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에스겔서 강론(3): "영적 간음"

2010.03.21 20:37

류호준 조회 수:9050

[3]

“영적 간음”

에스겔 8장

 

류호준 목사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2 내가 보니 불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4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본 모습과 같더라. 5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6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11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명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에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12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13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15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성전 안에 있는 아세라 상

 

에스겔은 약 14개월 동안 이상하고 드라마틱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런 상징 행동을 통해 그는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된 유대인 포로민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를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정신이상자가 아닌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에스겔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592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장로들이 집으로 에스겔을 찾아 왔습니다.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말씀을 받은 것이 있나 궁금해서였습니다. 바로 그 때, 에스겔은 아주 비범하고도 강력한 환상을 받게 됩니다. 이 환상의 내용은 겔 8-11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장로들은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환상은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장로들이 예언자 에스겔 앞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에스겔은 다시금 ‘야웨의 손’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이끌어 어디론지 데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야웨의 손에 이끌린 경험을 한지가 벌써 일 년 이상 되었습니다. 병거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손이 에스겔의 머리 한 모숨을 잡아채었습니다. 마치 반항적인 아들 녀석을 책망하고 꾸짖듯이 그렇게 에스겔을 잡아 챈 것입니다. 에스겔은 자기를 들어올린 ‘영’에 대해 부드러운 은유를 사용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상에서 에스겔은 자신이 예루살렘 안에 있는 중요한 장소로 옮겨진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예루살렘 성의 북문이 잘 보이는 성전 바깥뜰에 서있게 된 것입니다. 북문은 왕궁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성전 바깥뜰은 왕이 성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장소로서,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들이 이곳을 통과하여 제단으로 갔습니다. 바로 그곳에 사람들이 ‘질투의 우상’(8:3)을 갖다 놓은 것입니다. 이 ‘질투의 우상’은 아마 아세라 신을 섬기기 위해 건축된 사당(祠堂)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아세라 신은 가나안 인들이 섬기는 신으로 ‘사랑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해 전 므낫세 왕은 바로 이 자리에 이방 제단을 세운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21:7). 요시아의 종교개혁기간에 이 사당이 철거되기는 했지만, 오늘 본문에 따르면, 아마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 이스라엘의 마지막 날들에 이 제단이 재건된 것 같습니다.

 

아세라 우상은 자연과 농작물의 풍요와 인간 생식을 통한 번성을 상징하는 우상이었습니다. 이 우상은 야웨 하나님과 라이벌이었으며, 야웨의 질투를 자극하였습니다. ‘질투’라고 번역된 단어는 “한 개인의 재산을 획득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세상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계실 뿐 아니라 누구도 이 소유권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또한 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경배와 찬양을 독점적으로 받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런 찬양과 경배의 중앙에는 성전이 있었는데, 바로 이 성전 안에서 사람들이 이방신을 경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혐오스럽고 가증스런 예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집(성전)을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버젓하게 예배하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이 그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출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떠난 집이 하나님의 집일 수 있겠는지 의문입니다.

 

이 첫 번째 장면이 우리에게 말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자기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다른 지상적인 것들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 하나님은 너무도 비참했고 깊은 비애를 느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배신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은 슬펐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믿었던 자신의 자녀에게 배신을 당한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일 것입니다. 고대의 성전은 한 분 하나님 야웨만을 위한 예배의 장소이었듯이, 우리의 몸들, 즉 성령이 거하시는 이동식 성전들 안에서 우리는 오직 그분에게만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몸으로 드리는 예배(Body Worship)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신들과 함께 공유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는 불타는 질투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결한 낙서들

 

