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물 먹이시는 하나님”

 

 

새벽 5시에 알람이 작동하도록 아내에게 부탁하였다. 내일 새벽 6시 30분에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밤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새벽 2시경에 잠이 들었나보다. 잠결에도 느낌은 무시 못 한다. 느낌이 이상했는지 눈을 떴다. 새벽 5시 30분이다. 아뿔싸, 6시 30분 비행기 시간인데 5시 30분에 일어나다니! 아내가 알람 시간을 맞춰 놓기는 했지만 잠금 상태로 논 것이다. 몇 마디 아내에게 쏘아붙이고 허겁지겁 일어나 샤워를 했다. 내 경우 아무리 쫓겨도 출타하려면 머리는 단장하게 해야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침마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는 일은 일종의 예식이 되어 버렸다. 한때는 울창한 밀림이었던 위쪽 뒷머리 부분은 이제 점점 사막화 현상이 뚜렷하다. 빗으로 쓸어 내려 숭숭한 부분을 덮으려고 여간 애를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아내는 “당신 나이에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해요”라고 위로를 하지만 그래도 점점 가늘어가고 사라져가는 머리칼이 서운 할 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쫓겨도 오늘 밤 9시 정도까지는 지탱하여야할 머리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아내는 차고에 나가 시동을 걸어놓은 상태다. 시간을 보니 5시 45분이다. 내가 생각해도 전광석화처럼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차를 탔다. 미안한 아내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걱정스런 눈치로 옆자리에 앉아 있다. 사실 미안해야할 이유는 없다. 내가 가야할 시간을 내가 알아서 맞춰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지난 30년을 살아왔다. 살짝 미안하였지만 오히려 헛기침을 하며 차를 세차게 몰았다. 아무리 집에서 공항이 가깝다 하더라도 탑승 시간을 40여분 남겨두고 집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도착하니 마지막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들렸다. 식은땀이 새벽부터 등줄을 타고 소리 없이 내린다. 간신히 탑승했다.

 

미시간을 출발해 미국 남부 항구도시인 휴스턴을 경유하여 서부 로스엔젤리스에 도착했다. 장장 8시간여 만에 나성(羅城, LA)에 도착했다. 30년 전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곳이 이곳이라 감개무량했다.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났다. 도착하자마자 바빴다. 저녁 7시에 있을 APU(Azusa Pacific University)의 학위 수여식을 참석하기 위해 온 것이다. APU 총장을 비롯하여 여러 주요 보직자들을 만나고 오늘 저녁 5시에 열리는 총장 초청 만찬에도 참석하는 일정이었다. 내가 봉직하는 학교의 설립자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는데 통역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의전상의 일을 처리해야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임무였다. 아침식사도 급하게 기내에서 먹었고, 점심도 LA 고급호텔의 수영장 옆에 차려진 멋진 식탁에서 발음도 어려운 이탈리언 메뉴에서 덮어 놓고 골라 정신없이 먹었고, 총장 초청 만찬에서도 사소한 말까지 통역하느라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야간 졸업식이 마친 후에 우리 일행은 밤 10시가 되어 LA 다운타운 한 복판에 아주 높은 빌딩으로 이동했다. LA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건물로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은 회전 식당이었다. 앉아 있으면 그 층 전체가 서서히 돌아가며 LA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 연인들끼리 오는 장소인 듯 했고 가끔 우리처럼 관광객이나 구경꾼들도 보였다. 치즈 케이크, 커피, 바닐라 아이스크림 등을 시켜 먹고 담소를 나누다가 밤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새벽 5시에 다시 공항에 나가야 한다. 나와 함께 투숙한 동료가 그 시간에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도 그를 따라 공항에 가야한다. 그가 공항에서 차를 대여했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시간을 공항에서 무료하게 기다릴지도 모르는 경우를 대비하여 나는 구식 컴퓨터를 무겁게 들고 왔다. 그러나 문제가 터졌다. 새벽 2시부터 심한 복통이 느껴졌다. 너무 힘든 여정을 소화한 덕분인가 보다. 통증이 심해서져 화장실에 갔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도무지 견딜 수는 복통이었다. 침대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입을 막고 신음했다. 응급실로 가야할 형편이다. 그러나 한 밤중에 그것도 낯선 이곳 LA의 한 호텔방에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제 너무 무리한 여행에, 이것저것 서로 궁합도 맞지 않는 음식들을 매우 어색한 분위기에서 먹다보니 생긴 급체라고 생각했다. 허리 옆구리 뒤쪽이 끊어져 내릴 듯 아프고 속은 꽉 막혀있는 것 같았고, 숨을 내쉬기 어려웠다. 어디 연락할 데도 없고, 때는 한 밤중이고, 정말 깜깜했다. 함께 머문 동료에게 도저히 함께 공항에 갈수 없으니 먼저 가라고 한 후, 다시 두 시간의 여유를 갖고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그러나 뭔 수습인가? 당장 심한 통증으로 인해 침대를 마루삼아 데굴거리며 구르고 있는데 말이다. “혹시 이곳 낯선 곳에서 객사하는 것이 아냐?” “안되지, 그럴 수 없어. 죽어도 집에 가서 죽어야지!”(ㅎㅎ) 스스로 다짐을 했다.

