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여러분이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는 기도들”

누가 1:5-7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대림절에 들어가면서

 

전통적으로 기독교회는 성탄주일 전 네 주간을 대림절 주일로 지킵니다. 대림절(待臨節)은 말 그대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성탄절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는 주일이라면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번 대림절 설교 시리즈의 주제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입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

 

주님이 우리의 삶 속으로 오시는 길들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높은 언덕은 깎아 낮게 만들고 골짜기는 메워 평지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을 평지로 만들라”(사 40:4)

 

이것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오늘은 갈망과 열망과 동경과 바람(所願)이 우리로 하여금 구세주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하게 하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

 

대림절(待臨節, advent)은 교회력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절기로

            ·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통해 도래하는 구원의 의미를 기억하는 시즌입니다.

            · 또한 그 구원을 충만하게 경험하려는 우리의 갈망과 기다림을 새롭게

              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대림절을 통과하면서 걷게 되는 여러분의 영적 여정을 돕기 위해 교회는 주일 예배에 초점을 맞춥니다. 가능하다면 대림절을 위한 워크숍과 성가대의 적절한 찬양준비들이 있을 것입니다. 대림절이 여러분에게 과중한 스트레스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세상과 사회는 지금 시즌이 크리스마스라는 즐거운 휴일들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겠지만 교회는 대림절에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에 함께 하기를 초대합니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여러분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살 것이고 소포로 선물을 보내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집에 성탄절 트리를 장식하고 성탄절 및 연말연시 카드를 보내기도 하고, 사람들을 집에 초청하여 식사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떨어져있던 가족식구들을 만날 준비도 하고, 성탄 케이크를 굽기도 하고, 성탄절 가족 식사를 준비할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심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즐거운 계절임에 틀림없습니다.

 

너무 과하게도 말고 너무 무덤덤하게도 말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도 마시라고 말하는 것도 대림절 설교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집중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교회 예배를 통해 대림절을 조용히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일이 대림절에 우리가 생각해야하는 일의 중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예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식이 없는 제사장 집

 

사가랴는 제사장입니다. 늙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 직에 있은 지 상당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래전 아내와 결혼했는데 이름은 엘리사벳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높은 분이었는지, 얼마나 좋은 직장을 갖고 있는지, 그와 그의 아내가 얼마나 이름난 명문가 출신이었는지, 그들이 얼마나 의롭고 곧게 살았는지, 이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엔 무엇인가 꼭 있어야할 하나가 빠져있었습니다. 자식이었습니다. 자녀가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자녀를 갖던지 갖지 않던지 그것은 당사자들이 선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고 토를 달 일이 아닙니다. 자녀를 갖고 싶거나 혹은 가질 수 없을 경우, 물론 힘들기는 하겠지만 아주 특별한 의료시술을 시도해 본다든지 아니면 입양을 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삶의 목표들을 다른 것으로 재조정하거나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그러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던 당시에는 이런 현대적 대안들은 상상치도 못했습니다. 그 당시는 입양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던 사회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가장 높은 목표는 자녀들을 많이 갖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해서 가문의 이름이 후대에 이어지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존속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사가랴와 엘레사벳이 나이가 많았고 그들 둘 뿐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게 자녀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 결혼하고 나서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자 점점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드릴 때마다 위로 올라가는 연기처럼 그가 드리는 수없는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본문은 말하기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13절)고 한 것을 보아 그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드린 기도들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자녀는 오지 않았습니다.

 

 

불임(不姙)에 대한 다양한 조언들

 

아마 곁에 있던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이런 저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권고도 조언도 상담도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조언한 말 중에는 실제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이 있었을 겁니다.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보라고.” “최근에 개발된 신약(新藥)이 있다는데 한번 시도해 보지?” 아니면 “좀 더 노력을 해봐.”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그래야 아기가 들어선다고!”

 

엘리사벳의 불임에 대한 어떤 설명들은 좀 더 종교적이었을 겁니다. “아마 당신이 죄를 다 고백하지 않은 것 아냐?” “아이를 못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야!” 참으로 견디기 힘든 충고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지요. 오늘의 본문은 말하기를 그들은 “흠이 없었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아무에게나 붙여지는 칭찬은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다 하나님의 뜻이야.”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고 무익한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심한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어느 정도는 교만스런 충고입니다. 어떻게 별 볼일 없는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설명이 있었을 겁니다. 잘 들어보면 한숨 섞인 탄식의 어조입니다. “그 일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직장도 있고 건강도 있고 그러잖아요!” 물론 이 부부는 그들이 받은 여러 축복들에 대해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만 있으면 이 모든 것들을 맞바꾸려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식을 바랐던 것입니다.

 

 

간절한 소원들

 

그러므로 대림절 이야기는 ‘갈망’, ‘간절한 소원’, ‘애타게 기다림’, ‘찾음’ 등으로 시작됩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대림절 기간 동안 교회에 나와 예배하라고 여러분을 초청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여러분이 가장 목마르게 가장 열정적으로 갈망하고 가장 애타게 기다리고 사모하는 것을 “새롭게”(renew) 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우리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의 가장 깊숙한 갈망과 바람들이 빗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과 갈망과

       바람들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넘겨봅니다. 그러나 때론 너무 많은 압력과 스트레스

       때문에 그들의 삶은 엉망이 되곤 합니다.

     · 우리는 소통과 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여러 인간관계들 속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마음이 급해서 일처리를 급하게 하다 보니 오히려 개선되리라 기대했던 관계들이

       더 나빠지고 사이가 갈라지고, 그러다 충동적인 결정들을 내리곤 합니다.