그 다음, 에스겔은 성전의 안쪽 마당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성소를 둘러싸고 있던 두꺼운 벽에 엄청나게 큰 문이 있었습니다. 돌로 된 벽에 깨어진 틈이 있었는데 야웨께서 에스겔에게 그 틈을 좀 더 부셔서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벽을 뚫어 길을 내면 벽 뒤에 있는 비밀스런 방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마침내 비밀의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놀라 자빠집니다. 기가 막힌 일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비밀의 방의 벽면들은 해괴망측하고 이상한 낙서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짐승들을 그린 벽화들이었습니다. 뱀들, 풍뎅이들, 각종 벌레들, 곤충들, 고양이들, 악어들과 새들 모양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음식 규례들에 따르면 이런 것들은 모두 부정하고 불결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을 더욱 경악스럽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 70명이 이 벽화들 앞에 서서 그 짐승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들 중 한명을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가 그 가운데에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반이 누굽니까? 요시아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 당시에 가장 신실한 지도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의 아들이 이런 혐오스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벽에 그려진 우상들은 다 애굽에서 기원한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 안의 어둠침침한 방에서 애굽의 신들을 비밀스럽게 예배하고 있는 의식은 예루살렘의 정치적 지도력이 바벨론의 침공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남쪽 이웃인 애굽에게 군사적 지원과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정치적 집단이 고안해낸 정책들은 그들의 종교적 헌신들과 성향들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제대로 된 순서라면, 종교적 헌신들이 정치적 정책들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정책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정책이 신앙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은 포로민 공동체를 다스리고 이끌어가는 장로(원로)들에게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 경고가 아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은 계속해서 에스겔에게 이것저것 보여주십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성의 북문을 향해 갔습니다. 보아하니 여러 명의 여인들이 더럽고 추잡한 예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애굽의 신인 ‘두무지’(Dumuzi)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애굽의 신 ‘두무지’를 ‘담무스’(Tammuz)라고 불렀는데, 담무스는 지금 7월을 가리키는 바빌로니아 단어입니다. 바벨론의 ‘탐무즈’ 신은 가나안의 ‘바알’ 신과 비슷합니다. 둘 다 풍요와 생식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중동 지방에는 일 년을 보통 건기와 우기로 나누는데, 한 여름인 7월은 건기입니다. 채소와 식물들이 죽어가는 계절입니다. 땅은 메마르고 초원은 노랗게 변해갑니다. 그 땅의 사람들은 이것을 ‘두무지’의 죽음, 혹은 ‘담무스’의 죽음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우기인 봄에 이 풍요와 생식의 신은 다시 생기를 얻어 살아납니다. 꽃이 피고 초원이 푸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 이스라엘인들이 이런 이교적 신앙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윤회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이교신앙에 함몰된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붕괴와 몰락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비참한 현상이 어디 있을까요? 이 여인들은 이방 신의 죽음을 애곡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야웨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자연의 순환을 통제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시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녀들의 헛된 눈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이는지!

 

마지막 장면에서 에스겔은 지성소 바로 바깥쪽에 있는 안뜰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스물다섯명의 남자들이 동쪽을 향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경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그들은 거룩한 성소가 있는 서쪽을 향해 야웨께 기도했던 제사장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동쪽을 향해 태양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잘 훈련된 제사장들이 이런 일을 하다니요! 이 광경은 종교적 지도자들마저도 야웨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지조를 버리고 아침의 태양으로부터 빛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올바로 섬기는 일에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들의 혼합주의적 우상숭배는 사회 전역에 걸쳐 편만하였습니다. 아세라는 대중적인 예배의 초점이었습니다. 모두 아세라 섬기기에 올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들 역시 그들의 새로운 동맹국인 애굽의 신들에게로 향했습니다. 여인들은 또 다른 ‘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도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들 가운데 하나인 태양숭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예배가 부패하고 잘못되면 부도덕과 불결한 삶이 뒤따르게 됩니다. 땅은 폭력으로 가득하게 되었으며 백성들은 그들의 창조주 하나님을 모욕하였습니다(8:17). 에스겔의 집에 있었던 장로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얼마 있으면 곧 고국으로 귀환하리라는 생각은 이제 꿈도 꾸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몰아냅니까? 그런 방식들이나 길들에 대해 말해보십시오.

 

2. 우리는 흔히 ‘질투’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시 ‘올바른 질투’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는지요? 있다면 어느 때인지 설명해 보십시오.

 

3. 어떤 경우들이 우리의 정치적 충성도가 우리의 신앙적 헌신들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 예들을 들어보십시오.

 

4. 고대에는 풍요와 번성을 추구하는 제의(祭儀, cult)들이 있었습니다. 바알 제의나 담무스 제의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예배행태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예를 들어보십시오.

 

5. 본문 연구를 통해서 볼 때, 사주팔자를 보며 운세를 점치거나 점성천궁도(horoscope, 占星 天宮圖)를 보는 일들이 왜 잘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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