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해시태그(hash-tag)가 된 여인 라합”

 

누군가에게 별명을 짓는 일은 인간사회에서 흔한 일입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 대부분 한 두 개 정도의 별명을 가져보았을 것입니다. 별명을 붙이는 사람이야 재미로 하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별로 기분 좋지 않게 들리거나 거북스런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많은 경우 어딘가 그 사람의 결점이 될 만한 특징을 꼬집어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평판이 나쁜 유명 인사일 경우 듣기 거북한 별명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불행한 처지에 놓인 이전 대통령들을 우회적으로 조롱하는 별명으로 2MB이니 503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대의 성경기록자나 당대의 서기관들, 그리고 그 당대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지독하고 강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있습니다. 라합의 경우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의 초기에 등장하는 여리고 성의 그 여인 말입니다. 여호수아에서 그녀를 소개할 때 뭐라고 소개했지요? “여리고 성에 라합이란 여인이 살고 있었다.” 라고 소개하던가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대놓고 “창녀 라합”이라고 소개합니다. 물론 그녀의 직업이 창녀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창녀 라합”이란 합성어는 그 후로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여리고 성의 라합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창녀”라는 단어가 아닙니까? “창녀”와 “라합”은 바늘과 실처럼 언제나 같이 갑니다. 지금까지도 그렇지 않습니까? “창녀 라합.” 그녀의 이름이 “라합”이라면 그녀의 성은 “창녀”인 셈입니다. 이름은 갈아도 성은 바꾸지 못하지 않습니까? “창녀 라합.” “창녀”는 라합에게 껌 딱지입니다. 창녀는 그녀의 가슴에 있는 문신이며 스티그마(stigma)입니다. “창녀 라합”을 떠나서 라합이란 여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경안에서도 말입니다. 라합을 언급하는 신약성경은 두 곳입니다. 이 두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라합을 믿음의 여인이라 칭송하면서도 “창녀 라합”이라 부릅니다(11:31). 야고보서 저자는 라합의 행위에 대해 극찬을 하면서도 “창녀 라합”이라 부릅니다. 참 서글프고도 씁쓸한 대목입니다.

 

인터넷을 사용하여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SNS)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해시태그(hash-tag)가 뭔지 아실 것입니다. 해시태그는 #(샤프 기호)와 특정 단어(들)을 붙여 쓴 것으로, 해시태그는 소셜 미디어에서 특정 핵심어를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메타데이터의 한 형태입니다.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는 라합과 그녀의 소셜미디어의 계정에 “창녀”라는 단어를 해시태그 해 논 셈입니다. “라합 #창녀” 이렇게 말입니다.

 

종교적 순혈주의자, 신학적 전통주의자, 신앙적 엄숙주의자들이 종종 의식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라합에게 #창녀라고 해시태그를 붙입니다. 이게 과거의 일만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라합에게 창녀라는 해시태그를 붙이지 않은 곳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구원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의 예수의 족보에서입니다. 거기엔 “#창녀 라합”이 아닙니다. 그냥 “라합”입니다. 룻의 시어머니, 다윗의 고조할머니입니다! 아니 예수님의 조상 할머니이며, 여러분과 저의 조상 할머니입니다. 예수 안에서 종교, 인종, 성별, 신분, 학벌, 지방 등의 모든 인간적 경계선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라합과 그녀의 백성들은 그 후로 오늘까지 이스라엘 안에 살더라!”(수 6:25)

 

해시태그를 떼어버리고, 고유한 이름 라합을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Crystal Clear Water at Lake Superior(Crisp Point Light) MI. Credit Tom Sovereign

Crisp Point Light. UP Credit Tom Sovereign.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2895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530
689 일상에세이: “무엇이 당신의 유일한 위안입니까?” [1] file 류호준 2018.07.24 400
688 신앙에세이: “웃음은 신비로운 약입니다. 좋을 때든 끔직할 때든” [1] file 류호준 2018.07.21 2257
» 신앙 에세이: “해시태그(hash-tag)가 된 여인 라합” [1] file 류호준 2018.07.16 334
686 일상 에세이: “경찰관과 소방관” file 류호준 2018.07.15 253
685 일상 에세이: “나이듬과 유머" file 류호준 2018.07.14 398
684 클린조크: "성경적 여성주의"(Biblical Feminism) [2] file 류호준 2018.07.11 478
683 일상 에세이: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file 류호준 2018.07.09 457
682 신앙 에세이: “릴리아 모리스와 찬송가” file 류호준 2018.07.09 1069
681 일상 에세이: “사진 찍어 주실 수 있겠어요?” [1] file 류호준 2018.06.20 412
680 신앙 에세이: “찾아갈 만 한 곳 한 군데쯤은~” file 류호준 2018.06.11 453
679 신앙 에세이: "현자(賢者)와 중용(中庸)의 덕" [2] file 류호준 2018.05.25 467
678 일상 에세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지!” [6] file 류호준 2018.05.19 760
677 일상 에세이: "연필로 쓰는 이야기" [3] file 류호준 2018.05.12 707
676 신앙 에세이: “제자도의 비용” [2] file 류호준 2018.05.09 455
675 신앙 에세이: “당신은 어느 신을 섬기고 계십니까?” file 류호준 2018.05.03 607
674 일상 에세이: "패러디 유감" [2] file 류호준 2018.05.01 458
673 신앙 에세이: “몸으로 쓰는 율법” [1] file 류호준 2018.04.30 416
672 일상 에세이: "김훈과 육필원고" [3] file 류호준 2018.04.28 488
671 목회 에세이: “베뢰아 사람들만 같았으면” [1] file 류호준 2018.04.26 648
670 신앙 에세이: “썩어빠진 관료사회와 한심한 대중들” [1] file 류호준 2018.04.18 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