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무엇이 당신의 유일한 위안입니까?”

 

신앙 고백은 언제나 일인칭으로 한다. “나는 믿습니다.”, 혹은 “우리는 믿습니다.” 라고. 물론 믿는 내용이 담겨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주님의 교회는 역사상 수많은 신앙고백 문서들을 생산했다. 그중 내 개인적으로 매일같이 늘 읊조리고 암송하는 신앙고백문장 하나가 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문답서의 제 1항이다. 문장 자체가 생사고락 전체를 포괄하듯 실존적이며, 양떼들을 부드럽게 돌보듯 목회적이며, 흙과 땀 내음을 담아내듯 소박하게 지상적이며, 그 고백하는 언어가 부드럽고 온화하며, 그 영성의 뿌리 또한 깊고 깊다.

 

내가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문서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 연유는 1981년 미국 캘빈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조직신학 수업시간 때였다. 선생님은 프래드 클루스터(Fred H. Klooster) 박사님(1922-2003)이였다. 당시 선생님은 60대에 진입한 노숙한 학자였고, 언제나 기도로 수업 시작하였다. 두꺼운 뿔테 안경너머로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진지하게 강의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돌아가신 선생님이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 더욱 보고프고 그리운 것은 웬 일일까? 당시 유럽의 학자들이 종종 그랬던 것처럼, 연구실 창문으로 힐끗 들여다본 선생님은 담배 파이프를 물고 두꺼운 책을 – 지금 와서 돌아보니 아마도 칼 바르트의 교의 신학이었던 것 같다 - 보고 있었다. 파이프 담배향이 얼마나 그윽했는지 학교복도 안에 은은하게 펴졌고, 내 눈에는 아주 멋져보였다.

 

평생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연구로 신학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선생님에게 조직신학서론(prolegomenon), 기독론과 구원론 그리고 종말론 등을 배웠다. 수업 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자주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제 1문항을 되 내이시곤 하셨다. 아마 그 때의 인상이 내게 깊게 새겨졌나 보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북미 기독 개혁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의 목사로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할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주일 저녁 예배에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을 본문삼아 가르치고 그것을 설교한 일이었다. 일명 교리문답 설교(Catechism Preaching)였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모든 개혁파 교회 목사들은 주일 저녁 예배에 의무적으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을 가지고 설교하도록 되어 있었다. 어쨌든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그 번역본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했다. 그리고 언제나 제 1항을 반복해서 외우도록 했다. 일인칭 고백으로 말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소중한 물품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두 개가 서예작품이다. 하나는 앞서 올린 “풍·도·기”(風·道·祈)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델베르크 제1항 서예작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 서예가 권사님이 계시는데, 목사가 저 신앙고백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아시고 써서 표고까지 해서 주신 선물이다. 누워서도 읽고, 서서도 읽고 방을 배회 하면서도 읽고, 쳐다보면서 읽는다. 고백하듯이 말이다. 그것도 일인칭 단수형 고백으로.

 

*****

추신: 며칠 전 7월 18일이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의 주 작성자인 우르시누스의 생일인데, 깜박 잊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우르시누스~~

 

(1)프래드 클루스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기원과 역사》, 미간행 1981년 판이다. 468쪽.

(2)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제 1항 족자는 한빛 한상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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