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아래글은 2007년 3월 19일 경에 출간될 나의 신간 [등불들고 이스라엘을 찾으시는 하나님: 구약본문과 해석] (서울: 도서출판 솔로문, 2007)에 실린 서문이다.


                                                                   [저자 서문]

성경학도로서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친 지가 어연 십 수 년이 넘었다. 한 평생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친 선배들에 비하면 연수(年數)가 아직은 일천하지만 요즈음 들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시편의 한 기도문처럼, 방금 전 눈(眼) 앞에 있었던 새 한마리가 잠간 뒤를 돌아보는 사이에 훌쩍 날아가 버렸을 때의 그 허전함처럼(시 90:10) 인생이 그렇게 날아간다는 것을 느끼는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 일에 있어서 좀 더 효율적이고 지혜로웠으면 하는 생각에 이르면 생각이 많아진다. 신학에 입문한지 30년, 목사안수를 받은 지도 어느새 20년이 넘어섰다. 오래전 나는 기독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의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개혁교회의 전통에 따라 평생 ‘말씀과 성례의 신실한 수종자(隨從者)’가 될 것을 서약하고 임직했다. 그 후로 강단과 교단에서 성경을 부지런히 설교하고 힘이 닿는 데까지 가르쳤다. 그러나 자긍심과 보람 대신 아쉬움과 부족함만이 남아있는 듯하여 여간 허전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그동안 헐레벌떡 달려온 언덕의 정상을 넘어 내려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진다. 노모께서 종종 “철들자 망령난다”고 하신 말씀이 귀중한 인생 선배의 진솔한 충고처럼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신실하게 신앙공동체에게 전달하는 ‘하나님 말씀의 사역자’(minister verbum dei)에로의 소명만은 해가 갈수록 더욱 깊어진다. 그만큼 성경은 내 삶에 있어서 너무도 소중한 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읊조리고 씹어 그 맛을 음미하고 그 리듬에 삶을 맡기며 자유스럽게 사는 일의 즐거움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빛이요 내 길의 등이라”고 고백한 옛 성도의 신앙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뿌리 깊은 확신과 깊은 신뢰에서 나온 진국이리라.    

성경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후, 내 평생 바람은 성경 전체를 주석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여 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성경 주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전달할 수 있는 길이 올바른 성경 해석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확신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건강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한다. 어느 날 공상하다가 이런 우스꽝스런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2권씩 성경주석을 집필한다면 앞으로 33년이 걸릴 터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때까지는 살아야지 하며 웃은 적이 있었다. 죽지 않는 방법은 성경주석을 천천히 쓰는 것이다! 사실 성경의 가르침은 무한하고 끝이 없다. 파고 파도 다함이 없는 샘과 같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우주와 같다. 인간의 작은 머리로 어찌 하나님의 뜻을 다 알랴마는, 힘과 건강이 주어지는 한, 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즐거움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으랴.

교회가 살고 신앙이 새롭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귀하게 여기고 권세 있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다. 이것이 종교 개혁적 신앙의 전통이다. 다시 말해,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성경적으로 걷고, 성경적으로 말하고, 성경적으로 일하고, 성경적으로 길을 걷는 것이 종교개혁전통의 ‘정통적 신앙’(authentic faith)이다. 이런 일을 이루기 위한 성경 연구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신학교육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한다. 신학생들과 신학교수들은 한결같이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달하려면 목사와 설교자들 역시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한 평생 ‘그 책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는가!

나는 우리의 교회들이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려는 의지만 있다면 교회는 새로워질 수 있고, 새로운 동력을 얻어 줄기차고 힘 있게 복음 전파자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 fides quaerens intellectum)을 격려해야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덮어놓고 믿지 말자는 것이다.

본서는 성경을 열어놓고 믿는 한 성경학자의 성경해설 글 모음집이다. 구약성경이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 문헌이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신앙공동체를 향해 부지런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는 신앙 고백에서 출발한 글들이다. 옛적 말씀을 새롭게 듣고 읽으려는 시도들이다. 성경은 지금도 우리의 잘못된 신앙을 채찍질하고 교정하고 회개케 하며,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고 가리키며 인도하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모두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이 들어있는 책이라고 믿는다. 비록 학문적 논의를 담고 있는 전문적 글들이라 할지라도 인내심을 갖고 글의 흐름을 따라 자세히 읽으면 성경의 올바른 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은혜를 받게 된다. 개혁신학의 전통에서는, ‘성례’와 더불어 ‘말씀’이 은혜의 방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본서의 내용을 정경 구분 방식에 따라 오경, 역사서, 예언서, 지혜서 등 제 4부로 나누었다. 본서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은 각종 학회들과 여러 신학대학원들 및 교회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한 내용을 기초로 해서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장르에 속한 글들이 한 지붕 밑에 모인 형태가 되었다. 초청해주신 여러 기관들과 담당자들에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책을 펴냄에 있어서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원고를 살피고 교정하여 읽혀질 수 있는 글이 되도록 다듬어준 윤상문 목사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또한 출판을 담당한 도서출판 솔로몬의 박영호 사장과 편집부 여러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2007년 정월에
류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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