지라.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

 

 

폐허더미의 여우들

 

포로민 공동체 안에는 에스겔의 사역을 대적하던 원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온 자들 가운데 있었던 또 다른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집요하게 에스겔을 괴롭혔습니다. 에스겔과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에스겔은 그들의 불순한 동기를 파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전하는 메시지에는 어딘가 구린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정관리를 잘하였고 그들의 메시지는 언제나 잘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의 거짓된 동기나 흑심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작심이라도 한 듯 마침내 에스겔은 통렬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에스겔은 그들을 “자기 심령에 따라” 예언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혹은 “생각나는 대로”, 아니면 “자기 상상력에 따라서” 꾸며낸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내뱉어 불안한 청중들에게 거짓된 안전감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에스겔의 임무는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앙과 심판의 정당성을 선포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긍정의 힘을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 편이다”라고 말하는 ‘평화의 복음’(!) 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은 언제나 감언이설(甘言利說)이었습니다.

 

에스겔과 대척점에 서있던 이 예언자들은 에스겔을 그저 영적 조언자 정도로 평가절하 했습니다. 이에 대해 에스겔은 그들을 ‘어리석은 예언자들’ ‘바보 같은 예언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참고로, 예언자는 히브리어로 ‘나비’라고 하는데, ‘어리석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발’입니다. [아이들 말로 그들은 ‘나발 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나발’은 영적 현실들에 대해 눈이 먼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가벼운 언어유희를 통해 에스겔은 진짜 예언자가 누군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적 현실과 실체들을 정확하게 파악 하는 통찰력을 결여한 예언자들이 가짜 예언자들이요, 어리석은 예언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이런 언어유희를 통해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환상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신약의 바울이 종종 자신의 사도직의 진정성을 변호하듯 말입니다. 어리석은 예언자들은 환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에서 꾸며내는 자들입니다.

 

에스겔은 생생하고 사실적인 두 개의 은유를 사용하여 ‘머리가 텅 빈’ 가짜 예언자들이 누구인지 알립니다. 그들은 폐허더미를 서성거리는 여우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짐승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물건들이나 사물들을 엉망으로 만드는 간교하고 장난기가 있고 때론 파괴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거짓 예언자들은 억눌려 살고 있는 피폐한 포로민들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거짓말과 속임수로 개인적 이익을 챙겼고 근거 없는 위로를 마음대로 남발하였습니다.

 

참으로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매우 악마적인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적 재앙을 빌미 삼아 개인적 이득을 챙긴 아주 나쁜 인간들입니다. 국가적 재난 가운데도 그들은 안일하게 살고 있었고, 심지어 국가적 불행을 그들 개인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조작해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기꾼 같은 자들은 그들의 높은 종교적 지위를 사용하여 당시 백성들의 두려움과 걱정들을 무마시키며, 값싼 종교적 메시지를 통하여 개인적인 이득을 챙긴 것입니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모든 것들을 통제하시고 관장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그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이 포로민 공동체 안에서 일원으로써 행사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배제시키고, 포로민들의 명부에서 그들의 이름을 삭제함으로써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포로민들을 그들의 출생의 땅으로 돌려보내실 때, 이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귀환계획 프로그램에 결코 참예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일은 가장 심한 형벌이었습니다. 이런 형벌은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마땅한 보응이었습니다.

 

 

허술한 벽들

 

에스겔이 자기의 적대자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두 번째 은유는 허접하고 허술한 벽이었습니다. 에스겔은 거짓 예언자들을 모가 많아 서로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돌들로 허술하게 담을 쌓는 석공들이라고 비유합니다. 그들이 메시지가 그렇게 허술하고 허접스럽다는 것입니다. 이 석공들은 역청(모타르)을 사용하여 단단하게 벽을 쌓은 것이 아니라 보통 진흙을 사용하여 벽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부실한 건축을 위장하느라 흰색으로 회칠까지 한 것입니다. 회칠한 벽은 사람 눈에 그럴듯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폭풍과 우박과 폭우를 견디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허접한 벽은 성전과 거룩한 도시와 제사제도에 대한 예언자들의 피상적인 신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에 대해 호의를 베푸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니 백성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포로민들에게 성전과 예루살렘과 제사제도에 대해 잘못된 신학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그런 곳에서 구원(샬롬)이 온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허상(illusion)을 심어준 것입니까! 그러나 에스겔에 따르면, 진정한 샬롬(구원)은 하나님의 심판의 폭풍을 견딜 때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대한 강력한 신앙의 벽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거짓 여성 예언자들이 에스겔의 책망의 대상이 됩니다(13:17-23). 남성 예언자들처럼, 그녀들도 허황된 환상에서 메시지들을 꾸며냈습니다. 개인적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메시지를 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의 거짓된 환상들은 새로운 종류의 그럴듯한 악이었습니다. 이 여성 상담자들은 마술적 농간을 이용하여 포로민들 가운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함정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녀들의 돈벌이 수단은 부적이나 머릿수건 혹은 손수건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마술적인 부적들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 부적들은 소매 끝 팔찌와 같은 것으로 점을 치러 오는 사람들의 팔에 묶어 병이나 죽음을 막아준다고 했습니다. 머릿수건이나 손수건 같은 것들은 점쟁이가 그것을 두르거나 그 밑에 손을 넣고 주문을 외우는 것인데, 점을 보러온 사람에게 신의 축복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점을 보거나 신을 불러내는 시늉을 하면서 빵을 으스러뜨리거나 보리를 날려 그것이 떨어지는 곳을 보고 미래를 예언을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손금을 보는 일이나, 점성용 천궁도를 보고 운세를 살피거나 사주팔자나 토정비결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녀들이나 무당이나 박수들 그리고 그들의 이상야릇한 주문들은 포로민들의 야웨 신앙을 흐릿하게 하였고, 그들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곳에서 안전과 희망을 찾도록 했습니다. 그런 가짜 여성 예언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던 경건한 사람들을 낙담하게 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악한 사람들을 부축이고 격려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마술적 행동들이 야웨 하나님을 불편하게 하는 공격적 행위들일까? 야웨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더럽힌 것입니다(19절). 이 말은 이 사이비 ‘백성들의 딸들’이 자신들에게 생사의 결정권이 있다고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마술 도구들과 미래를 예언하는 주문들에 비하면 야웨 하나님은 무력하고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신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문화의 색깔을 화려하게 덧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들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주술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진 것입니다.

