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5 22:37
“함께 살지 않아서…”
엊그제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였다. 초로의 할머니와 네다섯 살쯤 먹은 어린 여자 아이가 탔다. 이른 아침이었다. 가방을 둘러맨 어린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할머니를 둘러보면서 “손녀딸인가 보지요?”라고 물었다. “네”하며 대답을 하신다. 다시 물었다. “친손녀에요 외손녀에요?” “친손녀입니다.”라고 할머니가 정중하게 대답 하신다. 나는 승강기 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누그러 뜨려보려고 다시 손녀딸에게 “학교 가니?”라고 물었다. “네, 유치원에 가요”하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다시 물었다. “할머니가 유치원에 데려다 주니 좋겠구나. 할머니 좋지?” “할머니 좋지?”라는 마지막 질문에 어린 아이는 정색을 하며 “아니요!”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듣는 순간 어쩔 줄 몰랐다. 할머니의 당황하신 모습이 역력했고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이른 아침을 부드러운 아침으로 만들고 싶은 내 노력은 어린 아이의 당찬 대답에 거품처럼 힘없이 밀렸다.
잠시 후 할머니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입을 떼셨다. “친손녀라도 함께 살지 않아서…”라고 말끝을 흐리신다. 아마 아들네 집에 와서 이른 아침에 며느리를 대신해서 손녀딸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시나 보다. 하루 종일 그 할머니의 어색하고 구차스런 변명이 귀에 맴돌았다. “함께 살지 않아서…”
맞아, 함께 살아야 정이 들겠지. 미운정 고운정 말이다. 족보로 할머니를 알고 족보상으로 조모손녀 관계를 맺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정으로 누군가를 알기 위해선 함께 살아봐야 할 것 같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 진짜 그분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분과 함께 살아봐야 그분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지. 사람은 사귐과 교제를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는 법. 모든 인간관계는 함께 지내면서 돈독해지는 것 같다. 물론 함께 지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누구든지 내 말에 거(居)하는 사람이 진짜 내 제자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의 말씀 가운데 주거(住居)를 정하고 그분과 함께 살아봐야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 분일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 좋지?” “네, 함께 살아보니 정말 좋아요”라고 고백할 수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그는 진짜 하나님의 손자손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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