 

미국을 방문 중이기 때문에 의료보험도 없는 상태에서 응급실에 가면 비용은 천문학적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후에 호텔전화로 차량을 예약했다. 택시는 공항까지 편도가 81달러, 15인승 미니셔틀은 31달러란다. 미니밴을 타고 공항까지 가기로 했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자!” 배를 움켜잡은 채로 호텔 문을 나와 예약한 미니밴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8시가 되자 저 만치 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중국인 계통의 운전사였다. 문을 열어주는데 앞줄에서 중국 계통의 여성 2명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 다음 줄은 베트남계 사람 2명이, 그리고 내가 앉을 마지막 뒷줄에는 하와이 원주민처럼 보이는 사람이 무덤덤하게 앉아 있었다. 차에 몸을 실었다. 15인승 미니밴은 토요일의 조용한 아침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를 널뛰듯이 달렸다. 뒷자리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허리를 뒤로 젖히고 옆구리 배를 움켜잡고 앉은 나는 마치 진통하는 여인이 동아줄을 잡고 신음하고 고통 하듯이 창문에 무덤덤하게 붙어있는 안전벨트를 쥐어 틀어잡고 신음하였다. 마치 널뛰며 달리는 차에 화답하듯 그렇게 신음했다. 그 운전수 인간이 괴물처럼 보였다. 사실 싸구려 미니밴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진동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가 나에게 “너 한번 먹어봐라!”하며 작심한 듯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시간 이상 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다 떠올랐다. “이러다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장에 이상이 있는 것일까?”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남의 집에 얹혀 산 적이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밤 그 집의 차디찬 윗방에서 자다가 새벽 2시에 깨어난 기억이 떠올랐다. 끙끙거리며 신음하였지만 혹시 아저씨 아줌마의 잠을 깨 놓을까 아픈 내색을 하지 못하다가 복통이 너무 심해 아주머니를 불렀다. 알았다고 하시더니 새벽기도회에 가셨다. 돌아오실 때 그 교회 여전도사님의 아들이 용한 침쟁이라고 데리고 왔다. 얼굴을 물끄러미 보니 왠지 신뢰는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전도사님 아들이라 하니 믿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 안에 나를 맡긴 것이다. 이리저리 배를 만지더니 온갖 침들을 이곳저곳에 찔러댔다. 계속 통증을 호소하자 마지막에는 15센티 이상 되는 대침을 내 명치 한가운데 꽂고는 살금살금 돌리는 것이었다. “아이고!”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급체라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는 괜찮아 질 것이라는 말을 하고는 떠났다. 배가 터지는 듯한 고통은 계속되었다.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시던 아주머니가 택시를 불렀다. 동네 의원으로 갔다. 맹장염이 터진 것이었다. 맹장염의 고통을 급체로 알고 대침을 찔러댄 그 돌팔이 의사가 지금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

 

급체가 아닌 듯 했다. 허리 뒤쪽에 심한 통증이 마치 내장 안에서 뭔가 터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복막염? 늑막염? 알고 있는 병명을 다 불러 보았다. 복막염이면 어떻고 늑막염이면 어떻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당장 아파 죽겠는데 말이다. 공항에 도착한 후로 거의 정신을 잃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 탑승구를 간신히 찾아갔지만 아직도 시간을 1시간 이상 남았다. 사람 다니는 통로에 드러누웠다. 죽어가는 데 뭔 체면이람? 그래도 체면은 지켜야지 하고 다시 일어나 구석진 곳에 누웠다. 들고 다니는 짐 보따리와 컴퓨터는 천근만근이었다. “이곳 공항에서 911을 불러 응급실로 가야할까?” “아니면 죽어도 집으로 가다가 죽을까?” ‘집’(home)! 집이 뭐 길래 이토록 집으로 가려는 걸까? 집이라면 아내와 자녀들이 있는 곳이겠지.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이토록 심한 고통 속에서도 집으로 가려는 것일까? 집이 없는 사람(The homeless)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자신의 종말을 맞이할까?

 

미국 공항은 여름 철 난방시설이 너무 과도한 듯하다. 심한 오한과 고열이 사이좋게 교대까지 하고 있는 나에게는 공항의 냉방은 무서운 고문실 같았다. 공항 구내 간이매점에서 소화제를 사서 먹었다. 급체가 가라앉을 줄 알고 말이다. 그러나 잘못 짚은 사이비 진단이었다. 그것도 모른 채로 휴스턴까지 지옥행 비행기를 탔다. 다시 내려 3시간을 옆구리 배를 움켜잡은 채로 공항 한쪽 모퉁이에 누웠다. 창문 밖으로 청명한 여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공항에서 죽을 수는 없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으리라! 그런데 도대체 집이란 무엇일까? 어디가 집인가? 하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내 머리에 떠올랐다. 마침내 집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또 다른 3시간의 야간 비행이었다. 이번에는 지옥의 심장부에 갔다 오는 경험이었다. 그래도 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시카고의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이제 1시간 정도만 견디면 구원을 얻을 것이야!” 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암송시켰다. 성경 어디엔가 있는 이 구절을 나는 좋아한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아멘. 할렐루야!

