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7 22:49
“코로나바이러스와 제사장”
구약에서 제사장 노릇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1) 계시를 수납하는 일 – 이 일에 실패한 대표적 인물이 엘리입니다! (2) 제사를 집행하는 일 (3) 율법을 대중에게 가르치는 일 (4) 공중 보건의 역할을 담당하는 일.
그니까 일반적으로 제사장들이 하는 일은 예언자(선지자)들이 하는 일보다 업무량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때론 일에 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광도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명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대중적 인기는 선지자들이 훨씬 더 많이 얻었으니 가끔은 속이 터졌을 것입니다.
요즈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위에 언급한 제사장의 임무들 가운데 돋보이는 것이 네 번째 임무입니다. 즉 “공중 보건의”(公衆保健醫) 노릇입니다. 예를 들어 전염성이 강한 피부병이 퍼질 염려가 클 때 제사장은 공동체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피부병 환자를 색출(?)하여 그를 따로 격리시켜야 했습니다. 이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권고 사항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요즘 말로 “행정명령”입니다. 심지어 피부전염병이 집에 옮겨 붙었다고 판단하면 그 집은 “폐쇄”(봉쇄)합니다(레 14:38,46). 왜 그럴까요? 공동체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사용되는 “격리 수용”이니 “사회적 거리두기” “폐쇄”와 같은 용어들이 다 레위기에 들어있군요. 물론 환자를 마을에서 격리시키는 기간은 정도에 따라 따릅니다. 어쨌든 레위기 13장과 14장은 이런 예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본문입니다(레 13:4, 5, 11, 21, 26, 31, 33; 14:38, 46).
악성 피부병 환자를 다루고 있는 레 13장의 경우, 영어성경(NIV)과 한글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등은 “격리시키다”(isolation)라고 번역하는 반면 한글개역개정은 좀 무시무시하게 “가두다”로 번역합니다. 물론 집이나 건물에 악성 피부병이 옮겨 붙었다고 생각되는 집을 다루고 있는 레 14장은 “잠가두다” “폐쇄하다”(참고, NIV. close up; KJV. shut up; NASB. quarantine)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예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용어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입니다. 영어로는 social distancing이라 합니다. 한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자를 격리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건강상 격리”를 영어로는 quarantine(쿼런틴)이라 합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용어가 이미 아주 오래전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그러므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우리 모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해야 합니다. 거리두기라는 용어를 명심해 보십시오. “차간 거리”는 적당히, “사람간 거리”도 적당히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거리두기도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는 경외(敬畏)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Fear, 독일어로는 Ehrfurcht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여 함부로 대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자기 친구나 되는 것처럼 맞먹으면서 “하나님, 까불지 말라”고 하는 정말 되먹지 않는 인간들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내는 종교행상인들까지 무지 많습니다. 한편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멀리 갔다가 어느 날 이런 노래를 부를지도 모릅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그러므로 하나님과 거리두기는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너무 가까이도 말고 너무 멀리도 말고. 이게 힘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추신: 임마누엘 칸트를 아시나요? 그는 평생 자기 동네를 떠나지 않고 살았다죠? 주변 60킬로 반경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하지요. 일종의 “자가 격리 생활”을 한 셈입니다. 영어로 그런 삶을 quarantine life 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