     · 아니면 우리가 더 이상 직면할 수 없는 우리의 갈망들과 바람들과 애원들에 대해

       깊이 실망하게 되면 우리는 삶을 함부로 대하거나, 삶에 대해 빈정거리거나

       냉소적이 되곤 합니다.

 

대림절 시즌이 연말과 겹치기 때문에 바쁠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우리는 바쁨과 분주함을 괄호로 묶어 그 속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아하, 우리의 가장 깊고 심오한 열망들, 갈망들, 바람들을 우리가 바쁨과 분주함이란 핑계로 억누르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시즌에 이 세상은 겉으로는 ‘희망’, ‘평화’, ‘기쁨’, ‘사랑’과 같은 주제를 가장 많이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된 갈망들과 바람들을 떠올리지 않고서는 이런 말들 이런 단어들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다리기 갈망하고 그러다 실망하고 낙심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이 시즌을 바쁘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희망을 갖는 대신에 희망을 준비하곤 합니다. 그러나 ‘갈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갈망들인가?

 

아마 여러분의 갈망은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이 친밀함을 바라고 있을지 모릅니다. 혹은 여러분이 바라는 그 친밀감은 참된 친구, 진정한 친구, 즉 여러분을 잘 알고 아직도 여러분을 사랑하는 그런 친구와의 친밀함일지도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의 갈망은 건강에 대한 것일지 모릅니다. 잘 작동하지 않는 몸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갈망이 꿈꾸는 것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돈을 버는 방법을 배웠지만 그 돈을 가지고 삶을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 그 돈을 가지고 인생을 어떻게 달리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면 여러분의 꿈이 상당히 여러 해 동안 꿈으로만 있어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 꿈이 가족에 대한 꿈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가족을 사랑합니다.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가정이 여러분이 꿈꾸었던 것과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꿈을 꿀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아마 여러분들도 이 갈망들이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 여러분이 갈망하고 바라고 애타게 기다렸던 것이 결국 여러분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아니면 좋았던 과거를 지금 바라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여러분이 이미 죽은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과 좀 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미 저질러진 실수인데 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란다면?

      · 젊었을 때의 건강을 지금 바란다면?

이런 것들이 도무지 이뤄질 수 없는 불가능성들이라고 해서 이런 바람들과 갈망들을 가질 수 없다는 건가요?

 

수많은 세월 동안, 오랜 동안 여러분이 바라고 애타게 기다리고 갈망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사가랴는 아마 자신이 겪고 있는 실망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다루고 있었을 겁니다. 제사장으로서 분주하고 바쁘게 사는 일 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자신의 실망감을 잊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잊고 살려고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가장 똑똑하고 의미 있는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몇 주 동안 설교는 반복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대문들을 노크할 것입니다.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실망과 아쉬움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잊고 지내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노크 할 것입니다. 이 대림절 시즌은 우리 스스로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분주함과 바쁨 안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사가랴가 제사장으로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첫 번째 일은 사가랴의 비실제적인 갈망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엘리사벳과 사가랴가 그들이 친구들과 백성들에 의해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25절). 여기서 “수치를 당하다”, “부끄럼을 당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에서 제거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want)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받을 자격이 되었기 때문에 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need)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로 가득한 세상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죄들, 실패들은 구속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마룻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이제는 누더기가 되어버린 오래된 기도들이 아직도 응답될 수 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13절). 그러나 여러분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마침내 늙은 나이에 아들을 얻게 됩니다. 세례요한이 그 아들입니다.

      · 이 아들은 그들이 바라던 것처럼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즉 어른이 된 후에도

        결혼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손자를 선물로 주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명예를 후대에 전수하며 가문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 그러나 그는 메시아를 위한 길을 예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바라던

        아들이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필요로 한 사람을 주신 것입니다.

 

달리 말해, 여러분이 바라던 것(want)을 위해 드려진 기도들은 결국 여러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need), 즉 은혜를 위한 길을 예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선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에게 오는 최상의 선물입니다. 세례요한의 출생으로

      · 그는 엘리야의 방식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오심을 알리고,

      ·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을 녹이며,

      · 완고한 회의론자들의 마음에 뜨거운 깨달음의 불이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 그는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할 것입니다.(17절)

 

그가 이렇게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함으로 인해서

      · 우리 속에 남아 있는 더 나은 어린 시절을 위한 갈망과 바람과 아쉬움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도록  준비하고 예비하게 할 수

        있습니다.

      · 우리 자녀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자녀를 위한 여러분의 갈망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린 미래를 바라보게 준비시킬 것입니다.

      · 부모들로서 자녀들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바람과 열망은 여러분의 자녀들의

        유일한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합니다.

 

      · 좀 더 나은 인간관계들을 갈망하고 열망하는 일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여러분을

        온전히 아시고 여러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고

        예비하게 할 겁니다.

      · 그분과의 친밀함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의 친밀성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친구들이 여러분에게 항상 예수님이 되기를

        바랄 것이고 그들은 항상 여러분을 구원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항상

        실망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 더 좋은 직업이나 일을 갈망한다면 그런 갈망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고 예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되는 일로

         여러분을 부르셨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에 대해 증언하는

         일로 여러분을 부르셨기 때문이며 이 소명과 부르심이야 말로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 여러분은 이런 놀라운 직업과 일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모퉁이 속으로 부단히 깨고 들어오시는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일을 보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 있는 날들 안으로 걸어 들어가십시오. 일하시고 준비하십시오. 그러나 조심스레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모든 바쁨과 분주함 속으로 여러분을 몰아가는 모든 갈망과 바람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진정한 갈망과 바람은 언제나 항상 그분을 위해 있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그 갈망들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시키는 길들입니다. 그리고 길들은 이상한 방식들과 예기치 못한 길들입니다. 그런 길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며 보십시오. 아멘.

 

                                          [대림절 주일 설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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