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설교: “예수: 사람의 아들(人子)”

2010.09.05 22:04

류호준 조회 수:11549

“예수: 사람의 아들(人子)”

요한 3:1-15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본문의 마지막 단락이자 핵심절인 13절과 14절과 15절을 되놰봅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人子, The Son of Man)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人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자신을 가리켜 ‘인자’(人子)라고 부르십니다. 두 번씩이나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인자’로 알지 않으면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인자’로 보지 못하면서도 예수가 누구인지 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의 서두를 다시금 귀담아 들어보십시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가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기적들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인줄 알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고 있던 당대의 여러 훌륭한 랍비들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니고데모의 생각이 한참 잘못되었음을 아시고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예수께서 자기가 인자(人子)라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따라서 본 단락의 핵심은 “예수님은 인자(人子)”라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설교를 마칠 때 즈음에 예수님이 인자라는 사실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주님, 당신은 인자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인자’(人子)의 배경

 

인자(人子)라? 도대체 인자가 무엇입니까? 이 명칭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명칭의 의미를 알려면, 또 왜 예수께서 자기를 가리켜 ‘인자’라고 하셨는지를 알려면, 여러분은 다니엘 7장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인자’는 전문적인 신학용어입니다. 물론 한자어로 ‘인자’(人子)는 문자적으로 ‘사람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을 뜻합니다. 마치 개의 새끼는 강아지이고 소의 새끼가 송아지이듯이 ‘사람의 아들’ 혹은 ‘사람의 자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구는 종(種)에 관한 것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식물이나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서 7장 전반부에서 다니엘은 환상을 봅니다. 바다에서 큰 짐승 네 마리가 올라오는 환상이었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짐승은 열 뿔이 있는 무시무시한 짐승이었습니다. 장차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무서운 세력을 가리킵니다. 이와 동시에 다니엘은 또 다른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번에는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서 일어나는 환상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환상 중에 왕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보았는데 그분의 이름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the Ancient of Days) 이었습니다.

     · 그의 의복은 눈처럼 희었습니다.

     ·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과 같았고

     · 그의 보좌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었습니다.

     · 그의 움직이는 보좌의 바퀴는 강렬한 불줄기의 흐름과 같았습니다.

     · 천천만만의 천군천사들이 그분을 모셔서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보좌에 좌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 하늘의 궁정에 회의가 열리고 있는 중이었으며, 세상 나라들과 권력을 심판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권세와 권력을 빼앗기게 됩니다(12절). 이런 일이 일어나자 곧 바로 초점이 바뀝니다. 지평선 너머로 하늘 구름을 타고 “인자 같은 이”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들이 주어지고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엎드려 그를 섬기게 됩니다.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나라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환상이었습니다. 짐승의 나라로 대표되는 지상의 왕국들과 권세들이 있다면 그와 대조적으로 인자로 대표되는 천상의 나라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인간의 왕국(人國)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왕국(神國)이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인자’(人子)의 뜻

 

다니엘서 7장을 통해 여러분은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하시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는 이 세상 나라 곧 짐승의 나라가 아닌 하늘나라에 속한 분이십니다. 자신을 ‘인자’라고 부름으로써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세와 모든 권위를 위임 받은 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여러분은 그가 시저보다 더 높다는 소리라고 이해하던지 아니면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지 아무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이 명칭, 즉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실 때마다,

     · “이 세상이 누구도 어느 것도 나보다 더 높고 강한 자는 없다!”

     · “나는 만유(萬有)보다 높고 만유 위에 있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왕중왕王中王)이다!“

     · “세상에 아무도 그 무엇도 나를 통제하거나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실 때마다,

     ․ 그분은 이 적대적인 세상을 향해 이 세상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 자신의 왕적

      통치의 우산 아래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계신 것입니다.

     ․ 하늘과 하늘 아래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그분의 통제 아래 있지 않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인자로 알고 믿는 내용입니다. 지치고 약해진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까? 모든 것이 그분의 손 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모두를 자기의 통제 아래 두고 계신다는 말씀보다 더 큰 위안이 되는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이 인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자’와 ‘왕국’

 

이제 요한복음 3장으로 돌아갑니다. 먼저 13-15절에 있는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왕국)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왕국)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을 두 번씩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두 번씩 자기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인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자기는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권세와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는 이와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통치와 무너지지 않는 왕국을 소유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신 내용을 귀담아 들어보면 예수께서 ‘인자’라는 용어를 두 번 사용하신 것처럼, ‘나라’(왕국)란 용어 역시 두 번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갑니다. ‘인자’와 ‘나라’(왕국)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인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곧 ‘나라’(왕국)에 대해 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 사람이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왕국)를 볼 수 없다.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십니다.

 

 

숨겨진 왕국, 볼 수 없는 나라

 

그러나 기억해야할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통치)는 이 세상의 나라들이나 왕국들과는 다릅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숨겨져 있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나라입니다.

     .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안에서 자기의 왕권을 행사하고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통치는 우리에게서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왕권이 우리에게서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분간할 수 없습니다.

     ․ 오직 영적인 눈으로만 식별할 수 있습니다.

     ․ 개안된 눈, 빛을 받아 보게 된 눈, 달리 말해 성령에 의해 빛을 보게 된 눈으로만 식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이것입니다.

     ․ 너희가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 성령께서 너희의 소경됨을 고쳐주시지 않는다면

                 - 너희는 나를 볼 수도 없고, 내 나라도 볼 수도 없다.

                 - 너희는 내가 누군지(‘인자’), 내 사명(‘십자가에 들려 올리심’)이 무엇인지 모른다.

