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3 13:24
[2] 창세기 25:19-34
제목: 현대판 에서들 (실질적 유물론자들)
찬송: 479장 (새 363장)
묵상 포인트: 하나님은 닫힌 태를 여시는 분이십니다.
기도: 주님, 저희들도 끈질긴 기도를 하겠습니다. 저희의 위선적 기도와 형식적 기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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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들의 이야기 가운데 반복되는 주제가 불임(不姙)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도 삼대에 걸친 불임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라헬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불임 때문에 무던히 마음 고생하였습니다. 단순한 불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상치되는 현상으로서 불임이었습니다. 삼대에 걸친 불임이라면 야구경기의 용어로 “삼진아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불가능속에서 새로운 생명과 민족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실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이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도저히 불가능한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말인가? 삼대에 걸친 불임이라는 현실적 불가능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압도하는 듯 보였습니다. 본문에서 리브가와 결혼한 이삭은 이십년 동안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 고대근동지방에서는 불임은 하늘이 내린 벌로서 여자에게는 저주였습니다. 고통의 시간은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삭은 자기 부모들이 겪었던 신앙의 시련기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녀를 얻기 위해 이십년 동안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할 것”을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눅 18:1-8).
이삭은 마침내 자녀를 얻게 됩니다. 오랫동안 끈질긴 기도의 덕분이었는지 곱빼기로 아들을 얻습니다.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형제의 출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등을 내포한 출생이었습니다. 특별히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된다는 충격적 소식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큰 자로 작은 자를 섬기게 하시는가? 이 질문은 수수께끼인 동시에 파격적 은혜의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참조, 고전 1:26-31).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난 큰아들과 작은 아들, 유대인과 이방인,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 첫 아담과 둘째 아담 등의 예들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은 항상 약자(underdog)를 들어 강한 자나 기득권층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팥죽 사건을 통해서도 이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깁니다. 에서는 현대판 유물론자들을 가리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장자의 명분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유물론자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그런데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배(腹)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이 현대판 에서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