 

40여명 정도를 태운 소형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 터치다운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금 배와 허리춤을 움켜잡았다. 미국의 저명한 인권 운동가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 가운데 나오는 한 문구가 떠올랐다. “Free at Last!"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서 나는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평온과 안식 말이다. 물론 육체적 고통은 계속되었다. 밤 12시였다.

 

진통제를 좀 과다하게 먹었다.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침녘에 아내는 응급실로 가자고 보채었다. 나는 견디어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보험이 없는 상태로 응급실에 가면 그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통제로 견디다가 귀국하여 한국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아내의 등쌀에 떠밀려 차를 땄다. 손님 석에 길게 누운 상태로 아내가 나를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진통제 덕분에 통증은 많이 가라앉은 편이었다. 미국 생활 30년 만에 나는 처음으로 미국 대형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게 되었다. 홀로 있는 독실이었다.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아내와 나는 모처럼 단 둘이서 오붓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혈액검사를 하고, 수액을 맺고 혈압을 재는 규정적인 치료가 있었다. 증상에 대해 말해보라는 간호사와 담당 일직 의사에 질문에 이런 저런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급체한 것 같은데 허리 옆구리 뒤쪽에 통증이 있다고 대답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년 만에 한 번 정도는 이처럼 호젓하고 조용한 병실에 누워있으면 좋겠다고 농담도 건넸다. CT 촬영을 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조용한 병실에 누워 아내와 이런 저런 농담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는다면 당신 결혼 할 거야 안 할 거야?” 아픈 와중에서 농담을 하는 나를 보고 기가 막혔는지 아내가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빨리 날 생각이나 하지 뭔 이상한 소릴!”하고 입을 막는다. 다시 물었다. “왜 당신이 다시 결혼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아?” 기차 찬지 “당연한 것 아네요?”하고 아내가 퉁명스럽게 받아친다. “아냐! 당신이 결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으니 들어보시게나.” “뭔데요?” 조금은 궁금한지 앉아 있던 의자를 침상 가까이 바짝 당겨 앉는다. “어~” 뜸을 들이며 침을 삼켰다. “뭔데요? 왜 내가 결혼해서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요?” “으흠, 아니… 30년 동안 한 남자의 속을 썩였으면 됐지 또 무슨 다른 사람의 속을 썩이려고 해!” 기가 막혔는지 아내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반격을 위한 움츠림이었다. 곧 이어 “아이고 영감, 내가 한 남자 때문에 속을 썩었는데 또 다른 남자 때문에 또 속을 썩으라고요!” 우리의 대결은 나의 완패로 끝났다. 웃고 있는데 의사가 들어왔다. “심한 탈수현상에 신장결석입니다!” "you have kidney stone!" 나는 이 날 생전 처음으로 콩팥(신장)이 허리 옆구리 양쪽 등에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대한 발견이었다. 도대체 중고등학교 시절 생물시간에 뭐 한 거야? 나는 왜 내가 뒤쪽 옆구리를 붙잡고 뒹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4시간을 보낸 후에 귀가하였다. 가장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받았고, 물을 한 없이 마시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고 집으로 향했다. 물을 잘 안마시기로 유명한 나는 그 후 이틀 동안 평생 마신 물의 양보다 더 많은 물을 마셨다. 하나님께서 지난 며칠 동안 엄청나게 내게 물을 먹이신 것이다! 오호라, 익사 직전이다.

 

사실 “물 먹이시는 하나님”이란 주제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익살스런 신학적 주제이다. 원래 세례란 “물속에 빠져 물을 진탕 먹고 죽는 일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에 빠져 죽기를 그렇게도 바라시지만 우리는 뺀들뺀들하여 결코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우리는 수영을 참 잘하는 종자들이다. 프래드릭 뷰크너가 “아담은 탁월한 수영선수입니다”라고 한 것은 매우 통쾌하고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의 옛 성품은 잘 안 죽는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물 먹이셔도 우리는 잘 헤엄쳐 물 바깥으로 나온다. 그러나 제 2의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맥주병이시다. 그는 기꺼이 죽음의 세례를 받으셨다. 죽음의 물속으로 들어가셨다. 우리의 죄와 잘못들과 옛 성품들을 물속으로 가지고 들어가셨다. 익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새 생명을 주시어 물속에서 올라오게 하셨다. 홍해에서 애굽의 노예들이었던 이스라엘을 익사시키시고 다시 새로운 민족으로 탄생하게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사역을 계속하신다. 문제는 기꺼이 물을 마시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일로 우리에게 물 먹이시면 그저 꼴깍거리며 마셔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벌써 10리터 정도의 물을 마시고 있다. 무더운 여름철에 물 마시는 연습을 해 두어야겠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다시 물 먹이실 때 솜씨 좋게 들이킬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겠다. 할렐루야!

 

[신장결석과 함께 보낸 며칠 간, 휴식을 취하면서 몇 자 적었다, 2010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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