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나도 가끔은 바보구나!”

 

 

내가 그리 똑똑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멍청하지는 않다. 그저 범부(凡夫)의 삶을 살아왔다. 그래도 내 면전에서 나더러 “교수님은 머리가 뛰어나신 분 같아요.”라고 아양 섞인 말로 기분 좋게 말하는 제자들이 더러 있다. “그치, 내가 머리가 나쁘진 않지!” 라고 응수하며 웃어넘긴다.

 

[1] 그런데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바보처럼 멍청했을 때가 있었다. 30여 년 전이니 꽤 오래된 사건이다. 우리 집에선 아주 유명한 일화이다. 당시 나는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 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거주하던 목사관은 꽤나 넓었다. 1200평 정도의 대지에 사과와 체리나무 밭이 있었고, 간혹 토끼들이 서성거리기도 했다. 목사관 뒤로는 넓은 잔디 정원이 있었는데 나의 어린 자녀 네 명의 놀이터였다. 잔디 정원 한 가운데는 오래된 흰색 자작나무가 있었는데 가지 하나가 축 늘어져 아이들 놀이에 장애가 되곤 하였다.

 

날짜를 잡아 나는 그 굵은 가지를 쳐내기로 했다. 의자를 놓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낑낑거리며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나무타기 실력을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자작나무 쌍갈래 가지 틈에 자리를 잡았다. 숨을 고른 후 작업을 시작했다. 왼손을 내 밀어 자르기로 한 그 가지를 꽉 잡았다. 나무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오른 손으로는 톱으로 그 가지를 자르기 시작했다. 왼손으로는 가지를 잡고, 오른 손으로는 그 가지를 자르고 말이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이르렀다. 약삭빠른 나는 가지가 얼추 잘라졌다 생각할 때 왼손을 재빨리 거둬들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게 말같이 쉽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제기랄! 아뿔사! 왼손으로 잡고 있던 잘라진 가지에 몸의 무게가 실리면서 “아악!”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지축을 흔드는 쿵 소리와 함께 온몸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어머니와 아내가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 아닌가? 나무 위에서 잡고 있던 가지를 톱질하다가 가지와 함께 추락한 얼간이 모습에 안 웃을 수가 없었겠지! 역시 나는 바보구나! 재주 많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2]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멍청한 일을 최근에 또 저질렀다. 얼마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수들 모임이 있었다. 허물없이 지내는 후배 교수(이*제)가 다가오더니 “교수님, 얼굴이 편해 보이시네요.”라고 말한다. “응, 속이 편하니까!”라고 응수 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왈, “근데, 교수님 배가 약간 나온 것 같아요!”하며 내 배를 슬쩍 만진다. “아냐? 티셔츠가 앞으로 좀 나와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하며 변명을 했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겠나.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배를 쓰다듬었다. “내 나이에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인데 말이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배가 (약간?) 나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어나 화장실 선반에 있는 약을 집어 들었다. 지인이 일본에서 가져다준 아주 효능이 좋다는 변비약이었다. 첫날은 3알, 그 다음 날은 4알을 입에 집어넣었다. 내일 아침 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다 쏟아내면 내 뱃살은 반드시 줄어들 것이라는 굳건한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이틀 후에 그 뱃살을 잡아 봤다. 줄긴 뭐가 줄어! 뱃살 잡으려고 변비약을 먹은 멍청한 박사님! 역시 나는 바보구나. ㅠㅠㅠ

 

누구든지 양면성을 가지고 있겠구나. 똑똑한 줄 알았으나 멍청하고, 때론 멍청해 보이긴 하지만 똑똑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계속해서 바보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그 생각을 쓰담쓰담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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