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학 에세이: "금식에 관하여"

2009.01.30 03:41

류호준 조회 수:9693 추천:1

 “금식에 관하여”


류호준 목사 (백석대학교)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이 돌아왔습니다.1) 사순절 기간에 금식(禁食, fasting)에 관해 묵상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를 채찍질함으로써 하늘의 신용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금식하는 일이 아직도 대중적이거나 인기 있는 경건한 행위입니다. 물론 기독교 전통을 뒤돌아보면 육체적 고통이나 압박이 영적인 유익을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오랜 역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지 않고 될 수 있으면 많은 자녀를 낳는 여인들에게, 그들을 위해 하늘에 쌓는 보상과 상급들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물론 비극적인 잘못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종교적 순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지를 순례하면서 피가 맺히고 통증을 느끼도록 무릎으로 계단을 기어 올라가는 종교적 순례 행위 역시 하나님께 눈도장을 받는 일이며 장차 천국에서 좋은 곳을 얻기 위한 신용 점수를 쌓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미신적인 예들을 들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한 현대적 버전 역시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거나 예수님과 함께 고통에 참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교리)으로서 이상에서 말한 예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중에 하나가 금식하는 일입니다.

구약에는 금식에 관한 말씀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종교적 열정에 기인하는 과시적 금식에 채찍을 가하는 문맥 가운데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마 금식에 관한 구약의 대표적 구절이 있다면 이사야 58:4-7입니다. “내가 바라는 금식은 너희가 부당하게 가두어 놓은 사람을 풀어 주고, 그들의 사슬을 끊어 주며, 억눌림 당하는 사람들을 풀어 주고, 그들이 하는 고된 일을 쉽게 해 주는 것이다.” 정의로운 삶을 멀리하면서 외형적 종교행위를 과시하려는 잘못된 신앙관에 대한 일침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가식적 금식행위에 대해 일찌감치 꾸짖으신 일이 있었습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의 상(賞)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16)


우리는 예수님이 금식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식은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 따라 하라는 뜻으로 하셨을까? 우리에게 금식의 본(本)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셨을까? 아니면 당신 자신도 절실하게 금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셨을까?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시간을 가지셨다는 것은 그분에게 실로 중대한 문제가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하신 것은 앞으로 전개될 사역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는 서곡(序曲)과 같습니다. 시련과 고난이 그분의 신앙적 순결성을 테스트하고 시험하였습니다. 사십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못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인간적 취약성 때문에 그분은 사탄의 심각한 유혹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통스런 시간을 통해 예수님은 자기 앞에 놓인 길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는지를 시험받았던 것입니다. 그 기간을 통해 그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도덕적 일관성과 순결성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금식은 육체적 힘과 강건함이 주는 모든 유익들과 혜택들을 탈취해 갔습니다. 따라서 그는 그가 그동안 비축해 놓은 영적 자원들의 우물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힘마저 길어내야 했습니다. 그는 값싸게 자신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자신의 생명과 목숨을 보존하려는 유혹의 기회를 모든 힘을 다해 저항했습니다.


이러한 금식이야말로 옳은 금식이고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금식이며 필요한 금식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우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안락함과 즐거움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우리는 옳은 대답들로 가는 길들을 좀 더 순수하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금식의 일차적 목적이며 이유입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내려진 결정들은 후대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획기적이고 확고한 결정들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행위들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간절한 의도를 반영할 것입니다.


대세(大勢)에 따라 살겠다는 개념 없는 이 세대 속에서, 사려있고 주의 깊게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뒤죽박죽되고 어지럽혀진 정신세계를 말끔히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금식하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깊이 고려해야 할 경건 훈련입니다. 더욱이 모든 것이 풍족한 이 세상에서 개인의 신앙적 문제를 놓고 금식을 작정하고 은밀하게 기도하는 일을 교회는 적극적으로 권장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알기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식이란 주제를 적실성 있게 변주(變奏)하자면, 여러 날 동안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일, 운전하는 대신 상당한 거리를 걸으면서 하나님과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해 묵상하는 일, 스포츠 경기 관람을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일,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당분간 멀리하는 일,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는 일도 금식하는 일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강요하여 약속한 일(금식)을 견디어냄으로써 우리는 종종 진실과 진리, 실체와 현실을 좀 더 잘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즉 분명한 시력과 시야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게 될 것이며, 올바른 선택들과 헌신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각 개인의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강압적으로 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2)


2009년 1월 30일 오후, Grand Rapids, MI 에서

(이글은 월간 묵상집인 [날마다 주님과](SFC)의 2009년 3-4월호에 실렸다)


1) 2009년은 2월 25일의 성회(聖灰) 수요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고난 주간(4월 6-11일)에 마친다. 4월 12일이 부활주일이다.

2) 다음의 두 책을 추천한다. John Piper, A Hunger for God (Crossway, 1997) = 존 파이퍼,『금식기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영혼의 굶주림』김태곤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0)을 추천한다.  파이퍼는 금식이 단순히 음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굶주림을 더욱 강렬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아나벱티스트 신학자이며 신약학자인 Scot McKnight, Fasting, The Ancient Practices Series (Nashville: Thomas Nelson, 200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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