 

그냥 보면, 이런 여성 예언자들의 마술이나 점술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별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 사회에도 얼마나 이런 주술적인 일들이 많이 있는지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종교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밥벌이로 종교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일반인들의 두려움과 궁금증을 이용하여 그들을 조작 통제하였고, 그에 따라 나오는 떡고물들을 챙긴 것입니다.

 

포로민들 가운데 있던 마녀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였습니다. 고대인들은 사림이 어떤 신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에게 특별한 권한이나 능력이 주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여성 예언자들 역시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낼 수 있게 되고, 또 그 능력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호도한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런 짓을 했던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그런 짓을 했던 짝퉁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렇든 저렇든 그들 모두는 개인적 물질적 이득에 눈이 멀어 그랬던 것입니다.

 

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혹시 크리스천들도 이와 비슷한 태도로 기도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언제 우리의 기도들이 이런 주술적 행위와 비슷할까 생각해본 일은 없습니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국 기도가 오로지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께 접근하려는 종교적 기술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가가 잘 표현했듯이, 기도는 기껏해야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구매물품목록’(shopping list)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결코 거룩한 창조주 성령으로 존중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일곱 번이나 나는 ‘내 백성’을 그런 강력한 거짓 선생들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백성을 이 예언자들의 손에서 건져내리라”(23절)

 

 

생각해 봅시다

 

1. 혹시 기독교 지도자들이 크리스천의 삶을 설명함에 있어서 어려운 현실과 실체들을 피하고 쉽게만 말해주는 경우가 있는지? 어떤 경우들이 있을까 말해보십시오.

 

2. 우리들의 문화 안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현대판 주술이나 마술 혹은 무당이나 박수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 빌립보서 1:15-18에 등장하는 바울의 대적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토의해 보십시오. 이들과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4. 예레미야 역시 거짓 예언자들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23:15-26을 보십시오. 천상의 하나님의 어전회의에 서있다는 언급이 두 번식이나 나옵니다(18절, 22절). 주님을 위해 대신 말하는 자들(설교자, 목회자, 전도자 등)에게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5. 종교적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테스트들을 사용해야 합니까? 즉 그들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를 구별하기 위해서 어떤 판단기준이나 자격요건이나 시험들이 있어야 합니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587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30
669 일상: “반짝 반짝 작은 별” file 류호준 2013.07.19 9013
668 설교: "하나님의 손에" 류호준 2009.11.22 9002
667 신앙교욱(49): "성경과 과학" 류호준 2010.04.24 8976
666 신앙교육(19): "교인의 의무들" 류호준 2009.06.21 8976
665 신학에세이: "하나님이 분노하실 때" [1] 류호준 2011.05.27 8966
» 에스겔서 강론(4): "거짓 예언자들" 류호준 2010.03.28 8954
663 피 묻은 채색 옷을 앞에 놓고 우는 아버지 야곱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6 8954
662 벧엘로 가는 야곱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4 8936
661 "정련의 불을 통과하면서"(이사야서 큐티 6) 류호준 2011.07.03 8899
660 에스겔서 강론(5): “열매 없는 포도나무” 류호준 2010.04.04 8894
659 신앙교육(11): “당신이 거듭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십니까?” 류호준 2009.03.23 8889
658 신앙교육(52): "성만찬 (I)" file 류호준 2010.06.05 8851
657 설교: “예수께서 우리 마을에 오실 때”(종려주일) 류호준 2010.03.28 8830
656 신앙교육(10): "성령은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을 하십니까?" 류호준 2009.03.15 8822
655 (10) 가인처럼 사는 삶과 셋의 후손처럼 사는 삶 (창 4:16-26) 류호준 2007.10.11 8755
654 (3) 안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창 2:1-3) [1] 류호준 2007.09.27 8730
653 신앙교육(25):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 류호준 2009.08.02 8685
652 로마서 묵상 (17): “하나님의 입양 자녀들” 류호준 2010.01.29 8683
651 신앙교육(6): "하나님은 왜 당신이 불순종하도록 허락하십니까?" [2] 류호준 2008.12.09 8681
650 타향살이 몇 해던가!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4 8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