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로마서 묵상(20): “강력한 확신”

2010.02.01 19:05

류호준 조회 수:9204

 [20]

“강력한 확신”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개역개정 로마서 8:31-39)



[요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 누가 정죄하리요?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롬 8:31,33-35)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 Who will bring any charge against those whom God has chosen? … Who is he that condemns? …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Romans 8:31,33-35)

 

 


로마서 8장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관한 장입니다. 그래서 확신에 찬 아름다운 노래로 끝을 맺습니다. “나는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무엇도 -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천사적인 것이든 악마적인 것이든, 현재 것이든 장래 것이든, 높은 것이든 낮은 것이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든 - 절대적으로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나는 확신 합니다. …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믿음은 적대적 세력들이 사방에 잠복해 있는 현실에 대해 눈을 감게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돈키호테적 믿음일 수는 있어도 성경적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직시합니다. 우리의 영적 주변 환경은 믿음의 장애물들로 가득합니다. 사방이 지뢰밭입니다. 전방과 후방의 구별이 없습니다. 무수한 세력들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어 내려고 달려듭니다. 물론 우리에게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혹시 이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걱정입니다.


심리학에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로부터 격리되거나 떨어질까 봐 불안해 보이는 상태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반응이며, 본능적이고 생존에 필수적인 불안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이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가 되면 이를 병적인 상태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분리불안이 극심하여 정상적인 활동이 장애를 받는 경우를 분리불안, 혹은 격리불안장애라고 합니다. 신앙의 경우도 이와 비슷합니다. 본문은 신앙적 분리불안 상태를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있는 뿌리 깊은 확신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진공에서, 그린하우스에서, 무공해 실험실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척박한 현실과 비우호적 환경에 수많은 도전장을 내밉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고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한단 말인가?”하고 외칩니다. 복음은 분명한 어조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는데 어찌 두려워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풍랑에 대한 것이 아니라 풍랑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것입니다. 풍랑 이는 바다에서 죽을 지경에 빠진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는가? 믿음이 없는 자들아!”라고 하신 말씀 안에는, 믿음은 두려움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지 풍랑 자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가르침이 들어있습니다. 두려움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두려운 것입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고발하고 고소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묻습니다. “없다!”는 확신을 전제로 한 수사학적 질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고소인들에게 도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소인은 마귀입니다. 그러나 때론 우리 마음이 우리자신을 향하여 강력한 고발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고소인들에게 강하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믿음 안에 있을 때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신 일(칭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무서운 적대자들의 강력한 공격을 파쇄 하는 것입니다. 내 속의 생각들, 내 속의 죄책감들, 그리고 마귀가 줄줄이 서서 우리를 비방하고 손가락질하고 주먹을 흔들어대고 공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얼굴에 대고 “의롭다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야!” “너희들이 뭔데 까불어!”라고 소리 지릅니다. 심지어 내 양심이 나를 향해 고소하고 고발하더라도, 심지어 마귀가 빈정대며 웃을지라도, 나는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야! 누가 나를 정죄할 수 있단 말이야! 저리 꺼져!”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단 말인가?” 오버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과신(過信)이나 맹신(盲信)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성상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두려워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가야할 길의 높음과 깊음이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목숨을 빨아들일지도 모르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두려워합니다. 본성으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자, 그런 것들을 한번 나열해보십시오. 이 모든 세력들과 권세들 말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그들을 과소평가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세력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확신합니다. 돈의 힘(金力), 성(sex)의 힘, 마귀의 힘(魔力) 보다 더 강력한 유일한 ‘힘’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끈에서 끊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뿌리 깊은 확신이요 강력한 고백입니다.

 


찬송가(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의 첫 절과 후렴입니다. 한번 원문으로 불러보면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예수가 나의 구주, 이것은 복된 확신입니다)

Oh, what a foretaste of glory divine! 

        (오, 천상의 영광을 맛보다니 얼마나 기쁜지요!)

Heir of salvation, purchase of God,  

        (나는 구원의 상속자요, 하나님께서 사신 몸이니)

Burn of His Spirit, wash'd in Hid blood.     

        (성령으로 불 태워져 그분의 피로 씻음 받았네)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네)

Praising my Saviour all the day long; 

        (온 종일 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네)

Praising my Saviour all the day long; 

        (온 종일 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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