 

 

실질적인 말씀

 

물론 이 말이 여러분에게 매우 추상적이고 신학적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해 매우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강력한 말씀입니다.

 

먼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 왜 예수님은 종종 그의 제자들에게 “두려워 말라.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 그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인자’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즉 제자들이 예수님을 왕국과 영광과 왕권을 가지신 분으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왕권과 통치와 영광을 가진 분으로 진정으로 믿는다면, 즉 그분의 ‘인자되심’(Son of Man)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삶에 대한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인자로 볼 수 없었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어떤 확신과 용기의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몸과 영혼을 지옥에 던져 죽일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나다! 무서워 말라!” 파도위로 걸으시며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께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 “두려워 말고 오직 믿으라!”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 “두 마리의 참새가 동전 한 잎새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 중 하나도 너희 아버지

         하나님이 없이, 즉 하나님이 모르는 가운데 땅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라. 너희는 참새보다 더 귀중하지 않느냐?”

     - “너희 목숨을 위하여 걱정하지 말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예수님을 다니엘서 7장에서 말하는 ‘그 인자’(The Son of Man)라고 믿으신다면, 여러분의 삶에 가장 큰 변화는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근심과 염려와 걱정 모두를 인자이신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만유의 주님이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왕적 다스림은 모든 것 위에 미치는 포괄적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만주의 주님이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그런 분을 믿는다면 어찌하여 걱정하며 왜 두려워하십니까? 왜 근심하고 염려하십니까?

 

저는 이제 여러분께서 복음서들이 왜 이렇게 급진적이고도 실제적인 문서들인지를 이해하게 되셨기를 바랍니다. 복음서는 정말로 급진적이고 파격적일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복음서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 무서워 말라! 나다, 인자다!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뱀을 쳐다보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나를 쳐다보라 그리고 구원을 받으라!”고 간청하시며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목소리들입니다.

 

 

예수님을 쳐다보라!

 

여러분은 불뱀 이야기를 민수기 21장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고 긴 광야 여정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에돔의 왕이 애를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에돔 땅을 통과하면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할 수 없이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그 상황을 충분히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도 그랬을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다그쳤습니다. “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했습니까? 광야에서 죽으란 말이오? 아니 죽을 곳이 없어 이곳까지 데리고 왔단 말이오? 먹을 양식도 마실 물도 없는 이 망망한 사막으로 말이요!” 그들은 만나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합니다. 구역질이 납니다.”

 

참을성이 없고 쉽게 은혜를 망각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어 물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급한 나머지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가 “죄송합니다. 불평한 것을 회개합니다. 제발 부탁하오니 하나님께 기도드려 뱀이 떠나게 해주십시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뱀이 떠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무슨 뜻입니까?

     ․ 하나님은 우글거리는 불뱀들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 달리 말해 환난과 고난을 없애시는 분이 아니라 그것들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아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뱀들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물어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쳐다 볼 수 있는 놋뱀이 있게 되었습니다. 놋뱀을 올려다보라는 것입니다. 놋뱀을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 놋뱀 옆에 누워 있다 해도 그 뱀을 쳐다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 놋뱀을 만진다 하더라도 그 뱀을 쳐다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런 일이 다시 지금 일어나고 있다.

     ․ 모세가 광야에 뱀을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누구든지 그를 올려다보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것이다.

     ․ 독뱀에서 구원하기 위해, 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멸망에서 구출하기 위해, 인자는 반드시

       들려야한다. 높은 장대 위에 달려야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왕

 

이것이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 십자가는 높이 들리는 것이며

        ․ 십자가는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며

        ․ 십자가는 왕위(王位)로 등극하는 것입니다.

        ․ 십자가는 예수님의 대관식장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인 마태나 마가나 누가복음과는 달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굴욕이나 비하로 보지 않습니다.

 

요한에게

     ․ 십자가는 높아지심(昇貴, exaltation)입니다.

     ․ 십자가는 영화롭게 되는 것(榮華, glorification)입니다.

     ․ 예수의 죽음의 시간은 ‘인자’가 영화롭게 되는 시간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인자를 높이 들면,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 너희가 나를 일반 범죄자로 처형할 때, 너희는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야.

       그 때 내가 누구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은 마태나 마가나 누가와는 전혀 다르게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수난을 굴욕이나 비하의 시간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영화롭게 되는 시간으로 봅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분명해 질 것입니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왔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위엄 앞에 두려움에 떨고 뒤로 물러나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요한만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나 마가나 누가는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권세 있는 왕 앞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입니다.

 

또 다른 예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골고다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끝까지 가십니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갑니다. 요한은 구레네 시몬이란 이름조차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요한 19:17은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어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라는 말은 “자기 홀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당당하게 홀로 왕의 보좌에 오르시기 위해 행진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 예수님은 희생자로가 아니라 승리자로 행동하셨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어간 모든 사건들에 끌려가신 분이 아니라

        그 모든 사건들을 주관하시고 통제하신 주님으로 행동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 예수님은 왕위로 등극하기 위해 대관식장으로 행진하시는 왕이십니다.

     ․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시고

       개선장군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크게 외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그것을 역전시키기

       위해 부활이 필요했던 그런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은 승리입니다. 십자가 처형 뒤로 부활이 따라오면서 십자가의

       승리를 확정지은 그런 승리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땅위에서 들려야 하리니,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정말로 여러분은 그분을 ‘인자’로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모든 것들을 - 슬픔과 기쁨, 병고와 건강,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 인자이신 그분 발 앞에 내려놓고 그분을 올려다보십시오. 아멘.

 

 

[무지개 교회 주일 설교 전문, 2010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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