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21]

“크리스천의 슬픔”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요절]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도다.” (롬 9:2)

“I have great sorrow and unceasing anguish in my heart" (Romans 9:2)

 

 

바울의 격정적인 슬픔 속에는 하나님의 슬픔과 그리스도의 슬픔이 깊숙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도다.” 바울은 지금 매우 어려운 역사적 문제를 놓고 고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의로우심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에게는 공짜로 값없이 주어졌는데 정작 유대인들은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바울의 마음을 심히 괴롭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게 된 유대인 기독교 신자들마저도 자신들의 형제자매와 동족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참담한 심정으로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인들이 불신(不信)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계획안에서 아직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설명에 앞서 바울의 마음은 깨질 것 같았습니다. 한숨과 탄식과 슬픔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그의 논증을 수놓습니다.

 

혈연으로 엮어진 동족을 위해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바울의 모습은 마치 구약의 예언자 예레미야를 보는 듯합니다.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완고함을 보면서 탄식하고 고통하며 하나님께 절규했던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내치고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배신으로 갚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져 내림을 느꼈습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의 슬픔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 스크린 위로 탕자의 비유가 오버랩합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큰 아들은 동생의 귀환과 그에 따른 아버지의 탕진하는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만 섞인 어조로 아버지에 대해 격한 감정을 표하며 집에 들어가기를 거절합니다. 완고한 유대인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졌고 또한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아들이는데, 정작 자신의 혈육인 유대인들은 고집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바울의 심정은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슬펐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슬픈 심정처럼 그의 마음도 괴롭고 슬펐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 경륜 속에 있음을 확신하면서 그들의 불신앙과 완고함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슬픔은 자기 혈육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된 슬픔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나라에서 특별한 위치에 서 있어야할 터인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곁길로 나가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는 이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한 사랑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아주 가깝고 아주 친밀하고 아주 사랑하는 사람의 비참이나 불행을 보면서 우리는 깊이 고뇌하며 슬퍼합니다. 자식의 불행을 보면서 고통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사랑하는 배우자의 비참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고통 합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차원의 고통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가지는 순간 동시에 하나님의 슬픔도 함께 나누어 가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랑은 고통을 가져옵니다.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기 때문입니다. 고통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돌보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고통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녀의 고통이 여러분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고 그분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죄를 보거나 죄인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슬픔과 비애를 어느 정도 느끼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치 거리를 두고 동정을 베푸는 어떤 사람의 친절 정도로 생각합니다. 마치 “위층에 계시는 어떤 분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위층에 계신 어떤 분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말에 약간의 일리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친절하심과 신실하심이 우리의 뼈 속까지 파고들 때 하나님의 사랑은 위층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이사 들어올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롬 5:5)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되면, 하나님이 화나실 때 무관심하게 있을 수 없을 것이며, 그분이 사랑하는 것을 미워할 수 없을 것이며, 그가 미워하는 것을 사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랑과 건강한 미움이 리듬을 타고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당신께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해본 일이 있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해보신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슬픔에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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