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17)

2009.11.04 20:30

류호준 조회 수:9366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17)




[11:1~17]

1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구약성경에서 레바논과 바산 지역의 백향목, 상수리나무, 잣나무는 하늘로 치솟은 우람하고 멋진 나무들로, 종종 뽐내는 힘과 권력, 교만과 자만을 표상하는 용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교만이란, 하늘 끝까지 닿아 신성의 영역에 까지 올라가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자신의 손 안에 두고 살겠다는 것, 이런 것이 교만입니다. 바벨문화가 그러했고, 느부갓네살 왕이 그러했고, 역사상 위대한 제국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분이 그들을 보고 비웃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무엇으로 은근히 교만하십니까? 학벌, 재물, 건강, 미모, 자녀, 업적, 외모, 명성, 가문?(1-3절)

스가랴 선지자에게는 매우 힘들고 이상한 사명이 주어집니다. 얼마 있지 않아 도축장에 끌려가 죽게 될 양 떼를 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이런 명령은 유다 민족의 장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명령입니다. 멀지 않아 도살 될 운명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명령입니다. 잠정적으로 맡아 양을 치게 된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처지였습니다. 이전에 유다를 사들여 마음대로 다루었던 전 소유자(강대국)에게도 아무런 책임이 없고, 후에 유다를 넘겨받아 마음껏 착취하고 이익을 보았던 나중 소유자(강대국) 역시 무책임하게 “우리는 재미 봤어!”하고 노래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목자들인 유다의 종교적 지도자들 역시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가랴는 잠시 목자의 임무를 위임받게 된 것입니다. 양 들만 불쌍한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혹시 지금도 그런 것은 아닌지요?

스가랴 선지자의 마음은 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고 앉아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네. 그런데 양들을 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야!”(7절). 그래도 그는 양떼가 불쌍해서 잘 돌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막대기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은총’이라고 불렀고, 다른 막대기는 ‘연합’이라고 불렀습니다. 은혜와 연민과 긍휼로 양들을 다스리고 먹이겠다는 뜻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고 나눠지지 말라는 뜻에서 ‘연합’의 막대기라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양떼를 효율적으로 돌보기 위해 목동을 세 명이나 채용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일당을 챙기는 일에만 신경을 썼고, 양들이 무엇을 먹든, 어디로 가든, 사나운 짐승들이 오던, 별로 상관하지 않았고 그저 무사안일주의로 자기 몸만 사리는데 골몰하였습니다. 게으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결석하기를 식은 죽 먹듯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인간을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좋은 말로 권면도 하고 때론 야단도 쳤지만 감정만 상할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서로가 불편하게 되어 세 목동을 해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양떼들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목자의 말을 들어 먹는 양들이 없었습니다. 다 곁길로 가고 성품도 삐딱하였습니다. 양들끼리 치고 박고하기 일쑤였으며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쏟은 정성과 열정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목자 스가랴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될 대로 되라! 너희 마음대로 해라. 어떻게 되나 보자. 죽든 말든 이젠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은총’ 막대기를 부러뜨렸습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대해 이렇게 고집적으로 나가면 하나님도 우리를 내버려 두실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는 종종 우리를 심판하시는 시간들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 마음대로 되어 갈 때, 한번 즈음 멈춰 서서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내 옆에 계시는지 혹시 하나님께서 입을 다무시고 침묵하시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그때가 돌이키기에 너무 늦은 시간일지 모릅니다(10-11절).

목자는 양떼들에게 그동안 수고한 품삯을 지불하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받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정 그렇게 내 속을 썩이고 고집스럽게 반항한다면 관계를 끝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목자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표시로 품삯을 주었습니다. 목자는 그 품삯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끝내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쨌거나 품삯을 받아든 목자는 자기 개인 통장이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의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 헌금 바구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막대기인 ‘연합’ 막대기를 부러뜨려 버렸습니다. “아,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구나. 심지어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는 자들이구나!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핏줄, 한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연합할 줄도 모르는구나.”

그들이 치러야하는 죄의 값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또 다시 어리석고 악한 목자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않는 목자,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는 목자,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는 목자, 강건한 자를 먹이는 대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는 목자”입니다. 그런 목자 역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참 목자의 돌봄을 거절한 완악한 양떼들 역시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목자와 양은 물고 물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모두가 치르게 될 값비싼 죄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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